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자친구가 있다면 나는 저녁을 함께 먹은 뒤 비좁은 쇼파에 같이 누워 쓰고있는 소설의 한 페이지에 관해 의견을 나눌거다. "이 부분 있잖아. 두 남녀가 아프게 헤어진 뒤 7년만에 다시 만났거든."
『아무 말도 생각이 안나서 A군은 B양을 꼭 안아버렸다. 그제서야 웃는 B양. '떠올릴 때마다 닳아 없어지면 이별일까‘하고 7년을 기다렸던 A군은 이 날 만큼은 눈 앞의 B양을 떠올리지 않았다. 이별이 아니란 걸 7년간 굳건히 믿고 있었던 그였다.』
"너는 이 부분 어떻게 생각해? 나는 침묵이 좋은데. 그녀는 웃음으로 답을 했고. 넌 어때? 시시콜콜한 어떤 대사를 조금 넣을까?"
여자친구는 장난스런 키스와 함께 헤밍웨이로 빙의한 듯 여러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우리의 밤은 그렇게 소설과 함께 깊어져 간다. 그러다 지쳐 잠이 든 여자친구에게 '내가 쓰는 소설은 모두 너야'하며 나는 나즈막이 속삭인다.
여기까지, 남은 나의 외로운 날들 중 어느 한 개의 밤은 이랬으면 하는, 기분좋은 상상을 해본다.
삶과 죽음, 사회의 볕과 그늘, 이별과 재회, 인간 내면의 모순, 부의 격차 등을 소설 한 권에 모두 담아내려다 보니 원고는 10%도 쓰지 못한 채 올 한해가 모두 소진되어 버렸다. 그래서 생각을 틀었다. 매년 에세이와 수필집을 한 권씩 내고, 소설은 긴 세월을 두고 딱 한 권만 완성해 봐야겠다고. 한 권이면 된다. 비견할 바는 아니지만 <돈키호테>라는 걸작을 만들어낸 미겔 데 세르반테스처럼, 한 권이면 족할 듯 싶다.
감동만 인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 생각을 끝없이 반복했더랬다. 알맹이도 없는 활자에 겉치레만 더하려 하는 꼴이 우스웠다. 그늘진 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변할 것이며, 그대가 곁에 있어도 그대가 그리운 마음은 내가 한 번 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이상은 소설로 그리기가 어려운 걸. 이타적이면서도 배타적인 행동을 일삼는 주인공 친구의 모순은 또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관계가 끝이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보이는 것을, 나는 마침내 소설에서 미리 그려볼 수 있을까.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고 공격적인 이 사회의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먹힐까.
내년에 출간 할 세번째 에세이집 초고는 모두 써놓았다. 그럼에 봄에는 한달간 우리나라 동해안의 해파랑길을 걸으며, 가을에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거쳐 산티아고까지, 내년은 쉴 새 없이 걸어 볼 요량이다. 에세이는 뭐니 뭐니 해도 길 위에서 완성해야 제 맛인 것이다. 언어의 소리를 따라, 길 위의 사람 모두는 그렇게 주인공이 된다.
해파랑길에서 완성될 책의 가제는 '파랑주의보'다. 좋은 밤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