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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대신비 Oct 26. 2024

인류를 구원하라

우리가 최전선이다


영화 속 천재는 대부분 이공계다.

수학, 과학 천재들이다.

수학 공식 칠판 가득 그려놓는 것으로

쉽게 천재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 터

인문학적 천재는 표현하기 어렵다.


진짜배기 대사와 진짜의 생 혹은

'순간'을 구현해 내야 하므로

웬만한 시나리오 작업 한계 넘어선다.

시도된 적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른다.


사실 작은 칠판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

주인공이 집중하거나 강의 한다면

간단한 도형이나 그래프 출현할 수 있다.


반면 '신 존재증명’의 괴델은

영화로 표현하기 좋다.

굿윌 헌팅(1997)이나

무한대를 본 남자(2015) 같은

영화 소재로 적격이다.



<신 존재 증명>의 쿠르트 괴델


우리의 이육사 시인과 같은 멋쟁이인 데다

독특하고 비관적인 캐릭터까지

요컨대 드라마틱하다.


게다가 아인슈타인을 조연으로 쓸 수 있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에서 라마누잔도

수학자이자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을

카메오로 출연시킨 바 있다.


무한대를 본 남자(2015)에서 라마누잔을 이끌어 준 하디교수 역 제레미 아이언스


제3정리 : E(x)⟺∀φ[φ ess x → □∃xφ(x)]
제4정리 : □∃xG(x)


괴델의 이 정리는 칠판 하나로 모자란다.

칠판 여러 개에 한가득 그려 넣고 폼 잡을 수 있다.

힘들이지 않고 천재 창조할 수 있다.


여기서 G는 신성 Godlike이다.


제3정리 : 특정 대상의 본질이 존재할 때,
본질을 만족하는 x가 필연적으로 존재함’을 E(x)라고 표기하자.

제4정리 : 필연적으로 G를 만족하는 x는 존재한다.


결국 신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결론 도출된다.


물론 이 공식이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 나오지는 않지만

G(Godlike)의 개념을 만족하는

Positive라는 성질을 Negative로 바꾸고

신의 G를 유령 G로 바꿔도

논리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신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존재하게 된다.

도깨비방망이와 같다.


온갖 악의 화신들 죄다 등장시킬 수 있다.

유령, 괴물, 좀비, 드라큘라


저기서 신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신이라기보다

괴델의 공리와 정의 안에 사는 신일 터

신은 괴델만의 그것이 아니다.

할리우드태생도 아니다.


물론 괴델의 증명에서 건질 건 하나 있다.

“수학은 논리다. 과학은 철학이다.”



아인슈타인과 괴델(왼쪽에서 세 번째)



기원전 6세기 이오니아의 철학자들 즉,

탈레스나 데모크리토스들을 우리는

때로 철학자로 때로 과학자로 불러왔다.


칼 세이건은 과학자에 가깝다고 말했지만

나라면 '과학은 철학을 수렴한다. 혹은

수렴해가고 있다'라고 말하겠다.


‘바람은 신의 숨소리이다.’라는 정의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당시 시민들에게

공기의 입자성을 실험으로서 증명한

엠페도클레스는 분명 과학자에 가깝다.


지구, 달, 태양 위치에 따라 변하는

달의 위상과 월식 현상을

최초로 완전하게 이해한 아낙사고라스도

과학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자연 철학자라는 이름 붙었다.


과거 무수한 철학자들이 진리 탐구했다.

아니, 진리의 입구 찾아 헤맸다.


누군가는 진리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고 했고

누군가는 진리란 있을 수 없고

있어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대개 허무한 논쟁이다.

이것은 철학이 아니라

철학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철학 밖에서 뜬구름 잡고 있는 것.


진리가 있거나 없거나

그것은 같은 말이라는 것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혹은 정치와 종교에 이용하고 있다.


진리는 있거나 없거나 같다.

존재는 있거나 없거나 같다.

구원도 마찬가지.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라는 문제가

바로 그 뒤 따라온다.


“있으면 진리에 온 생 바칠 수 있나?

아니면 돈 싸 들고 가서 천국행 티켓 끊으시려고?”


물론 있다는 결론 내려지면

그때부터 안심하고 꿀잠 잘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말한다.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이다!


존재는 너와 나 사이에서

아기처럼 거룩하게 태어나고


진리는 오로지 네가 지금 여기 살아 숨 쉴 때만

섬광처럼 번득인다.


아니다.

다시 말해야겠다.

진리란 오로지 태도의 문제다.


지금 당장 진리가 그대 눈앞에 보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서슴없이 올라탈 수 있는가?

우리는 거기에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우주의 도도한 흐름에 몸 맡길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내가 만약 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 답하는 것!


큰 걸음 걸으며 묵묵히 그를 실현하는 것.

세계의 고난에, 구원 요청에 응답하는 것.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선구자 정신으로 인류의 전위에 서는 것.


민주 시민으로서

누구나 그렇게 천하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우리의 구호는 이것이다.

“인류를 구원하라. 우리가 최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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