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폭염으로 햇살은 눈이 부시다 못해 따가웠다. 들마루에 걸터앉아 부채질을 아무리 빨리 해도 오래된 지붕 탓에 집안의 온도나 바깥 온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심심함을 깨듯 입안에서는 와그작와그작 얼음이 부서졌다. 얼음은 굴리다가 깨 먹어야 제맛이다. 얼음에도 맛이 있다는 걸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 특히 정수기 얼음은 가운데가 뚫려 있어, 씹을 때마다 마음까지 시원하게 뻥 뚫리는 기분이다.
얼음의 시원함을 음미하던 순간, 눈이 아래로 향했다. 줄을 지어 무언가를 나르는 개미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횡무진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 어떤 녀석은 자신의 몸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이는 벌레를 물고도 끄떡없었다. 겨울에 먹을 양식을 저장하려는 걸까, 전쟁터로 향하는 군단 같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딸은 바퀴벌레나 뱀보다 개미를 더 싫어한다. 그래서 항상 딸의 동선을 따라가면 손이 닿는 곳마다 벌레를 죽이는 스프레이가 놓여 있다. 책상 위, 주방, 화장실, 들마루까지.
마지막 얼음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에도 딸은 대문을 열자마자 개미를 발견하면 “개미!”하고 비명부터 질렀다. 나는 개미들에게 빨리 대피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곧 개미를 발견한 딸이 약을 집어 들고 학살을 시작할 것이 뻔했다.
딸은 개미를 발견하면 꼭 전멸을 시켜야 직성이 풀렸다. 한 마리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 현장을 본 것만 해도 여러 번이다. 개미들이 내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하지만, 딸이 또 학살을 벌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딸이 눈치채기 전에 개미의 대열을 흩어버렸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도망가!’
그런데 잠시 우왕좌왕하던 개미들은 금방 전열을 갖추고 제 길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제 곧 개미 스프레이가 뿌려져 다 죽을 거 같아 신호를 준 것인데 개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는 수 없이 그 개미 중에 두 마리를 집어 올려 조금 떨어진 들마루 쪽으로 옮겨 놓았다.
딸은 역시나 개미들이 줄지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또다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개미약을 분사했다. 마당은 순식간에 처참한 대살육의 현장으로 변했다. 딸은 그것도 모자라 행렬을 추적해서 나무 벽 틈 사이에 있는 개미집 입구까지 찾아내 구멍에다 흥건히 넘칠 때까지 약을 뿌려댔다.
개미들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가늘고 긴 다리는 감전된 듯 허공을 향해 허우적거렸다. 공기라도 움켜쥐려고 버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들마루 위로 옮겨놓은 두 마리가 궁금해졌다. 그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쯤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행히 두 마리는 무사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있던 곳이 어떻게 얼마나 참담하게 황폐되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원래 가던 길과 동료들을 찾느라 이리저리 허둥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두 마리를 손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집어 들어, 원래의 길 가까이로 옮겨 주었다. 제 길을 찾아가라고. 조금만 헤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리였다. 곧 두 마리는 약물에 흥건하게 변해버린 원래의 길 어귀에 도착했다. 멈칫거리긴 했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가야 할 곳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개미약의 독성을 감지했는지, 그토록 애타게 찾던 길을 찾아냈음에도 개미들은 흠칫 놀란 듯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반대 방향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저 작은 존재들은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걸 행운이라 여길까, 아니면 제 길을 되찾아준 누군가를 고마워할까. 혹은 뜻하지 않게 받은 이 선물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혼란스러울까.
그러자 자연스럽게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그 무렵 나 역시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함께 모임을 하는 지인이 직접 뜬 담요를 건네며, 모임을 위해 애써 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렛과 베이지색이 적절히 섞인 그 담요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단번에 ‘최애 담요’가 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나도 뭔가 보답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반면에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두 마리의 개미가 나에게 보답을 한다면 무엇을 들고 올까? 죽은 파리나 잠자리 날개를 정성껏 물고 오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게 그들의 방식의 감사라면, 나는 과연 그 선물을 받아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그런 선물은 나에게 아무 쓸모도 없다. 하지만 개미의 입장에서 그것은 자기 능력으로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누군가가 내게 건넨 선물을 너무 가볍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무엇이든 받으면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고 여겼던 마음은, 어쩌면 그 사람의 진심을 빚으로 바꿔버린 셈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친구들과 지인들로부터 참 많은 선물을 받았고 또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남는 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선물을 받으면 무언가 보답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것이 도리라고 믿어 왔다.
그러다 보니 정작 선물 속에 담긴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했다. 선물은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 주고 아껴 주는 마음의 표현인데, 나는 그것을 늘 갚아야 할 빚처럼 여긴 것이다.
옆집에서 떡 한 접시를 가져오면 접시를 내려놓기도 전에 ‘무엇으로 빈 접시를 채워드려야 하나’ 하고 허둥지둥 음료수를 꺼내 내밀었던 적도 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해 떡을 담고 집까지 걸음을 해준 그분의 마음을, 고작 음료수 한 병과 맞바꾼 셈이다.
생각해 보면, 개미가 힘겹게 물어 나르던 작은 조각들처럼 내가 받아온 선물들 역시 저마다의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더라면, 나는 더 많은 따뜻함과 감사를 느꼈으리라.
사소한 것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충분히 데워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마음을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저 건네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주는 연습. 무더운 여름 오후, 개미들이 내게 준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