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lando.
음악은 시간 위에 정성스레 짜인 '베' 같다.
한 올 한 올, 씨실과 날실이 교차하듯
음표는 박자와 리듬 속에서 흐르고,
그 흐름 위에 화음이 얹히며 공간을 만든다.
이렇게 짜여진 악보는
연주자의 손끝에서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작곡가들은 그들의 악보라는 직물 위에
연주자가 어떻게 숨을 불어넣길 원하는지를
짧은 지시어로 남겨두곤 한다.
가끔은 연주자를 난감하게 만드는 지시어들을 마주하게 된다.
예컨대,
“Allegro ma non troppo” — 빠르게, 하지만 서두르지 말 것.
“Presto ma tranquillo” — 매우 빠르게, 그러나 침착하게.
서로 모순되는 듯한 말들 앞에서
연주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가장 낯설고,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지시어 하나—
Parlando.—‘말하듯이.’
음악을 말처럼, 이야기처럼 연주하라는 뜻이다.
쉽게 들릴 수 있지만, 정말 어렵다.
리스트의 파우스트 왈츠 중반부,
바로 그 Parlando 표기가 등장한다.
이 곡은 파우스트가 마을 축제에서 한 처녀와 춤을 추고,
그녀와 함께 조용히 어둠 속으로 어가는 장면을 그린다.
바로 그 순간—
리스트는 악보 위에 이렇게 적었다.
Parlando.
‘말하듯이’ 연주하라는 뜻이다.
그 장면을 연주자가 떠올릴 수 있도록,
작곡가는 짧은 문장을 악보에 함께 남겼다.
기억나는 학생이 있다.
제주도에서 유학 온, 조용하고 어딘가 안쓰러운 한 남학생.
말수도 적고 낯을 많이 가리던 그는
출강하던 날이면 국기게양대에 조용히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며 나를 기다리곤 했다.
“너 여기서 뭐 하니?”
“선생님 언제 오시나 해서요…”
이런 모성본능을 소환하는 아이를 보았나..
뭐라도 먹이고 싶어졌다.
레슨 후엔 떡볶이 한 그릇,
힘든 점은 없는지 틈날 때면 물어보게 되는.
그 아이가 리스트의 파우스트 왈츠를 치던 날이었다.
‘말하듯이’ 연주하라는 지시를 무심히 지나치길래
"이 장면은 사랑하는 연인이 조용히 걸어가는 거야."
그렇게 말하자, 아이는 갑자기 눈을 빛내며 말했다.
"와 ㅈㄴ 아름답다."
그게 그들 세대의 최상급 감탄사란 걸 알기에(비속어 사용을 혼내는 것을 참고).
다시 연주하게 하니,
다시 건반에 손을 얹은 아이는
정말 그 장면을 ‘말하듯이’ 풀어냈다.
그 순간 이아이는 그냥 이해를 해내고 음악을 통해 그 장면을 이야기 한 것이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듣다 신기한 경험을 했다.
디제이가 시 한 편을 조용히 읽고는
아무 말 없이 음악을 틀었다.
나는 절대음감도 아니고,
무슨 곡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처음 들린 음 하나를 따라 부르다가,
무심코, 아주 자연스럽게
멜로디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라디오에서 바로 그 곡이 흘러나왔다.
소름이 돋았다.
연주자가 단 한 음으로
그 곡의 감정을 이미 말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곡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 음은 조용히 그 노래로 나를 안내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듣고, 반응한 것이다.
음악은 그런 식으로 말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전해지는 방식으로.
그게 음악이 가진 언어이고,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또 다른 대화법이다.
요즘, 나는 자주 생각한다.
삶도 말하듯이,
때로는 노래하듯이 흘러가야 하지 않을까.
조용히 마음을 실어,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말처럼.
그렇게 하루를
‘Parlando’로 살아가는 것도,
꽤 음악적인 삶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