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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May 2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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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s View Ep.1


Simon's View Ep.1



난 평생을 쫓아가기 위해서 싸웠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인생은 제대로 나의 주관이 들어가기 시작했던 20살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 인생에 대해 책임을 지기 시작했던 시작점이랄까?(한국의 경우에는 고등학교의 교육까지 대부분 최소한의 위치를 보장해 주고, 평등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기 때문)


한국은 재미있는 것은 인생의 시점에서 정해진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20살에 4년제 대학입학, 1년 대학 진학 후, 군복무, 4년 후 졸업 후 대기업 입사, 입사 후 3년 후, 내 집마련, 자차 마련, 결혼,,, 크게 보면 이런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 올바른 삶 정답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 보면, 대부분은 이 길을 걷기 위해 노력을 하고, 그런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라는 마크를 받기도 한다. 국가에서 이 길을 가도록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22살에 처음 대학이라는 문을 밟아 본 나로서는 출발 지점이 너무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이미 바람직한 안락한 사회의 통념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태랄까.


특히 20살 때 처음 자아가 생겼을 때, 어떤 식으로 인생을 만들어갈지 몰랐다. 자신감도 없었을 뿐 아니라 이미 다른 길로 빠졌기 때문이다. 늦게라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쳤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많이 울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뒤쳐진다는 부담감과 초라한 나의 모습에 너무 슬펐고, 이미 게임에 진 것 같고, 인생에 Restart 버튼이 있다면 누르고 싶었다.


혼자 여행하면서, 군대에서 매일 고민을 하고, 인생에 대해 고찰을 많이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면서 운이 좋게 국가시설의 행정병으로 일하면서 코로나 팬데믹(국가 위기상태) 행정 최전방에서 국가의 행정시스템을 둘러보고, 국가에서 사람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도 알게 되고, 그 결과 이제는 좀 더 넓은 시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주식과 코인등을 통해 전 세계의 경제를 파악하기도 했다. 그 넓은 세계에서 느낀 게 있다면,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냉혹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을 들어가지 못하고 고졸인 상태에서 느끼는 사회의 시선과 대학입학 후에 세상이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을 때는 너무 가슴이 많이 아팠다. 허무하기도 했다. 단 1년의 시간으로 나의 가치와 나의 시선이 달라지는 사회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힘들게 이루어낸 대학이라는 관문조차도 허상에 불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때는 많은 투자 붐이 있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불로소득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시기에는 근로소득의 가치가 하염없이 의미가 없는 시기였다. 불로소득은 노동을 하지 않고 생산을 하지 않아도 가진 재산이 올라갔다.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재산이 증가할 수 있을까는 근로소득의 가치를 줄이고 그 이득을 불로소득의 수여자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노예들이 돈을 벌면 그것이 주인에게 돈을 주는 느낌이랄까. 불공평함을 느꼈다. 그리고,,, 돈이라는 것은 참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많으면 좋긴 하겠지만 돈을 목적으로 인생을 사는 것은 참 허무하다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시급이 다르기도 하고, 돈이 많아 성공했다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또한 돈이 많다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 뜻은 비교 대상이 있어야지 돈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서만으로는 절대 우위를 느낄 수 없다는 것... 결국 누군가 나와 경쟁을 해야만 돈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창업전공을 다중전공을 하면서 많은 스타트업에 대해 알게 되고, 기업의 심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기업이라는 것은 기업의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한 무서운 집단이었다. 창업을 하거나 사업을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정서적 감정을 가지지 못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자신과 정이 있는 사람이어도, 회사의 실적에 저해하고 가치 없다고 판단하면, 버려야 했다. 또한 사람을 뽑을 때도 능력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한 것보다는 얼마나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일지가 더 중요했다. 속된 말로는 최대한 적은 임금으로 최대의 이윤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했다. 현대판 부품 톱니바퀴가 될 사람을 뽑는 것이 중요했다. <돈에 대하여 느낀 점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그것을 알게 되니, 취업이라는 것은 본인의 노력보다는 사회의 환경이 더중요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사우디에 가서 느낀 것은 사우디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학과는 Petroleum engineering이었다. 왜냐 Aramco라는 세계 최대 정유회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 반도체가 있기 때문에, 전자공학, 컴퓨터공학이 인기가 많다. 인도여행을 했을 때 우연히 뭄바이에서 의사를 하는 나와 나이 비슷한 부부를 라다크 판공초에서 만났는데, 의대 온 것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가장 인기많은 전공은 컴퓨터공학과나 전자공학과라고 했다 특히 의대보다도 공대가 인기가 많다고 했다. 왜냐면 의대를 전공을 하면, 주 6일(인도는 6일 병원근무라고 한다)을 병원에서 일을 해야 하지만, 공대는 미국 기업에 취직해 인도 밖으로도 갈 수 있는 기회도 있고, 임금도 좋다고 한다. 이처럼 결국 어떠한 산업군이 기업이 많고, 국가의 주요 산업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돈이 움직이고 그러는 것 같았다. 결국 시대에 흐름이나 그때의 상황에 따라 취업이 되고 안 되는 것 같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내가 생각하기엔 자신이 진짜 좋아하고 열정이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취업을 위해서 공부하는 곳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점점 기업 연계형 학과가 증가하고, 얼마나 취업이 잘되느냐에 따라서 대학교 정원이 달라지고, 선호도를 따지는 것은 대학의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는 인생의 본질을 배우고,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연계형과 같은 취업을 위한 대학은 맞춤형 고급형 톱니바퀴를 만드는 곳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얼마나 젊은 학생들이 인생을 갈아 넣으며, 그것을 위해 행복을 갈고 있을까 생각이 든다.(물론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가 동남아여행을 할 때, 시장에서 열대과일을 팔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열대과일을 팔고 있는 사람은 자아 없이, 인생을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좀 더 나은 사업군을 고민하지 않는 것 인생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 보인다?)


https://youtu.be/cxUuU1jwMgM?si=9E_DGIcnj25YLmio


경쟁을 하지 않고 나의 가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더라도, 교육이 어떠하더라도, 부자나라라고 해서 전부 행복하지 않고, 가난하다더라도 행복한 나라도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는 시기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이란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어렸을 때의 나에게 행복함을 느끼는 방법 중에는 연애, 노래방, 피시방(음식 이런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난 음식에 대해 행복함을 많이 느끼지 않는다) 이 정도였다. 그러다가 성인이 됐을 때는 음주가 하나 더 추가된 정도? 노래방 피시방 음주의 경우에는 1차원적인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강했다. 그 행위를 하고 있을 때 행복을 느끼고, 하지 않고 있을 때는 만족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느낌이었을까? 지속적인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없었다. 


그 뒤로 자극적인 행복을 느꼈을 때는 자아실현을 했을 때 욕구였다. 열심히 노력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행복함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러한 행복감은 연예와 같이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오는 행복이었다. 예를 들면 연예의 경우 여자친구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행복이 있었다. 여자친구가 없으면, 그 행복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니면, 상대와의 관계정도에 따라 행복도가 달라졌다. 마찬가지로 어떠한 목표를 실현했을 때, 내가 혼자 만족하는 행복도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인정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이것도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서 비롯되는 거였다. 그래도 이것은 기존의 행복과는 달리 지속적인 행복을 나에게 주었다. 마치 대학을 입학을 힘들게 하면, 뿌듯함이 계속 이어지는 듯한 느낌?...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이루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나를 갈아 넣고 이루어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마치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고지를 정복하고 뿌듯함을 느끼는 감정이랄까,,, 또 상대와의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은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서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 때로는 다른 사람의 비교를 통해서 절망과 슬픔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날, 마치 '박원-노력'처럼 행복이라는 것은 사랑처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이성적으로 생각을 했을 때는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게임 속의 퀘스트처럼 어떠한 조건을 만족을 했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행복이란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즉 많은 감정이었다. 화가 나거나 웃거나 하는 그런 감정 말이다. <행복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보도록 하고>


그렇다면 언제 내가 감정이 움직이는지 고민을 해봤다. 바로 예술(Art)을 소비를 할 때 감정이 움직였다. 예를 들어 축구를 볼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멋진 장면을 봤을 때, 영화를 봤을 때, 음악을 들었을 때 등등. 이성적으로 판단을 했을 때, 이러한 것들은 인생에 발전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 있을 때는 공부를 하고 학문을 하는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축구에 대한 룰과 역사를 알고 있을 때, 어떠한 팀을 응원하면서 분노를 하기도 하고, 기쁨의 눈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사람이 멀리서 쳐다봤을 때는 그저 다 큰 성인들이 작은 공을 발로만 차면서 그물로 옮기려고 씨름하는 것에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나 싶을까 고민을 하곤 한다. 또한 역사를 알고 에피소드를 알 때, 같은 불국사를 보더라도 느끼는 감정이 다르고, 미술관에 걸려있는 단순한 낙서 같은 그림을 보면서 울게 만드는 것이다. 즉 좀 더 행복함을 느끼는 길이 많아지기 위해서 사람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가 싶다.


나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예술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스윙스와 지상렬사이에 있었던 갈등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사실 스윙스나 지상렬을 잘 모르지만),  스윙스의 시계를 지상렬이 술잔에 넣으면서 불쾌하게 보이는 행동을 해서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스윙스라는 사람은 그 지상렬이란 사람을 '위험한 예술'을 하는 사람이기에 respect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한 형이 어떤 사람이 예술가병에 걸렸다면서, 예술가인척을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봤다. 유명한 사람들이 하는 것은 예술이고, 유명하지 않는 사람이 하는 것은 그저 질병인 것일까?


내 생각엔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 유명한 예술인 거고, 그렇지 않고 내용이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렵거나 감정의 동요 정도가 약한 예술을 하는 사람이 하는 것은 마이너 한 예술인 것 같다.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로 때로는 위험한 예술을 하기도 하고, 위험한 경계를 타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맛과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게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렇듯 예술가들은 사람의 감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독재국가에서는 많은 예술가의 탄압이 있는 것 같다. 나의 예술관을 모두가 동의를 해야 나만의 독재국가가 만들어지는데, 예술가들이 위험한 예술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만들어내어 독재국가만의 예술에 반론이 생기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하고 아름다운 사회일지 않을까?


예술가들의 길은 많이 외로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경계에 있는 예술을 생산을 하다 보니, 같이 소비를 하거나 생산을 하는 동지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가 결국 자신이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없는 기회를 잃어버리고 자신이 가던 길을 쫒다가 잃어버리면,,, 결국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잊어버리고, 정신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법을 잊어버리고, 육체적인 자극을 통해서만 행복을 느끼게 되어 행복을 느끼기 위해 마약에 손을 데는 것 같다.



Ai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Ai는 이성적인 판단을 더 좋게 하기도 하며, 때로는 많은 예술가들이 열어놓은 예술을 하기도 한다. 나만의 예술을 하지 않고 로봇처럼 수동적인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결국 AI에게 대체될 것 같다, 이처럼 좀 더 풍요로운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만들려면,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예술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즉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많은 행복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를 위해 생산해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주체적으로 내 인생을 이끌어가는 예술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 내가 혼자 행복을 느끼며, 행복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훗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의 행동 나의 인생에 대해 감정을 느껴서 나의 인생 목표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술을 하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DvoXClMs-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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