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by connecting dot

딱 반백 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숫자다. 오십이라는 글자를 입안에서 굴려보면 어딘가 남의 이야기 같다. 이십 대 때의 나는 오십을 상상이나 해봤던가. 그때의 오십은 그냥 '어른'이었다. 아주 많이 어른. 모든 걸 다 알고, 모든 게 다 정리된, 그런 어른.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생일 아침이 밝으면 습관처럼 카카오톡을 켠다.

이걸 스스로도 안다. 창피한 짓인 줄도 안다. 쉰 살짜리가 아침부터 카톡 알림을 확인하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어쩌겠나. 손이 먼저 움직이는 걸. 뇌가 명령을 내리기 전에 엄지가 이미 화면을 두드리고 있다.

50이 되면 생일 기대감이 좀 흐려질 줄 알았다. 아니, 흐려져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나이에 생일 기다리는 건 좀 유치하지 않나.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기대감은 여전하다. 오히려 더 섬세해진 것 같기도 하다. 스무 살 때는 그냥 뭉텅이로 기대했다면, 지금은 굉장히 구체적으로 기대한다.

누가 먼저 보낼까. 몇 시에 올까. 어떤 말로 쓸까.

이걸 기대하는 내가 좀 웃기다. 그러나 멈출 수가 없다.


생일 축하 메시지에는 몇 가지 분류가 있다.


첫 번째는 전혀 예상 못 한 사람의 축하다. 이게 제일 묘하다. 한동안 연락도 없었던 사람, 아니면 그냥 스쳐 지나간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온다. 분명 카카오톡이 알려줬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시킨 것이다. 근데 그게 어떻다는 건가. 알고도 안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알림이 떴어도 귀찮으면 그냥 넘긴다. 그 사람은 귀찮음을 이기고 손가락을 움직인 것이다. 그러니 고마운 거다.


두 번째는 내가 못 챙겨준 사람의 축하다. 이게 또 복잡하다.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그 사람 생일을 기억이나 하고 있는 건지. 챙겼던가. 아마 못 챙겼을 것이다. 그 생각이 들면 축하 메시지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괜히 내 잘못 같다. 기분 좋은 날 아침부터 반성을 하게 된다. 생일이라는 건 이렇게 사람을 복잡하게 만든다.


세 번째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의 축하다. 이건 설명이 필요 없다. 그 사람 이름이 뜨기 전까지는 계속 휴대폰을 들었다 놓는다. 왜 아직 안 오지. 바쁜 건가. 잊은 건가. 설마 일부러 안 보내는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50살이 이러고 있다.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게 사람 사이의 이야기라는 게 또 따뜻하기도 하다.


오늘 특별히 기쁜 일이 있었다.

내가 챙기는 사람이 나를 챙겨줬다. 그냥 메시지가 아니라 선물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해도 역시 좋다. 기대를 했는데 기대대로 됐을 때의 그 만족감. 이건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소중해진다. 당연한 게 아닌 줄 아는 나이가 됐으니까.



챙기면 챙김 받는다는 단순한 진리를 50년 만에 다시 확인했다.

오십이 됐어도 생일은 여전히 설렌다.

이게 유치한 건지, 아직 청춘인 건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유치하면서도 아직 청춘. 그 경계 어딘가에 내가 서 있다.

생일이라는 건 결국 내 존재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날이다.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가 '나 아직 여기 있어, 너 기억하고 있어'라는 신호다. 그 신호들이 쌓이면 하루가 따뜻해진다.

50살의 생일이 이렇게 기분 좋을 줄 몰랐다.

내년 51살 생일도, 별수 없이 또 아침부터 카톡을 열겠지. 그리고 또 설레겠지.

그래도 괜찮다. 설레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이니까.

축하해준 모든 분들,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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