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가 더 바쁠까. 마을버스 안에서 SNS를 훑다가 든 생각이다. 연말 모임 약속으로 바빠 죽겠다는 사람들. 행복한 비명을 SNS의 언어로 치환해 되도록이면 점잖게 녹여내려는 모습이다. '이보게 SNS 친구들이여, 여기 보시게. 날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려' 하는 목소리가 폰 안의 활자에서 음성으로 변환되어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드레스와 턱시도를 갖춰입고 출항 준비를 하는 그들이다.
두 번째 정거장을 지난 마을버스. 또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수능이 끝난 입시 시즌이여서인지 여기저기서 자녀의 대학 합격증을 선보인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서울대를 이렇게 많이 가나? 웬걸, 대부분 서울대 합격증이다. 난 뭐하는 놈이었나. 서울대 따위도 합격 못하고. 아무리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한들, 우리 엄마아빠도 고등학교까지의 의무 교육은 똑같이 받게 해줬는 걸. 무식한 나에게 낮술 한잔을 건네며 셀프 위로라도 보내야겠다.
얼마나 자랑하고 싶을까. 십분 이해가 되는 바이다. 나도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오랜 노력의 결실로 명문대에 합격을 했다면 아파트 단지에 현수막까지도 걸고 싶었을게다.
그런데 사돈에 팔촌, 심지어 친구의 아이가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걸 본인들이 나서서 과시할 일인지, 갸우뚱하긴 하다. 친자녀 혹은 조카 정도 까지면 좋겠다.
마을버스가 종점에 다다르고 있다. 이 겨울 마지막 목소리가 들린다. '페메 보내면 차단 합니다. 말귀를 못알아 먹나요, 페메 보내지 마세요.' 페이스북에는 간단한 문장으로 본인을 소개하는 프로필 공간이 있는데, 대부분 페메 보내지 말라는 소개글이 다수다.
두 가지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들은 또다른 누군가에게 도대체 페메로 얼마나 치근덕대고 있는건지. 외모 혹은 재력으로 무수한 이성의 환심을 사고 싶은데, 그들에게 접근할 방법이 페메 뿐이라니. 사진으로 보니 더더욱 예뻐 죽겠는 걸. 그녀와 식사라도 한끼 할 수 있다면. 김훈 선생은 그의 저서 <자전거 여행>에서 가질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에 '예쁜' 당사자들은 곡할 노릇이다. 시도 때도 없이 페메가 울려대니 말이다. 멀쩡하고 근사한 이성이라면 환영일텐데, 검증할 방법이 없으니 '아예 모두 페메 보내지마!' 하고 으름장을 놓는 것일테다.
하여 드는 또다른 하나의 생각은 아쉬운대로 외로운 나한테 보내시라는 것이다.ㅎㅎ 나는 모두 환영이다. 운이 좋게도 기자, 번역가, 영어선생, 외국계금융맨, 작가라는 다양한 직업군을 거쳐 지금은 오픈된 공간에서 가게까지 운영하고 있어서인지 언제 어디서나 열려있다는 생각이다. 과격하거나 정신이 조금 피폐한 사람들로부터는 그들 나름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다. 가슴골을 드러내놓고 섹스가 목적인 이성도 괜찮다. 낮잠이 쏟아지거나 따분할 때 몇마디 나누다가 따분함이 사그라질 무렵 차단하면 되니 되려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전문적으로 로맨스 스캠을 일삼는 이성들도 있는데, 이들의 언어와 대처능력은 가히 놀랍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서사를 꾸며놓았다. 가족, 친구, 직장까지도. 보통 10분 정도 얘기하다가 차단을 하는 편인데, 이들은 15분 정도 얘기하다가 차단을 한다. 5분을 더 벌었으니 그녀들도 성공을 한 셈이다.
빈정대는 것처럼 이야기를 늘여놓았지만, 사실은 다 구분할 수 있어서다. 그러니 멀쩡한 분들에게까지 실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 활용하면 된다. 나는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고 일갈한 퍼거슨 감독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책이 출간 됐을 때 페메를 통해 대량으로 사인본을 주문해 주신 분도 계신다. 여행차 안동 부근에 들렸는데, 페메로 연락을 주시고 가게까지 찾아와 주신 분도 계신다. 함께 낮술을 마시며 누나, 동생 사이가 되기도 하고, 페메로 담소를 나누다가 친해진 또다른 누군가와는 친구 혹은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과거 어떤 날엔 새벽에 감성이 차오르셨는지, 어떤 글을 너무 감명 깊게 읽었다며 카톡 아이디를 여쭈시더니 선물을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 이런 순기능들이 왜 인생의 낭비인가. 나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과할 때가 있다. 나부터도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전세계 최초로 호주에서 총대를 메고 16세 미만 아이들에게 SNS를 전면금지 시킨 이유도 잘 살펴 볼 일이다.
발 밑에 금이 아름다운 줄 알면 하늘의 별이 아름다운 줄 모르게 되겠지? 겨울의 SNS 풍경은 밤하늘 북두칠성좌의 모서리를 스치는 것처럼 시리다. 마을버스에서 내려 가게에 도착했다. 앞치마와 두건을 두르고 장사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