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가 어렵다고?(12)
김수영의 시를 시기 구분할 때 저는 이 서강 생활의 시작을 작은 분기점으로 삼습니다. 4‧19혁명처럼 압도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나 김수영이 서강 생활을 통해 얻은 것이 그렇게 작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자연과 이웃을 알게 되죠. 나이가 먹어가면서 자연스레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장소는 우리의 감수성에 결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1950년대 중반의 서울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특히나 김수영이 이사 간 서강 지역은 서울 시내와 적잖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돼지도 치고 닭도 키울 수 있을 정도면 시골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요. 「멋」이라는 1968년에 쓴 산문에 자신이 사는 동네가 예전부터 “마포의 새우젓골로 이름난 완고하고 무식한” 곳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1968년 당시에도 그랬다니 1955년 어름을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름 아침」과 같은 작품을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시골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반농반도(半農半都)에 가깝다고 할까요.
여름 아침의 시골은 가족과 같다
햇살을 모자같이 이고 앉은 사람들이 밭을 고르고
우리 집에도 어저께는 무씨를 뿌렸다
김수영의 가족도 얼마간 농사를 지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물론 주로 생업은 널리 알려진 대로 양계였죠. 돼지는 조금 키우다 만 듯합니다. 닭을 치게 된 정황과 사정에 대해서는 산문 「양계 변명」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산문 「토끼」에서 살아 있는 동물을 그저 “이(利)”로만 보는 이들을 경멸했지만 양계는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생활이었습니다. “양계를 통해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경험”했다고 밝혔듯이 1950년대 후반 흔들리는 김수영을 잡아 준 것이 바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시에서는 그 흔적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강으로 이주해서 그의 정신과 영혼이 건강하게 검어진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래서 1950년대 후반 김수영의 서강 생활은 주목을 요하는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작품을 읽으면서 그것이 어느 정도 감지될 겁니다.
김수영이 서강으로 이주한 다음에 자연 친화적인 서정시를 썼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난 시간에 읽었던 대로 구체적인 생활에 좀더 천착하게 되면서 “새로운 목표”가 자신의 내면 안에서 나타나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들 삶이 그렇듯이 생활에서 얻은 에너지와 의지는 언젠가는 단조로움과 피로로 화하기 쉽습니다. 이야기의 문을 열기 위해서 「거리 2」로 잠시 되돌아가 보죠. 「거리 2」의 마지막 연입니다.
여기는 좁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거로운 거리의 한 모퉁이
우울 대신에 수많은 기폭을 흔드는 쾌활
잊어버린 수많은 시편(詩篇)을 밝고 가는 길가에
영광의 집들이여 점포여 역사여
바람은 면도날처럼 날카로웁건만
어디까지 나의 명랑한 나의 마음이냐
구두여 양복이여 노점상이여
인쇄소여 입장권이여 부채(負債)여 여인이여
현실은 여전히 바람이 “면도날처럼” 날카롭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긍정을 통해서 “명랑”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 앞뒤로 등장하는 언어를 한번 보지요. “영광의 집들” “점포” “역사” 같은 큰 언어에서 “구두” “양복” “노점상” “인쇄소” 등등 구체적이고 작은 언어로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고 있다기보다는 변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생활을 긍정하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시어도 감각적인 빛을 발합니다.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에서도 그것은 이어집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면 아직 든든한 것을 가졌다기보다는 의욕에 가까운 심리가 아닌가도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음탕할 만치 잘 보이는 유리창”더러 “두려운 세상과 같이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에서는 무언가 아슬아슬한 정서가 느껴집니다. 깨끗한 유리창더러 “음탕할 만치 잘 보이는”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앞 연에서는 “너를 보고 짓는 짓궂은 웃음일 줄 알아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깨끗이 닦여진 유리창이 비록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지만 그 “세상”과 제대로 싸우거나 “세상”을 제대로 긍정할 수만은 없는 정신적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죠. 어쩌면 1950년대 후반에 나타나는 ‘피로’는 예정되어 있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보면 「영롱한 목표」에서 보여준 긍정성은 의욕에 가까운 심리가 도달한 최고 지점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폭포」에서 보여준 고독이 서늘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김수영의 고독은 세상을 깊이 끌어안은 고독이 아닌 셈입니다. 니체가 말했듯 “병든 자로부터의 도피”로서의 고독이긴 한데, 민중과 역사를 얻지 못한 고독입니다.
개별자의 이런 고독에는 곧 곰팡이처럼 피로와 비애가 번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을 작품들에서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김수영의 작품은 난해성을 띠게 되는데, 김수영 시의 난해성은 부정적 상태일 때 주로 나타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난해시를 덮어놓고 숭앙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수영이 생활에서 느끼는 피로는 얼마 안 가서 바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생활을 살자면, 그것이 불가피함 것임을 모르지도 않았습니다. 예컨대, 「지구의」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지구의(地球儀)의 양극을 관통하는 생활보다는
차라리 지구의의 남극에 생활을 박아라
고난이 풍선같이 바람에 불리거든
너의 힘을 알리는 신호인줄 알아라
구체적인 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고난이 풍선같이 바람에” 날린다는 진술, 하지만 그것도 “힘을 알리는 신호”인지는 알지만 거기에도 지혜가 필요하고 그게 다시 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쯤 되면 딜레마 또는 아포리아라고 부를 만하죠. 사실 시와 생활의 문제는 이렇습니다. 생활을 버린 시가 건강할 리가 없지만 시를 버린 생활도 건강할 리가 없습니다. 생활과 시를 함께 사는 길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김수영은 점점 체감하게 됩니다.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서, 다시 어떤 원점으로 돌아가 보기도 하지만 그게 녹록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름 아침」에서 “차라리 숙련이 없는 영혼이 되어/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가래질을 하고 고물개질을 하자”고 다짐해 보지만 결국 자신이 시를 배반하고 사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생활은 초월을 원하지 않습니다. 생활은 ‘지금 여기’에만 충실하길 요구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생활 속에서 “노동의 엄숙함과 그 즐거움”을 배우는 것이 곧 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시는 생활을 초월하여 다른 생활을 살기를 끊임없이 갈구합니다. 김수영에게 다른 생활은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의미합니다. 생활은 변함없는 반복을 원하지만 시는 그런 반복 속에 갇히면 숨이 막혀 죽고 맙니다. 이 무한한 갈등과 긴장은 시의 도약대가 되기도 하지만 시를 질식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를 깊어지게도 하지만 시가 비루해지게도 합니다. 어쨌든 이즈음의 김수영은 생활이 시를 배반하게 한다고 자학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구름의 파수병」 일부입니다.
시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 보고
살펴볼 수 없는 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거리”와 “집”을 함께 살겠다는 마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 보다” 하면서 김수영은 “자기의 나체를 더듬어 보고” 있지만, 여기까지입니다. 이건 시인의 마음의 문제만은 아니니까요. 시는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것보다 더 깊고 높은 것을 요구하는데, 김수영은 현재 그 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가 현재의 자신입니다.
자신의 생활은 무어라는 형상이나 실체가 없는 “구름”에 지나지 않고 자신은 지금 그것의 파수병이라는 자조는 김수영의 괴로움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분명히 말하고 있죠. 구름을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활에 충실하다 보면 “시를 반역한 죄”를 저지르기 십상입니다. 사실 「백의」가 무슨 말인지 난해한 것은 이런 아포리아에서 김수영이 헤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난번 『리얼리스트 김수영』에게서 나름 야심차게 「백의」를 분석해봤지만 사실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시 앞에서 야심은 언제나 이렇답니다. 오늘은 「백의」의 마지막 부분만 언급하도록 하죠. 시도 길고 한두 마디 이야기로 어림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의외로 활기 있는 작품이다는 점만 말해두고자 합니다. 마지막에 “어느 시인”의 말을 옮겨온 형식으로 뭐라고 하나요? 한번 읽어보시죠.
청중 : “더러운 자식 너는 백의와 간통하였다지? 너는 오늘부터 시인이 아니다……”
―백의의 비극은 그가 현대의 경제학을 등한히 하였을 때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제 김수영은 “백의와 간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는 것은 김수영 자신의 영혼이 한 말일 겁니다. 그런데 “백의의 비극은 그가 현대의 경제학을 등한히” 해서 시작되었답니다. 여기서도 김수영이 자신의 생활을 단지 비난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생활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히지 않습니까? 생활을 잘 모른 채 막연하게 시에 생활을 받아들이니 시가 생활이라는 “마신(魔神)”에 굴복하곤 하는 겁니다.
시와 생활의 “‘양극의 합치’”(「지구의」에서 “지구의(地球儀)의 양극을 관통하는 생활”)가 말해지고는 하지만 그것은 결국 “‘도피의 왕자’ 혹은 단순히 ‘여유’”에 지나지 않다는 게 김수영의 생각입니다. 그런 낭만주의로는 어림없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곧 닥칠 피로와 비애가 생활에 대한 냉정한 인식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점입니다. 덧붙여, 그게 비참이 되었건 설움이 되었건, “양극이 합치”의 불가능성이 되었건, 우회하지 않는 김수영의 불퇴전의 태도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시를 떠나서 김수영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기도 하지만, 김수영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도 핵심적인 사항이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피로와 비애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김수영이 이런 태도를 끝까지 견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강인한 정신 때문이었을까요?
인간의 정신이 아무리 강인하다 한들 현실을 이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설령 현실을 이긴다 하더라도 이긴다는 것이 곧바로 현실을 넘어서는 것임을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김수영에게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은 단순한 희망이나 낙관이 아니라 현실에서는 어지간해서는 나타나지 않는 ‘무엇’에 대한 염원임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김수영은 그것을 또 부단히 시로 실현시키려고 했지만, 한참 뒤에 가서야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는 데 도달하게 되죠. 이렇게 ‘온몸의 시’는 복잡한 과정을 포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