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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Sep 22. 2023

그녀가 내 말뜻을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루시’중에서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루시’의 주인공 루시는 카브리해 지역에서 미국으로 가사도우미를 하러 온 여자아이이다. 루시는 자신에게 “그러니까 섬에서 온 거네?”라고 말하는 주인아줌마의 친구의 말투에 별안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날씨가 자기 기대에 어긋났다고 비참한 기분에 빠지는 주인아줌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토록 벗어나길 원했던 것(집과 엄마)을 떠나왔지만 자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 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나는 루시를 읽는 내내 ‘니사’를 생각했다. 니사는 내가 만든 짜장과 카레를 좋아했다. 그래서 짜장과 카레를 만드는 날은 니사의 몫으로 한 그릇을 따라 담아 주곤 했다. 니사는 아이들과 퍼즐 맞추기와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것을 좋아했다. 니사는 내가 인도에서 살 때 네팔에서 온 입주도우미였다. 니사의 방은 우리 집 현관 옆에 있었다. 3평 남짓한 크기의 방이었고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창은 없었다. 니사는 15살에 네팔을 떠나 인도에 왔고 내가 니사를 만났을 때 니사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아이들은 니사를 ‘언니’라고 부르며 따랐고 나도 ‘니사’를 아꼈다.     

 

‘루시’의 주인아줌마인 미국인 ‘머라이’는 루시를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하고 가족같이 지내기를 기대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평범한 일상의 생활과 생각과 감정은 루시의 마음에 이질감을 주고 그것은 그녀에게 상처가 된다.


니사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니사가 종종 첫째 아이의 학교가방을 열어 첫째 아이가 배운 내용들을 유심히 쳐다보던 것이 기억났다. 자신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거리의, 상점의 남자들이 무서워 주말에도 밖에 나가지 않고 창도 없는 방에 하루 종일 있곤 했다. 딱 한번 가불을 요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의 가족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와 오빠 그리고 어린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니사는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그녀가 도와야 하는 가족의 범위가 직계가족을 넘어 어디까지일까 나는 생각했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니사가 행복하다는 말을 했었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일하는 여자아이의 입에서 나온 ‘행복’이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졌었다.      


우리 가족이 인도를 떠난 후에도 니사는 종종 자신의 소식을 전했다. 지금 니사는 인도를 떠나 키프로스라는 지중해 섬나라에서 입주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그곳에 친구가 있다며, 나와 함께 지낼 때에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니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는 니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 바란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것이든 그 모든 것들이 니사의 인생을 풍성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길 응원한다.          


저메이카 킨케이드의 ‘루시’중에서     


그날 아침 일찍 머라이어는 내가 있는 객실로 와서 지금 기차가 막 갈아엎은 밭 사이를 달리고 있다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풍경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객실의 블라인드를 올리자 갈아엎은 밭이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광경에 난 매서운 말투로 대꾸했다. “저 일을 내가 안 해도 돼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가 내 말뜻을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다. 그 한마디에 아주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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