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왜 읽는가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이유

by 정현욱

나는 '자기계발서 안 읽는 독서모임'을 운영 중이다. 책 선택에 꽤 명확한 기준을 내세운 이름이다.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는 사실 간단하다.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에 큰 관심이 없고, 또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는 분들과는 자유 독서 모임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너무나 표면적인 이유다. 자기계발서를 즐겨 읽는 사람이 이런 이름의 모임을 만들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왜 책을 읽는지, 그리고 왜 소위 '자기계발서'류의 책에 거리를 두게 되는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이야기해보려 한다.

흔히 자기계발서는 명확한 '효용'을 내세운다.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활기찬 아침을 약속하고, 뚜렷한 목표를 가진 이들에게는 성공 방법론을 제시한다. 때로는 그저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시간 낭비의 위험을 경고하기도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목표의식이 뚜렷하지 않고 때론 게으르게 보이는 나는 어쩌면 이런 책들을 거부함으로써 내 삶의 방식을 방어하고 정당화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게 전부일까? 나는 자기계발서가 정의하는 '효용'과 내가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느낀다. 나는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만의 길과 의미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내리는 책들이 제시하는 획일적인 방향이 나의 탐색과 일치하는 경우는 드물다. 삶을 마치 공학 문제처럼 개선할 수 있다는 메시지, 목표 달성 여부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시선이 나를 지치게 한다.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했거나,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베스트셀러의 해법이 곧바로 나의 복잡한 현실에 적용될 수 있을까? 어떤 변화든 자신만의 방향 설정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 방향은 결국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자기계발서에 실망하는 지점은 바로 그 단편적이고 획일적인 삶의 목표 설정 방식에 있다. 진정한 독서는 나에게 미처 몰랐던 새로운 삶의 차원을 열어 보여준다. 좋은 책은 그 차원이 허구가 아니라 실재할 수 있음을, 혹은 적어도 깊이 사유해볼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종교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경건하고 의미 있는 삶의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마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많은 자기계발서가 제시하는 방향은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거나 통계적 평균값에 맞춘 해답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마치 1970년대 미 공군이 조종사들의 신체 치수 평균값으로 전투기 조종석을 설계했을 때, 정작 자신에게 딱 맞는다고 느낀 조종사가 11%에 불과했다는 일화와 같다. 나는 확신한다. 삶은 훨씬 다차원적이며, '평균적으로 올바르다'는 하나의 잣대를 들이댔을 때 그것이 임의의 한 사람에게 완벽히 들어맞을 확률은 11%보다도 훨씬 낮을 것이라고. 우리의 삶에는 무수한 가능성과 함께 실패와 좌절이 따르며, 저마다 다른 종류의 기쁨과 환희가 공존한다. 나의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탈로, 누군가의 슬픔이 나에게는 나약함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삶은 지극히 개별적인 경험의 총체다.

결국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진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다소 실존주의적인 결론일 수 있지만, 이것이 내가 자기계발서의 접근 방식에 근본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 나는 모든 사람이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넓게 탐색하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치열하게 정의해나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책이야말로 그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은 수천 년 전 사상가의 고민을 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그 생각은 다시 나의 해석을 통해 재정의되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우리 모임의 구성원들이 책을 그저 신성시하며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지금 여기의 관점에서 치열하게 질문하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길어 올리기를 기대한다. 1년 전, 아니 바로 어제의 생각조차도 오늘의 나에게는 새롭게 다가와야 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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