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컨설턴트로 살아남기

— 출근 전의 소회 —

by connecting dot
만 5년

숫자로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몸은 정직하게 기억한다. 수십 개의 프로젝트룸, 수백 번의 킥오프 미팅, 그리고 이름도 가물가물해진 수천 장의 명함들.


IT 컨설팅 회사로 옮기기 전, 나는 소위 말하는 인하우스 회사에 다녔다. 팀장 눈치, 임원 눈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줄타기를 하며 인간관계라는 이름의 생존게임을 했다. 보기 싫은 얼굴을 매일 봐야 하는 그 피로감. 그게 싫어서 선택한 길이 바로 컨설팅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컨설팅의 세계는 묘하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람도 끝난다. 길어야 3개월. 그러면 또 각자의 다음 프로젝트로 뿔뿔이 흩어진다. 불편한 관계도, 어색한 감정도 굳이 끌고 갈 필요가 없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만 매끄러우면 쓸데없는 내부 보고 따위는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운이 좋은 날엔, 업무시간 한복판에 뜬금없는 자유시간이 생기기도 한다. 커피 한 잔 들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수 있는 그 잠깐의 여백. 그게 이 일을 버티게 해주는 소소한 특권이다.


그런데.

사람이 바뀐다고 해서, 인간의 본성까지 바뀌는 건 아니더라.


어떤 팀원은 자기한테 일이 한 톨이라도 더 떨어질까봐 온갖 꼼수를 동원한다. 회의 때마다 바쁜 척, 아는 척은 달인의 경지인데 막상 실무는 늘 누군가의 몫이 된다. 어떤 이는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싶은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정보를 틀어막는다. 알려주는 척하면서 핵심은 빼고, 상대가 실수하는 걸 멀리서 지켜보며 내심 안도하는 그 표정.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 따로, 일하는 척하는 사람 따로.

프로젝트마다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말은, 결국 어떤 인간과 한 조가 되느냐의 문제다. 업무 난이도가 아니라, 사람 난이도가 이 일의 진짜 변수다.


이제 오십을 바라본다.


예전엔 그냥 참았다. 아니, 정확히는 참는 게 더 현명한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잘 안 된다. 부당하다 싶으면 맞서게 된다. 그리고 그 뒤엔 어김없이 후폭풍이 온다. 나이가 들수록 둥글어진다던데, 나는 왜 반대로 가는 건지.

어쩌면 그게 정직한 것일 수도 있다. 더 이상 억울함을 삼키는 데 쓸 에너지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돈 벌기가 예전보다 힘들어졌다는 걸 몸으로 느낀다. 체력도, 감정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다. 그 사실 하나가 오늘도 나를 현관문 밖으로 밀어낸다. 넥타이를 고쳐 매고, 노트북 가방을 들고, 또 다시 그 치열한 프로젝트 현장으로, 수많은 인간 군상들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씁쓸하냐고? 물론이다.

그래도 오늘도 간다. 그게 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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