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by 정말

한 주의 열심을 보상받으려는 걸까.

춘천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 차들이 어디론가 날쌔게 달려간다. 나는 차창을 더 내렸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무더운 여름이 지나갔다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멀리 낮게 일어났다가 사그라지는 파도 소리, 어느 바닷가 소나무 숲에 앉아 있는 나를 상상하며.


구름은 층층이 높아졌다. 구름을 올려다보는 재미에 슬리퍼를 신은 채 사무실 앞을 서성이게 하는 그런 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만남을 위해 나는 지금 떠남의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침대 위 그녀는 마르기 전에는 노란색을 띠었을 장미꽃 낯빛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보고 아주 잠깐 손을 잡아주었다. 그녀는 웃는 대신 평소보다 더 힘을 준 근육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폐암 말기.

의사는 길어야 수주일이라고 했다. 죽음은 구체적인 문양을 가지고 있다고 했던가. 그리하여 수개월, 수년이라도 정함이 있는 시간은 언제나 짧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예순다섯의 그녀에게도 그렇겠지.

가족들은 아무도 ‘암’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남은 시간 동안 그녀가 상실과 절망의 삶을 살아가게 될까 봐 불안해했다. 제한된 극한의 불행보다 곧 꺼질지라도 모닥불의 온기가 나은 걸까. 그 온기 위에 시린 손을 올리듯 가족들은 조심스레 희망의 불빛을 잡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어느 정도 눈치챘으리라는 예감은 부정하지 못했다. 아니 심지어 안도했다. 가장 아프면서도 잔혹한 말로 이별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으리라.

나는 그녀의 아들인 내 남자 친구에게 물었다.

“어떤 선택을 하고 싶어? 끝을 알고 사는 것과 모른 채 갑자기 떠나는 것 중에.”

그는 잠시 창밖 소금빵 모양의 구름을 바라보다가 답했다.

“알고 있는 게 좋겠지.”

아직 어머니와의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다고 느끼는 걸까. 아니면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어느 찰나가 주어지길 기대하는 걸까. 그는 숨길 생각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거실로 나온 그녀가 커다란 창 앞 원목 책상과 책꽂이 사이 의자에 앉는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양팔을 의자 팔걸이에 올려놓은 모습은 쉼이나 안식이라기보다는 아직 무언가 할 일이 남은 사람처럼 보였다.

폭신한 빵처럼 구름이 갈라지고 아파트 공원에서 살아남은 소나무 몇 그루는 위엄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미동 없이 그저 밖을 바라볼 뿐이다.

시선은 구름과 소나무, 그 사이로 길쭉하게 뻗은 허공일 수도,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일 수도 있었다. 아무도 그녀처럼 오래 시선을 두지 않을 곳이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진경임은 분명했다.

내 시선은 그녀의 발에서 멈추었다. 병(病)에 묶여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창백함이 낯설게 다가왔다. 진한 나무색 바닥은 그래서 더 짙게 보였다. 벽면을 채운 책꽂이의 활자들은 스팽글만큼도 그녀의 눈길을 끌지 못해 무색하다.

바깥 풍경을 갈망하면서도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것은 싫다는 그녀. 몸이 무겁다는 말끝에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체중계로 간다. 조르르 달려간 남자 친구의 여동생은 몸무게가 그대로라며 들뜬 목소리다.

커피잔을 들고 “짠!” 건배를 외치는 나이 든 아들의 여자 친구, 함께 산책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두 손 모아 비는 손녀, 서너 숟가락의 밥이라도 다 비웠다고 칭찬을 퍼붓는 딸- 그녀의 입꼬리가 그들을 향해 가볍게 떨리다 멈추길 반복한다.

그 모습은 구족화가를 닮았다. 온몸이 마비된 채 오직 입 주변의 근육만으로 그림을 완성하는. 날쌘 통증과 무력한 몸에서 새어 나오는 들숨과 날숨 속에서 실룩, 그녀의 빗장뼈가 흐느낀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가 터덕터덕 주방으로 향한다. 간식 바구니에서 찹쌀 모나카 하나를 집어 내게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그녀가 이미 자기 앞에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손끝으로 내 손을 쓰다듬은 뒤,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내 얼굴로 옮겨왔다. 그녀는 내 손등을 쓰다듬을 때처럼 내 눈을 쓸어내렸다. 나의 눈, 코, 입을 찬찬히 새기듯 더디고 느리게 응시의 작업을 이어갔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을 배웅한 가을이 이미 보낸 봄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득해 그 봄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눈과 마주했다.

절대자의 부름 앞에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그녀, 그리고 나.

아마 우리 모두, 여름을 다 보내지 못한 가을이었을까, 그런 후회가 잠시 스쳤다.

예고도 없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여동생은 살포시 뒤에서 그녀를 안으며 “엄마…”라고 읊조리듯 말했다. 감정의 균형을 잃은 그 단어는 슬픈 시가 되어 우리 사이로 부유했다. 남자 친구는 고개를 돌려 조금 전 그녀가 바라보던 창밖을 바라보았다. 흩날리던 구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맑은 하늘은 공감각의 정적을 더욱 또렷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얼른 모나카를 한입 베어 물었다. 설핏했다. 팥의 달콤함도, 수주일의 응축된 삶도, 죽음 뒤에 남을 생의 잔향도.

입안에 번지는 단맛이 이상하게 쌉싸름하게 느껴질 즈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웃고 있는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호흡이 가빠져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그 웃음이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는 걸.

그 웃음은 생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탔을 때에야 비로소 지을 수 있는, 우리를 향한 안도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별의 고통마저 스스로 감내하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하나의 곡선으로 완성하려는 인간의 명징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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