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역사와 민족의 재건
캄보디아의 암흑기와 프랑스 보호령 시대
크메르 제국이 쇠퇴한 후, 캄보디아는 15세기 초부터 1863년 프랑스 보호령이 되기 전까지 암흑기를 맞이했다. 이 시기 크메르 제국의 사료는 매우 희귀하며 대부분 외부의 기록에 의해 해석된다. 크메르 제국의 쇠퇴는 타이족의 수코타이 왕국과의 전쟁 패배에서 시작되었으며, 1431년 아유타야 왕국의 앙코르 침공은 제국의 쇠퇴를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이후 캄보디아의 정치 중심지는 메콩강 하류의 짜또목(Chaktomuk/ចតុមុខ)과 롱벡(Longvek លង្វែក)으로 이동했다. 이처럼 캄보디아의 정치 세력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면서,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동진하는 싸얌(시암)과 서진하는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각지원을 받는 *우동(Oudong ឧដុង្គ)과 쁘레아 노꼬(Preah Nokor ព្រះនគរ)세력은 끊임없이 대립했다. 이후 캄보디아의 *앙 두옹(Ang Duong) 왕의 국가를 통일하며 잠시 평화를 누렸지만, 싸얌과 베트남의 지속적인 침략 시도로 왕국은 불안에 떨었다. 결국 1860년 앙 두옹 왕 사후 후계자인 노로돔(Norodom) 왕은 캄보디아 왕실의 안정과 주변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프랑스에 보호령 요청을 하였다. 결국 1863년 8월 11일, 노로돔 왕이 프랑스 보호령 협정에 서명하면서 캄보디아는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 우동(Oudong ឧដុង្គ)과 쁘레아 노꼬(Preah Nokor ព្រះនគរ)세력 : 캄보디아 역사에서 보통 ‘육지 캄보디아’와 ‘해양 캄보디아’ 양대 축이 존재했다. 이들은 크메르 제국 이후 캄보디아 암흑기(Post Angkor period) 1431~1863년의 430년 동안의 시기에 다시 분열되어 끊임없는 대립을 겪었다.
* 앙 두옹(Ang Duong) 왕 : 앙 두옹 왕(ព្រះករុណា ព្រះបាទសម្ដេចព្រះហរិរក្សរាមាឥស្សាធិបតី អង្គឌួង)은 1848년부터 1860년까지 캄보디아를 다스린 군주이다. 그는 캄보디아 통일과 외국의 내정 간섭의 최소화를 위해 힘썼으며, 싸얌과 베트남의 지속적인 침략 시도에 맞서 주권을 보호하고자 프랑스와 동맹을 맺으려 시도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캄보디아의 전통적인 경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며 혹독한 수탈을 자행했고, 이는 캄보디아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특히 1885년에 일어난 전국적인 반발은 캄보디아인들에게 민족의식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는 캄보디아에 빼앗겼던 영토인 바탐방과 씨엠립을 되찾아주며 크메르 민족이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을 제공하기도 했다. 앙코르 유적이 위치한 씨엠립이 캄보디아로 돌아오자, 크메르인들은 찬란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해 갔다.
크메르 민족주의의 부상과 독립
"총알 한 발 쏘지 않고 식민시대가 시작되었다."라는 말은 프랑스의 캄보디아 식민지배기 전체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보호령 초기, 프랑스와 캄보디아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보호국'이었기에 반(反) 프랑스 저항이 적었다. 왕실은 유지되었고, 프랑스는 왕실을 관리하며 느슨한 지배 방식을 취했다. 더불어 프랑스는 캄보디아에 싸얌으로부터 빼앗긴 영토 또한 되찾아 주었다.
크메르 민족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반(反) 식민주의 정서가 아닌, 베트남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를 통해 태동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과거 주변국의 침략을 경험했던 캄보디아인들은 프랑스가 농업 개발을 위해 부족한 노동력을 중국인과 베트남인들로 채우자,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며 민족적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게 되었다.
이후 1930년대에는 *'나가라바타(Nagara Vatta/នគរវត្ត)'라는 신문이 캄보디아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창간되어 민족주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신문은 전통 크메르 문자를 사용하여 권위와 전통을 지니고 있었으며, 독자들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앙코르 시기의 위대함을 선전하며 크메르 민족의 단결을 촉구했고, 당시 유일한 크메르어 신문이었기에 그 영향력은 매우 컸다.
*나가라바타(Nagara Vatta/នគរវត្ត) : 나가라바타(Nagara Vatta, នគរវត្ត)는 앙코르 와트(Ankor Wat, អង្គរវត្ត)를 의미한다.
이러한 민족주의 정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독일이 프랑스를 함락하고 일본이 인도차이나에 진출하는 것을 목격한 크메르인들은 프랑스가 더 이상 자신들의 보호자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 시기 즉위한 *노로돔 시하누크 왕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1945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인해 실패했다. 그러나 이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캄보디아는 1953년 공식적으로 독립을 이루었다.
*노로돔 시하누크 :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នរោត្តម សីហនុ)는 캄보디아의 전 국왕이자 캄보디아의 독립과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한 주역으로, 왕, 총리 등의 여러 직책을 역임하며 캄보디아를 이끌었으며, 현재까지도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크메르 루즈의 부상과 비극
독립 이후 캄보디아는 다시 태국과 베트남의 위협에 직면했고, 노로돔 시하누크 왕은 중립화를 추진했지만, 월남전의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1970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 놀(Lon Nol) 장군의 쿠데타로 캄보디아에 친미 정권이 세워지며 혼란의 시기가 찾아오자, 혼란을 틈탄 폴 포트(Pol Pot)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Khmer rouge/ខ្មែរក្រហម)'는 크메르 민족주의 정신을 내세우며 시민들의 지지를 얻고 세력을 확장했다.
* 론 놀(Lon Nol) : 크메르 공화국의 초대 총리를 맡았던 캄보디아의 정치인이자 군인이다. 론 놀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 친미 쿠데타를 성공시켰으나, 1975년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의 프놈펜 입성으로 인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사망했다.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즈는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고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 정권을 수립했다. 이 정권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한 정책을 펼쳤다. 크메르 루즈는 찬란했던 앙코르의 위대함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주변국과 국제주의 요소를 부정하고, *베트남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인 비방을 조장했다.
* 당시 크메르 루즈는 수복해야 할 영토로 캄뿌찌아 끄라옴(Kampuchea Krom/កម្ពុជាក្រោម)을 지목했다. 캄뿌찌아 끄라옴(Kampuchea Krom/កម្ពុជាក្រោម) 현재 베트남 남부 지역으로, 과거 프랑스령 코친차이나로 알려진 곳이다. 캄보디아 접경지인 이 지역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 의해 코친차이나로 식민지화되었고, 1949년 6월 베트남에 양도되었다. 현재까지도 캄보디아 국민들은 이 지역을 다시 수복해야 할 영토로 주장하고 있다.
폴 포트는 중국의 지원의 있으리라 오판하고 무리하게 베트남을 침공했으나, 베트남의 압도적 무력에 의해 결국 1979년 크메르 루즈 정권은 베트남 군에 의해 몰락했다. 이 시기 크메르 루즈는 지식인을 포함해 도시 시민, 소수 민족 등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1/4을 학살했다. 이러한 '킬링필드'로 알려진 대학살은 크메르 민족주의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며, 현대 캄보디아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현대 캄보디아로 재건
크메르 루즈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캄보디아는 오랜 기간 내전으로 고통받았다. 이러한 혼란을 종식시키고 정치적 안정을 되찾기 위해 1992년 '유엔 캄보디아 과도통치기구(UNTAC)'가 설립되었고, 1993년 총선거를 통해 캄보디아 왕국이 재건되었다. 이후 1999년에는 아세안(ASEAN)에 가입하며 안정을 되찾았고, 오늘날에 이르러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캄보디아는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캄보디아는 비극적인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캄보디아의 역사는 한 국가의 격동적이고 비극적인 과거가 오늘날 사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며, 복잡한 현대 캄보디아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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