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법정에 한국교회를 고발한다』프롤로그

by 임서하

프롤로그: 나는 왜 한국 교회를 고발하는가


0. 신앙을 떠나지 않았기에 침묵할 수 없었다


원고: 26년 차 모태신앙 한국 성도

피고: 한국 교회

이 소송을 그리스도의 법정에 접수한다.


나는 교회를 떠난 사람이 아니다. 교회를 미워하는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태어나 26년을 신앙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20년간 주일학교 의자에 앉아 성경을 펼치고,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던 아이였다. 지금도 신앙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내 삶은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신앙이라는 언어로 채워져 왔다.


그런 내가 지금, 한국 교회를 고발한다.


이 고발은 분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안타까움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교회가 쇠퇴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청년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았다. 신앙은 지키되 교회는 포기하는 이들의 고백을 들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보기보다 세상을 탓했고, 구조를 바꾸기보다 더 큰 소리로 기도했다.


1. 신앙의 여정: 합동에서 성공회로


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복음을 들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다. 아직도 또렷하다. 입교 예식을 치르던 그날이. 교회 성도들 앞에 서서 신앙고백을 낭독할 때, 나는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다짐했다. 그 순간의 진지함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내가 배운 신앙과 내가 목격한 교회의 모습 사이에 깊은 간극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복음은 일치를 말하는데 교회는 분열했고, 성서는 겸손을 가르치는데 교회는 교만했으며, 그리스도는 섬김을 보여주셨는데 교회는 권력을 추구했다.


그 간극은 나를 깊은 신학적 고민으로 이끌었다. 나는 성서를 다시 읽었고, 교회사를 공부했으며, 초대교회의 전통을 탐구했다. 그리고 확신하게 되었다. 성찬식은 가급적 자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사인 성체성사와 세례성사뿐 아니라 교회의 다른 성사들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교회는 일치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정치적 중립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이러한 신학적 여정은 결국 나를 대한성공회로 이끌었다. 성공회에서 교적부를 작성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타교파 전입 예식을 치르던 그날, 성공회 신자들 앞에서 다시 한번 신앙고백을 할 때, 나는 알았다. 나는 교회를 바꾼 것이 아니라, 더 온전한 복음을 따르기 위해 길을 택한 것임을.


가족들은 여전히 합동 측 교회에 다닌다. 할머니는 처음에 걱정하셨다. 교세가 작은 교단으로 간다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하지만 이제는 가족 모두가 내 신앙을 존중한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내적인 갈등은 없었다. 오히려 나는 두 교회를 동시에 경험하는 사람으로서, 더 넓은 시야로 한국 교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2. 떠나는 이들의 목소리


침묵할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의 사건 때문이 아니었다. 여러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가장 아팠던 것은 가까운 이들이 하나둘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모태신앙이었다. 나처럼 교회 안에서 태어나 자라며,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하며, 성서를 읽고 신앙을 고백했던 이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교회를 등지고 살아간다. 그들의 말을 듣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교회가 썩었어. 더 이상 거기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어."

"교회는 개혁하지 않아. 문제를 지적하면 오히려 나를 이단시하더라."

"교회가 세상과 다르지 않아. 권력 다툼, 돈 문제, 명예욕. 세상보다 더 추하더라."


나는 그들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경험한 것들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것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른 선택을 했다. 나는 교회를 등지지 않기로 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고, 그 신앙은 교회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더욱 말해야 한다고 느꼈다. 떠난 이들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들이 겪은 상처가 헛되지 않도록, 그 상처가 교회 개혁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3. 평범한 신도의 목소리


한국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은 이미 많다. 신학자들의 날카로운 분석도, 언론인들의 냉정한 비판도, 목회자들의 뼈아픈 반성도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신도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매주 예배당 의자에 앉아 설교를 듣고, 헌금 봉투를 내며, 교회 안팎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려 애쓰는 이들의 고백 말이다.


나는 그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 전문 신학자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닌, 그저 26년간 신앙 안에서 살아온 한 명의 성도로서. 교회 개혁은 위로부터만 이루어질 수 없다. 아래로부터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침묵하는 다수가 말을 시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침묵하는 순간, 교회는 계속 쇠퇴할 것이다. 문제를 덮고, 비판을 회피하며, 안주하는 순간,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펜을 든 이유다.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가 다시 교회다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4. Semper Reformanda: 항상 개혁되어야 하는 교회


한국 교회는 개혁의 전통 위에 세워졌다. 종교개혁의 정신,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교회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말하고 싶다. 한국 교회가 여전히 고민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개혁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표현이다. 변화 가능성을 믿기에 비판하는 것이다. 포기했다면 침묵했을 것이다.


나는 한국 교회의 역사를 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의 뜨거움을, 일제 강점기의 신앙적 저항을, 전쟁 이후의 놀라운 성장을 안다. 그 역사는 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 교회는 변할 수 있다. 회개할 수 있고, 개혁할 수 있으며, 다시 부흥할 수 있다.


그 부흥은 숫자의 증가나 건물의 확장이 아니어야 한다.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5. 이 글의 독자에게


이 글을 읽을 당신은 누구인가. 혹시 교회 안에서 개혁을 꿈꾸며 외로이 싸워온 이는 아닌가. 혹은 교회에 실망하여 떠났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만큼은 붙들고 있는 이는 아닌가. 아니면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이 고발을 마주할 용기를 가진 이인가.


당신이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나는, 그리고 이 글이 당신에게 말을 건넨다.


교회 내부의 개혁자들에게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교회를 떠난 이들에게는 당신의 상처가 헛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전하고 싶다.


나는 꿈꾼다. 교회를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그들이 평양 대부흥 운동 때처럼, 회개와 눈물로 무릎 꿇고, 다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일으키는 것을.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변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교회가 먼저 회개해야 한다. 교회가 먼저 개혁되어야 한다.


6. 고발의 기준


나는 이 고발을 성서에 입각하여 제기한다. 내 개인의 기준이나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그 성서의 기준으로 한국 교회를 질문한다.


동시에 나는 양심에 따라 말한다. 26년간 교회 안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더 이상 침묵으로 덮어둘 수 없다는 양심의 명령에 따라.


그리고 나는 시민으로서 말한다. 교회는 이 사회 안에 존재한다. 법과 제도, 공동체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신앙 공동체이기 이전에, 우리는 이 땅의 시민이기도 하다.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며, 투명성과 윤리성을 갖추어야 한다.


복음이 복음답게 선포되고, 예배가 예배답게 드려지며,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나의 소망이며, 이 책의 목적이다.


7. 그리스도의 법정 앞에서


이 책은 고발장이지만, 동시에 호소문이다. 나는 한국 교회가 부흥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부흥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당신이 누구든, 나는 이 글이 당신에게 각성과 희망을 동시에 주기를 바란다. 각성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되고, 희망은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것에서 싹튼다.


나는 법정에 선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법정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법정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논리나 권력이 아니라, 오직 진리만이 기준이 된다.


나는 이 법정 앞에 한국 교회를 세운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우리가 전하는 것은 정말 복음인가.

우리가 섬기는 대상은 정말 하나님인가.


이제 심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