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폰 세 장

by 힐링요트


휴대폰이 울렸다. 저녁 9시가 넘은 시간, 모르는 번호였다. 받을까 잠시 갈등했지만 무언가가 내 손을 전화기로 향하게 했다.


"여보세요?"

"저... 저... 저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 없이 말을 더듬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몇 달 전 전 상담을 마치며 '365일 24시간 쿠폰'이라며 명함을 건넸던 그 아이, 준호였다.

"준호구나, 무슨 일이야?"

"선생님... 저 내일 군대 가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요. 저... 저는..."


목소리가 더욱 떨렸다. 전화기 너머로 바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준호야, 지금 어디 있니?"

"다리 위에 있어요. 다리 위에서... 선생님이 주신 쿠폰이 생각나서 전화해 보는 거예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몇 달 전의 일이었다.

박민수 씨라는 환자가 알코올 사용 장애로 입원했다. 마음이 한 군데도 성한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 눈도 잘 쳐다보지 못하는 여린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술만 마시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너무나 사소한 자극에도 화가 나서 물건을 집어 던지고,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가족을 때리거나 심각한 폭언을 하지는 않았다. 마치 삐친 소년 같은 행동이었다.


입원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상담도, 치료 프로그램도 모든 것을 거부했다. 단식 투쟁을 하다가 과식 투쟁을 하는 식으로 극단적인 행동만 반복했다. 병동에서도 간호사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속상해하며 토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한 달 동안 이 사람과 치료적으로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일 년을 입원해도 전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나는 환자의 부인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의 낡은 점퍼와 닳아빠진 검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면회를 와서 남편을 돌보면서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던 여자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지칠 대로 지친 피로가 역력했다.

어차피 치료가 안 될 것이라면 입원비라도 헛되게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도와주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남편분을 치료할 자신이 없습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받아들이지 않으세요. 앞으로 몇 달을 더 입원시킨다 해도... 환자분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인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치료는 포기하시고 모시고 가시는 게... 입원비라도 아끼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제 마음도 편하지 않지만, 가정 형편을 생각하면..."


나는 진심이었다. 더 입원한다고 해서 환자의 건강이 조금 나아질지는 몰라도, 입원에 대한 넌덜머리부터 시작해서 환자의 병에 근본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한 달에 수 십만원 하는 입원비도 이 가정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옹색하지만, 그나마 입원비라도 아껴드리는 것이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제발... 도와주세요.‘

간절함이 묻어나는 그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 본인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지만, 이 간절한 부탁을 그냥 거절하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자녀들을 치료해 주면 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자녀가 두 명 있었다. 사춘기 청소년인 그들이 아버지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영향을 받지 않았을 리 없었다. 분명히 마음에 상처가 있을 것이고, 그 상처를 방치한다면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내가 치료할 자신이 없지만, 아들들이라면... 아직 어리고 변화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료에 대한 저항감도 아버지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환자 치료는 자신이 없었지만, 아이들을 상담한다면 분명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더 효과적인 접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한 번 만나보겠습니다.“

내가 입을 열자 부인의 눈에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스쳤다.

퇴근 시간을 넘겨 약속한 상담 시간. 아이들의 하교 시간과 어머니의 일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려니 어쩔 수 없었다. 진료실 문이 열리며 두 아이가 들어왔다.

첫째인 준호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쭈뼛거렸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목소리조차 가늘게 떨렸다. 마치 누군가 큰 소리라도 지르면 거북이처럼 목이 어깨 안으로 쏙 들어갈 것만 같았다.

반면 둘째인 민호는 아무렇지 않게 들어와 빈 의자에 털석 앉았다. 진료실 문 앞에는 어머니가 돌처럼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치료하는 주치의야. 그런데 너희들도 아버지 술 문제로 상처가 있을 것 같아서 선생님이 보고 싶어 불렀어.“


두 아이를 보니 감정을 다룰 줄 모른다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감정을 우선 다루기로 했다.

나는 진료실 한가운데 빈 의자를 놓았다. 사이코드라마에 나오는 빈 의자 기법이었다.

"저 의자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봐도 돼.“

긴 침묵이 흘렀다. 준호가 의자를 바라보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너무... 무서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큰 의미였다. 평소 아예 말을 하지 못했던 준호가 자신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표현한 것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창피해요!" 민호가 버럭 소리쳤다.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싫어요!“

나는 두 아이의 반응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둘 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첫째는 모든 것을 억누르며 자신을 작게 만들고 있었고, 둘째는 감정을 여과 없이 폭발시키고 있었다.

몇 번의 상담을 거치면서 준호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섭다"는 한 마디뿐이었지만, 점차 "속상해요", "화나요"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적어도 자신의 마음을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잘했어, 준호야. 네가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용기를 냈구나.“

나는 그에게 감정 표현을 격려하고 지지했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학습시켰다. 작은 변화였지만, 그동안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몇 번의 상담 후, 나는 아이들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희 아버지는 어릴 때 할아버지에게 많이 맞았어. 할아버지도 술을 많이 마셨어. 할머니도 맞아서 집을 나가버린 거야. 아버지는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에 집을 나와 혼자 살아야 했지.“

준호와 민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만약 너희가 초등학교도 못 가고 거리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아버지도 불쌍하네요." 준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자기가 받은 것보다는 더 많은 걸 너희에게 준 거야. 서툴렀지만 말이야. 아버지는 어머니도 없이 자랐는데, 너희에게는 자녀들을 끔찍이 사랑하고 아버지를 어떻게든 구하려고 노력하는 훌륭한 어머니가 있어.“

아이들의 눈에 처음으로 이해의 빛이 스며들었다. 형편없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기가 죽어 살았는데, 우리 가족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밉고 원망스러웠던 아버지가 불쌍하고 고맙게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변화였다.

한 달간의 상담이 끝날 무렵, 준호가 마음에 걸렸다. 민호는 그래도 자신의 감정을 표출할 줄 아는 아이였지만, 준호는 아직이었다. 충분하지 않다는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내 명함 세 장을 꺼내 각각에 내 핸드폰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준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건 명함이 아니라 쿠폰이야.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나한테 전화해도 되는 쿠폰.“

준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정말 언제든지요?“

"그래, 밤중이든, 새벽이든, 휴일이든 상관없어. 대신 세 번 이상은 안 돼.“

사실 이 말은 눈치를 많이 보는 준호가 정말 필요할 때 한 번이라도 편하게 전화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효과를 기대하고 한 말 이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순한 예방 차원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했다. 설마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집에 돌아간 아이들이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준호는 아버지를 따뜻하게 대했다. 아버지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박민수 씨도 변했다. 아들들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그의 마음을 녹였다. 외로움과 상처로 가득했던 마음에 치료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한강에서 준호의 전화가 왔다.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는데 전혀 죽을 일 아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정말 다행이었다.


내가 우려했던 일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끔찍했지만, 전화를 받은 것은 정말 정말 잘한 일이었다. 그 쿠폰이 큰일을 했다.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순간에 연결할 대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전화 한 통이, 그 쿠폰이 그를 한강 다리에서 건져 올린 동아줄이 되었다.

그 후 박민수 씨는 점차 술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끊을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은 매우 화목해졌다. 준호는 무사히 군 복무를 마쳤고, 민호는 더 이상 가족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세 가지를 배웠다.

첫 번째는 마지막 순간에 전화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사람을 자살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느다란 연결 끈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한국의 자살률이 OECD 최고 수준이라는 통계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 숫자 뒤에는 준호처럼 한강 다리 위에서 마지막 전화를 걸 사람조차 없어 홀로 절망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가느다란 실 한 올, 전화 한 통만 할 수 있어도 구할 수 있는 생명들이 그 연결고리마저 없어서 스러져 간다. 각자가 한 알의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는 조각조각 부서진 우리 사회의 병적인 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족치료의 진짜 힘이었다. 전문가가 하지 못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는 것. 가장 사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가족치료라는 것을.

전문가도 포기한 환자를 아들들이 치료했다. 아버지도 피해자고 아버지도 나름 노력했다는 점을 이해하고 나서는 아버지를 위로하고 아버지에게 전과는 다르게 따뜻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아들의 태도가 아버지를 감동시키고 치료해야 할 동기를 만든 것이다. 물론 그 중간에는 현명한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역할도 있었다.

그것이 기적적으로 아버지의 외로움과 속상한 마음에 치료제가 되었다.


세 번째는 어떤 사람이나 가족에게도 장점이 있다는 것.

좌절은 이것을 찾지 못할 때 일어나고 이것을 찾게 되면 희망이 생긴다는 것.

숨은 장점을 찾아 주는 것도 중요한 치료라는 것을 깨달았다

쿠폰 한 장이 한 가족을 구했다.


---이 글에 나오는 모든 사례는 제가 진료실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을 바탕으로 합니다. 다만, 개인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 내용은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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