“잘 들립니다 오바!!^^”하며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봤다. 어느 유튜브 시청자께서 1992년에 방영된 <질투>라는 드라마 영상에 남겨놓은 댓글에 대댓글을 단 셈이다. ”2025년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라는 댓글. 수만명의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이 짧은 문장 하나. 괜히 뭉클했다. 우리 모두가 오늘까지 잘 버텨냈고, 이윽고 응답을 하고야 말았으니.
1982년12월31일 밤11시경에 태어난 나는, 1시간만에 두 살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는 태어나자마자 공짜로 한 살을 주는데다가, 해가 바뀌면 또 한 살을 주니 말이다.
그러고보니 <질투>가 방영하던 때는 내가 10살 되던 해였지 싶다. 당시 톱스타였던 최수종과 최진실이 주연을 맡은 청춘 드라마. 둘은 또 어찌나 잘 어울렸는지.
헌데 참 이상하지. 나는 어째서 수십년이 지난 이 드라마 속 장면들이 모두 기억나는 걸까. 당시 우리 지역은 채널도 두 개 밖에 나오질 않았고, 우리집은 특히 주인집 눈치를 봐야되는 지하 단칸방에다가 TV와 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사람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11인치 크기의 작은 테레비전이었는데 말이다. 바람이 불면 안테나가 흔들려 ‘지직’ 거리기 일수였고. ‘하하~’ 생각하니 미소가 감돈다.
평일엔 아버지가 택시 일 마치고 귀가하실 무렵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 네 가족이 모여 <질투> 혹은 <한지붕세가족> 같은 드라마를 즐겨봤고, 주말엔 <유머1번지>, <한바탕웃음으로> 같은 코메디 프로그램을 기다렸지 아마도. 아, 일요일 아침에 <만화동산>에서 했던 ‘날아라 슈퍼보드’와 ‘달려라 하니‘, ’배추도사 무우도사’도 빼놓을 수 없겠군.
우습다. 또 한 해가 저무는 2025년의 세밑에서 뭐가 이렇게도 우스운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과거가 더 선명해지는 이유는 뭘까.
동전 한 닢 없어도 즐거웠던 그 시절이었다. 이웃의 수저 갯수까지 알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아꼈다. 김장날이면 없는 살림에도 여분으로 김치를 더 만들어 이웃과 나눠 먹었다. 돗자리 하나와 수박 한통, 그리고 피라미와 골부리를 잡을 작대기 하나를 들고 강으로 바다로 나섰다. 편 가르고 싸우지 않았다. 어쩌다 다투는 날에는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 마음을 전했고, 그녀가 말없이 전학가버린 날엔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을 온종일 들춰내어 전국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우리는 그랬다. 다시 오지 않을 그 시절이 이토록 그리운 건, 아마도 이 모두에 역행하고 있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있기 때문일거다.
거칠고 투박하며 내 편이 아니면 모두를 적으로 돌려세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만남은 가볍고 절실함이라곤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원나잇, 이혼, 낙태, 불륜 등 인간성에 반하는 모든 걸 사사로이 여긴다. 뿐일까, 이 시대의 모든 엄마들은 내 아이만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막 깨달았다. 나는 혼자가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사람이 싫어지고 있는 거였다는 걸. 해마다 싫음의 농도는 짙어져만 간다. 아뿔사, 싶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도 잘 알 수 있다.
드라마 <질투>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가 레일을 둥글게 돌면서 두 주인공이 뽀뽀하는 모습을 또 다른 카메라가 B컷으로 찍는 영상으로 마무리가 된다.
어제 본 드라마 마지막 장면도 기억 못하는 내가 그 모습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건, 그 시절에만 온전한 내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한 시절 만큼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응답이 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