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소설로 사회운동을 한다면

by 어린당나귀

소설이 사회운동 같다는 생각을 했다. 먼 미래에 탈핵과 남방 돌고래와 인간이 망친 생태계를 위해 노래하는 친환경 걸그룹 세상의 모든 바다와 ‚흰 봉투‘를 받는 고려인 니콜라이.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처음에는 그냥 달달한 연애 단편소설이겠거니,하고 펼쳤다. 두 사람은 각자의 세계를 가진 개체니까 두 사람만 모여도 인터네셔널인가? 생각했다. 국제 연애 이야기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작가의 문체는 빨라서 한 단편 안에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훑고 지나가기도 한다. 점점더 빨라지는게 인스타그램 릴스 속도와도 같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 첫번째 단편인 <세상의 모든 바다>를 읽고 나는 왠지 박상영 작가의 첫 단편 소설집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가 떠올랐다. 이 표제작을 읽고도 엄청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세상의 모든 바다> 역시 참신해서, 현실을 반영했지만 이런 아이돌 그룹은 영원히 나올 것 같지 않아서 또 현실에서 가장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들은 <세상의 모든 바다>, <롤링 선더 러브>,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보편 교양>이다. 다른 분들도 소설을 읽게 된다면 어떤 소설이 왜 재밌었는지 말씀해주시라!!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로 들어가자. 진주와 니콜라이 두 사람은 같은 중학교를 나왔지만 국적이 다르다. 니콜라이의 부모님은 소련에서 나고 자란 고려인이지만 니콜라이는 평균 한국인 연봉을 웃도는 연봉 삼천팔백만원을 받아야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고 그 이후에는 어떤 어떤 절차를 거쳐 시민권을 딸 수 있다. 이런 관청과 구청과 시험과 서류들은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계단 같다.


진주와 니콜라이는 학창시절에는 방과후에 교무실에 불려가 무슨 무슨 비용을 내지 않아 학교에서 독촉하는 ‘흰 봉투를’ 나란히 받는다. 서로 모른척 지내다가 어른이 되어 진주는 대형 마트에서 일하며 공무원 준비를, 니콜라이는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다가 경기도 외곽에서 만나 지글지글 보글보글 음식을 같이 먹는다. 1인분만이 아닌 사이드 메뉴도 시키고, 남아서 냉동고에 얼려놨다가 다시 데워 먹지 않아도 되는 지글지글 보글보글 음식. 우리가 빡대가리라서 이렇게밖에 못 사는 거라는 결론에 도달하다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전 세계적인 우경화가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매일 야근해도 서울에 작은 구축 아파트 사기도 어려운 지금, 너도 나도 취업이 어려워 외국인이 일자리를 뺏어 갔다며 증오의 이유를 찾는 사람들. 열심히 산만큼 보상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 모든 게 사회적 약자만 없어지면 해결될 것 같다. 이것이 그 생각의 흐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자아실현 같은 건 모르겠지만 견딜 만한 일을 하고, 지글지글 보글보글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삶. 가끔은 나란히 누워서 햇볕을 쬘 사람이 있는 삶. 이 정도면 괜찮다고 여기면서도 어두운 골목을 걸어 다시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면 불안해졌다. 어느 날 흰 봉투가 날아와 계약 종료 통지서나 처음 들어보는 병명의 진단서를 덜컥 내놓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걸까.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만족해야 할까.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좀’ 같은 제목의 글에 사람들이 쏟아놓는 댓글을 보면 가끔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더 잘살고 싶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어야 한다고. 솥뚜껑삼겹살도 즉석 떡볶이도 먹지 말고 맥주도 마시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고 공부해서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남들 다 자리잡을 때 어리바리하고 게을렀던 우리가 ‘빡대가리’라고. 두 사람은 이런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가 그렇게 잘못 살았냐?””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건 아니지만 아무도 알 바 아닌 일을 하다 무시당하고 위협받고 쫓겨나고 심지어 죽은 이들을 조롱하는 댓글 속에서도 엠마는 늘 같은 표정으로 같은 말을 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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