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며 병들어갈까
이직 직후 나는 번아웃이 왔던 것 같다. 새 직장, 새 마음으로. 머리를 팽팽 돌려서 적응하기도 모자를 판에 번아웃이라고? 어쩔 수 없었다. 길고 긴 겨울의 시작이었고, 이전 직장에서 나오려고 기를 쓰며 6개월간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이직 준비를 했다. 틈틈이 면접 준비를 했고, 매일 저녁 9시에 화상으로 면접 준비를 했다. 3주 내에 다른 도시 집을 찾아야 했고 이사를 준비했다. 이전 집 계약이 끝나지 않아 다음 세입자도 찾아야 했다. 몸도 바빴고, 마음도 바빴다. 다행히 이사를 마치고 크게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 너무 피곤했고, 쉬고 싶었다. 노동의 기쁨이랄 게 있을까… 그냥 매일 다녔다. 물론 빡센 일정에 지친 것도 있겠지만 번아웃일 수 있겠다 하며 관련된 책을 찾아봤다.
저자는 프라이부르크에서 공부하고 재직하고 있는 의대 교수이다. 노동과 건강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해왔다고 한다. 책 초반에는 길고 자세하게 독일 노동 관련 통계가 나온다. 논문 쓰기에 익숙한 사람의 글쓰기 방법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인식 변화를 무려 고대 그리스부터 훑고 넘어간다. 고대 그리스에서 노동은 (아마 육체노동에 한정된 것이겠지만) 가치가 없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여졌다. 중세의 “노동은 징벌, 훈육, 신의 계명이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현대 인간은 노동에서 소외되는 존재다. 테일러리즘으로 인간은 기계에 맞춰야 하고, 이는 가까이서 쿠팡 창고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노동에 대해 다루려면 AI 이야기가 필수일 것 같다. 챗 지피티가 나오고 체감 몇년 지나지 않았는데 이미 AI가 인간 노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향후에는 어떤 노동만 남을까, 싶다. 아마 돌봄 노동이 가장 크게 떠오를 것 같다. AI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개발되는 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
“일에서 기쁨과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먼저 노동의 진가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만약 가치가 없고 타인을 위해서도 의미가 없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면, 과연 자신의 일을 선하고 의미 있고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일에서 기쁨을 찾기 위한 가장 중요한 개인적 전제는 모든 인간은 가치가 있고 존엄하며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당하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찾기 어렵다. 이런 것들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강요받는다면, 결국 그는 병이 들 수밖에 없다.”
책을 읽다가 ‘그걸 몰라서 안하는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번아웃을 피하는 것은 과로한 업무를 줄이고 여가를 즐기고… 이런 이야기가 반복된다. 특히 이 구절은 너무 지당한 말이지만.. 유럽 레스토랑, 카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비백인 이주민 노동자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유럽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고강도 저임금 노동을 이주민에게 외주화 하면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분주하고 세련된 파리 카페 웨이트리스는 젊은 백인들이지만 지하에서 무거운 그릇을 옮기고, 뜨거운 불로 요리하고, 쌓여있는 설거지 하는 것은 내가 본 것만 해도 100퍼센트 유색인종 노동자다. 유럽은 그들을 멋진 여행지의 얼굴로 허락하지 않고, 그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땀 흘려가며 EU 시민보다 저임금을 받기를 기대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나의 노동에 대해서 말할 때는 타인의 노동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기업이 기계와 설비는 세심히 정비하고 관리하면서 직원들을 한번 쓰고 버릴 일회용 물건처럼 소모하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실제로 여러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노동의 적’은 게으름이 아니다. 게으름 자체는 논의할 게 못 된다. 노동의 실제적인 적은 일하는 인간의 가치가 떨어지고, 인간이 의미를 상실한 채 일하고, 비인간적인 강압에 처하고, 낮은 임금을 받거나 영혼 없는 기계가 되어가는 상황이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의 노동을 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