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파괴에 대한 도덕적 책무는 누가 지는가
지구 온난화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온 인류의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각종 의심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전 지구적인 노력은 굉장히 미약했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관련 기업들이 각광을 받고 기업들은 ESG경영이라는 큰 틀 안에서 환경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등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깊은 숲속에 살고 있는 점박이 올빼미의 운명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점박이 올빼미도 정당한 지구의 거주 생명체이지만 안타깝게도 인간의 공감능력과 이해는 지구 외딴곳 생명체에게 까지 미치지 않는다. 만약 인간이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고 탄소 포집기를 설치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면. 숲은 탄소 포집 기능이 충분히 좋지 못하기에 기계로 대체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동식물들은 집을 잃게 되겠지만 누가 신경 써주겠는가?
이러하듯 동물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사냥꾼이 아닌 산림 개발자이다. 사냥꾼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사냥감으로 만족할 테지만 산림 개발자는 온세상 모든 산림을 개발해 이득을 올리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산림 개발자의 선택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신의 사익을 최대화할 권리를 그리고 자신의 목적에 따라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우리 사회는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개인은 합리적 선택을 했을 뿐 이지만 그 결과는 심각한 불평등과 그로 인한 억압을 낳게 되기도 한다. 다시 점박이 올빼미에게로 돌아가 보자. 멋지고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당당한 생명체이지만 아쉽게도 인간 사회에서 점박이 올빼미의 생사는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해 점박이 올빼미는 끊임없이 삶에 위기를 겪을 것이다 (멸종 위기종이 되어버린다면 신경을 써주는 아이러니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말못하는 짐승들은 욕한마디 해보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만물의 영장으로써 가장 영리하고 똑똑한 지능을 갖춘 생명체로써 이 모든 일이 당연하다고 느껴야 할까?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강자가 지배하고 약자가 억압받는게 당연하다고 느끼는게 유일한 답은 아닐것이다. ESG 경영, 환경파괴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게 물리는 방식 등 현대 인간 사회는 더 많이 가진 자가 모든 권력을 맘대로 휘두루고 마음대로 힘을 행사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는 물론 사회 구성원 전체에 피해가 가는 행위임을 인식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는 더 많이 알고 강한 힘을 가졌을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더 나은 삶을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생명체에게 살 기회를 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때리고 원하는 것을 얻는 다면 과연 그 삶은 의롭고 덕망있는 삶일까? 나는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삶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을 가지려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도 좋은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라는 공감대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점박이 올빼미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단순히 점박이 올빼미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강한 힘과 의지 그리고 지적 공감능력을 가진 인간에게 부여된 책임이다. 우리는 마치 말못하는 어린 아이를 키워내야하는 책임과 같은 다른 생명체의 삶이 더 번성하고 당당하게 살아갈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