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교회 성장과 숫자 중심주의
1. 교회 소개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숫자
"우리 교회 등록 교인이 몇 명이에요?"
새로운 교회를 소개받을 때, 혹은 어느 교회에 다니는지 물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목사의 설교 스타일도 아니고, 예배의 분위기도 아니고, 성도들의 교제도 아니다. 규모다. 등록 교인 수, 주일 출석 인원, 교회 건물의 크기. 이것이 한국 교회를 말하는 첫 번째 언어가 되어버렸다.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연히 다르다. 수천 명,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 "축복받은 교회", "은혜로운 교회"로 불린다. 반면 백 명, 이백 명이 모이는 교회는 "작은 교회", "안타까운 교회", 심지어 "성장하지 못하는 교회"로 평가받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교회의 가치를 숫자로 매기게 되었을까.
"큰 교회 = 부흥하는 교회 =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등식은 한국 교회에 깊이 뿌리내렸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의심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성서적인가. 교회의 본질은 정말 크기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일까.
2. 한국 교회의 숫자 경쟁
한국 교회의 숫자 중심주의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고, 몇 년 만에 교인 수가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1만 명 교회", "10만 명 교회"라는 목표가 현실이 되었다. 이 시기의 성공 경험이 한국 교회의 DNA에 각인되었다.
문제는 그 성장의 시대가 끝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교회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대형 교회를 목표로 하는 목회 모델은 여전히 신학교에서 가르쳐지고, 목회자들은 "성장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사역한다.
한국 교회에서 숫자로 평가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주일 출석 인원은 기본이다. 새신자 등록 수, 헌금액, 선교사 파송 숫자, 심지어 기도 응답까지 숫자로 증명된다. "우리 교회는 작년에 새신자 몇 명을 등록시켰습니다", "올해 헌금이 작년 대비 몇 퍼센트 증가했습니다",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가 몇 명입니다". 모든 것이 수치화되고, 통계가 되고, 실적이 된다.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한다. 대형 교회 목사는 "성공한 목회자"로 여겨진다. 그의 설교는 녹음되어 전국에 배포되고, 그가 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며, 그의 목회 철학은 모범 사례로 연구된다. 반면 소형 교회 목사는 어떤가. 같은 신학을 공부하고, 같은 안수를 받았지만, 교회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능력 없는 목회자"로 취급받기도 한다.
교단 총회나 연합 집회에서도 교세의 크기가 발언권을 결정한다. 큰 교회 목사의 의견은 무게가 있고, 작은 교회 목사의 의견은 쉽게 묻힌다. 작은 교회 성도들이 느끼는 열등감은 또 어떤가. "우리 교회는 작아서..."라는 말 뒤에 숨은 자괴감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3. 숫자 중심주의가 낳은 문제들
숫자 중심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신앙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많이 모으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깊이 양육하는 것은 뒷전이 되었다. 새신자를 등록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고, 그들을 제대로 돌보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 되었다. 등록만 시키고 양육하지 않으니, 새신자들은 몇 달 못 가 교회를 떠난다. 그러면 교회는 또다시 새신자를 찾아 나선다. 이것은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회원 모집 기관의 모습이다.
형식적 출석, 명목상 교인이 양산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은 없는 사람들, 주일날 자리만 채우고 가는 사람들, 예배의 의미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들. 이들은 숫자에는 포함되지만, 실제로 그리스도의 제자인가. 교회 등록부에 이름은 있지만,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가.
숫자 중심주의는 영혼을 숫자로 취급하게 만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 그들의 아픔과 기쁨, 신앙의 여정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통계와 실적이다. 전도도 마찬가지다. 전도의 대상이 아니라 전도 실적이 된다. "몇 명 데려왔느냐"로 신앙이 평가받는다. 인격적 만남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는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제자를 키워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양적 성장에 집중하느라 질적 성장을 놓쳤다. 제자 훈련보다 숫자 늘리기가 우선이 되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다음 세대 리더가 양성되지 않았다. 주일학교 교사조차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다. 교사가 부족해서 아무나 세우고, 그들에게 제대로 된 훈련도 제공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성서도 제대로 모르고, 신앙도 깊지 않다면, 그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겠는가.
목회자들의 스트레스도 무시할 수 없다. 목회자는 숫자로 평가받는다. 전년 대비 출석 인원이 늘었는가, 새신자가 몇 명 등록했는가, 헌금은 증가했는가. 이것이 목회 성과의 지표가 된다. 목회자들은 끊임없는 성장 압박에 시달린다. 옆 교회와 비교되고, 동기들과 경쟁한다. 본질보다 외형에 집중하게 되는 구조 속에서, 목회는 점점 영혼을 돌보는 일이 아니라 조직을 관리하는 일이 되어간다.
4. 성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소수의 제자들
예수께서는 무리를 먹이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오천 명을 먹이셨고, 그분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깊이 양육하신 것은 열두 명이었다. 3년 반 동안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일상을 나누며, 신앙을 가르치셨다.
열두 명 중에서도 예수께서는 특별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더 가까이 두셨다. 변화산에 오르실 때,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곁에 두신 것은 이 세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소수를 깊이 양육하는 것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셨다.
초대 교회의 모습은 어땠을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다(사도행전 2:41). 이후에도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이 더해졌다(사도행전 2:47). 그러나 초대 교회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은 초대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 중심의 소그룹이었다. 성전에서 함께 모이기도 했지만, 실제 신앙생활은 각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떡을 떼고, 기도하고, 교제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숫자보다 교제와 양육에 집중했다. 오순절 이후 삼천 명에서 시작했지만, 그들이 추구한 것은 깊이 있는 제자도였다.
구약 성서의 '남은 자' 사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소수의 신실한 자들을 통해 일하셨다. 많은 것이 아니라 신실한 것이 중요했다. 엘리야 시대에도, 이사야 시대에도, 예레미야 시대에도, 하나님은 소수의 남은 자들을 찾으셨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태복음 7:13-14). 또한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고 하셨다.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방식도 살펴보자. 그는 도시마다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 깊이 양육한 제자들이 있었다. 디모데, 디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루디아, 빌레몬. 바울은 그들과 인격적 관계를 맺었고, 편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돌보았다.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다. 바울은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소수를 깊이 양육했다.
5. 개인적 경험: 제자반과 진정한 리더십
나는 대학교 기독교 동아리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한 목사님을 만났다. 그분은 대형 교회를 섬기는 분이 아니었다. 화려한 강단도, 수천 명의 교인도 없었다. 그러나 그분은 매주 시간을 내어 대학생 다섯여섯 명과 만났다.
제자반 모임은 단순히 성경 공부가 아니었다. 목사님은 우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기억했고,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었으며, 우리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때로는 함께 식사를 했고, 때로는 개인적으로 만나 상담해 주었다. 그분은 소수를 깊이 있게 양육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이 참된 목사이고 리더구나.' 수천 명 앞에서 설교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신앙을 키워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목회가 아닐까. 나는 그때부터 제자 훈련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제자반을 성실히 운영하는 교회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교회는 숫자 늘리기에만 집중한다. 주일 예배에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것, 새신자를 등록시키는 것, 이것이 우선순위다. 제자 훈련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효율적이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여겨진다.
다음 세대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여기에 있다. 주일학교는 교사가 부족하다. 청년부는 점점 줄어든다. 대학생들은 교회를 떠난다. 왜 그럴까. 우리가 그들을 제대로 양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숫자로만 그들을 세고, 통계로만 그들을 파악했지, 한 명 한 명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대량 이탈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수십 년간 제자 육성을 소홀히 한 결과다. 우리는 그들에게 교회 출석은 강요했지만, 신앙의 깊이는 가르치지 않았다. 예배 참석은 요구했지만,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은 안내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이 떠나는 것이 이상한가.
6. 교회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몸이다(에베소서 1:23, 고린도전서 12:27). 몸을 평가할 때 우리는 크기를 보는가, 아니면 건강함을 보는가. 건강한 몸은 크기가 아니라 기능으로 평가된다. 각 지체가 제 역할을 하는가, 영양이 골고루 공급되는가, 순환이 잘 이루어지는가. 이것이 몸의 건강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작아도 건강한 교회가 있고, 커도 병든 교회가 있다. 수천 명이 모여도 각 지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성도들이 서로 단절되어 있으며, 신앙의 양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반대로 백 명이 모여도 서로를 돌보고, 함께 성장하며,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교회다.
이제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 육성에 집중해야 한다. 주일학교 교사를 제대로 양육하라. 그들이 단순히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신앙을 책임지는 사람임을 인식하라. 교사 훈련에 투자하라. 성서를 가르치고, 신학을 나누며, 교육 방법론을 훈련시켜라.
청년들에게 신앙의 깊이와 가치를 가르치라.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주라.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무엇을 향하는지를 교육하라. 신앙의 지적 기반을 세워 주라. 그들의 질문에 귀 기울이고, 함께 고민하며, 신앙과 삶을 통합하도록 도우라.
제자 훈련을 우선순위에 두라. 많은 사람을 얕게 만나는 것보다, 소수를 깊이 양육하라. 예수처럼 열두 명을, 아니 다섯 명을, 아니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양육하라. 그렇게 양육받은 한 사람이 다시 다른 사람을 양육할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난다.
한 명을 천 명처럼 소중히 여기라. 숫자가 아니라 사람을 보라. 통계가 아니라 영혼을 보라. 각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라. 이것이 교회다.
소그룹과 제자 훈련을 극대화하라. 대예배는 필요하다.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짜 신앙의 성장은 소그룹에서 일어난다. 열 명 이하의 작은 모임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며, 삶을 나누고 기도할 때, 사람들은 변화된다.
양육받은 사람이 다시 양육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라.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자 삼도록 하라. 이것이 디모데후서 2장 2절의 원리다.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바울이 디모데에게, 디모데가 충성된 사람들에게,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이 진정한 교회 성장이다.
성공의 기준을 바꾸라. 얼마나 많이 모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변화되었는가를 물으라. 얼마나 성숙한 제자를 길러냈는가를 평가하라. 특히, 교회를 떠난 후에도 신앙을 지키는가를 확인하라. 이것이 진짜 성장의 지표다.
7.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라
숫자는 결과일 뿐,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모으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본질을 잃는다. 우리는 교회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를 키워야 한다.
예수는 열두 명을 깊이 양육하셨고,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삼천 명 앞에서 설교했다.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서를 썼다. 그들은 작은 숫자였지만, 깊이 양육받았기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반대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 이후, 많은 무리가 예수를 따랐지만, 어려운 말씀이 나오자 대부분 떠났다(요한복음 6:66).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 교회는 양적 성장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1970-80년대의 부흥은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때의 방법론을 21세기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질적 성장, 제자 육성, 다음 세대 양육에 집중할 때다.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크지만 병든 교회보다 낫다. 백 명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가, 만 명이 명목상 교인으로 등록만 되어 있는 교회보다 훨씬 가치 있다. 교회의 본질은 크기가 아니라 건강함이다. 숫자가 아니라 깊이다. 외형이 아니라 내실이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 통계에 나타나는 숫자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제자들인가. 대형 건물과 많은 인원인가, 아니면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인가. 세상의 기준으로 평가받는 성공인가, 아니면 그리스도 앞에서 인정받는 충성인가.
답은 명확하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라. 크기를 추구하지 말고, 건강을 추구하라. 숫자를 세지 말고, 사람을 돌보라. 통계를 자랑하지 말고, 변화된 삶을 증거하라.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