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함과 유연함 사이, 내 인생의 도슨트 엄마
혹시 메선생을 아시나요?
학생들이 피아노 칠 때 가장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그분.
하지만 한 번 친해지고 나면 떨어지기 어려워져
오히려 한 발짝 물러서야 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
바로, '메트로놈 선생님'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늘 말하죠.
“메선생을 곁에 두렴. 너를 흔들림 없는 리듬으로 데려다 줄 테니까.”
그런데 아이들은 메선생을 무서워합니다.
박자를 자기 맘대로 치고 싶은 아이들이
가장 소스라치게 싫어하는 존재가 바로 이분이거든요.
"메트로놈이 빨라졌다 느려졌다 해서 절대 못 맞추겠어요..."
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아이들의 박이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메선생은 까칠하신 편입니다.
본인과 비트가 ‘맞춰지는’ 걸 싫어하시거든요.
함께 걷는 걸 원하시지, 끌려오거나 앞서 달리는 건 싫어하세요.
시크릿 가든에서 현빈이 생각에 잠겨 걸을 때
옆에 나란히 나타난 길라임처럼(너무 옛날 드라마라 죄송요.. 적절한 비유가 안 떠오르네요..),
그저 나란히 걸어주는 정도를 원하시죠.
메선생의 이런 마음을 몰라주는 학생들은
메선생과 맞춰보려 애쓰다가
메선생보다 앞서 달리고,
뒤쳐졌다가 달리기를 반복하다 결국 뻗어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말합니다.
"이 메트로놈 고장 난 거 같아요!"
메선생은 가끔 말 없이 가르칩니다.
‘네 마음대로 치고 싶을 때일수록,
혹은 박에 꼭 맞춰 치고 싶을 수
그 마음을 박 안에 담는 연습을 하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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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놈은 아주 느린 라르고부터
숨 가쁘게 달리는 프레스토까지,
숫자만 맞추면 정확하게 똑. 딱. 똑. 딱.
그 박자를 소리로 알려주는 도구다.
물론 연주자가 템포를 마음대로 정하는 건 아니다.
작곡가는 곡의 맨 앞 왼쪽에
Allegro, Andante 같은 빠르기 말이나
♩ = 144와 같은 숫자로 템포를 명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철저하게 박자를 관리해 주는 메선생에게도
절대 역할을 대신해 줄 수 없는 시간이 있다.
그게 바로 '루바토'다.
낭만시대에는 이 루바토라는 연주기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름부터 어딘가 말랑하고 부드럽다.
급하게 달려가기도 하고,
잠시 느리게 머무르기도 하는,
템포의 유연한 숨결 같은...
하지만 루바토는 단순히 자유로운 표현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 자유는 적절한 흐름 안에서만 허용되며,
너무 과하면 연주는 불안해지고,
너무 덜하면 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다.
결국 루바토는
연주자가 자신의 음악성과 감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며,
그만큼 늘 조율의 긴장과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그 미묘한 ‘느림과 빠름’의 조화가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균형 있게 이루는 순간,
연주자는 음악의 흐름 안에서 비로소 자유를 누리게 되고,
그 순간, 음악은 말없이 관객을 설득하게 된다.
대학 1학년 때였다.
곡이 너무 아름다워 느림을 충분히 담아 연주했더니,
교수님께서 웃으며 한마디 하셨다.
“조금만 더 하면, 다른장르로 데뷔하겠는데?”
실용음악을 낮춰 하신 말씀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조금 멀리까지 간 듯했다—
클래식이 허용하는 루바토의 선 너머로.
그날 이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과연 내게 허락된 루바토의 선은 어디까지일까?’
메트로놈을 켜고, 한 프레이즈를 연주한 시간 안에
중간에 루바토를 넣고도
끝나는 시점이 다시 메트로놈의 박과 맞아떨어지는지를 실험했다.
딱 맞았을 때,
혼자서 “됐다!”며 환호성을 질렀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렇게 맞춘 들 진정한 음악일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허락된 틀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두려움은
그때부터 내 안에서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박자 안에서의 자유와
자유 안에서의 균형을 배워갔다.
요즘 나는 종종 생각해 본다.
내게 메트로놈 같은 존재는 누구였을까.
그 박자를 익히기 싫어 발버둥 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없으면 불안해지던 존재.
그리고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메트로놈 같기도 하고,
루바토 같기도 한 분이었다.
가혹하다 싶을 만큼 연습을 시키시다가도,
그것이 익숙해질 즈음이면
조용히 물러서 나를 스스로 서게 하셨다.
돌아가신 지금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삶의 많은 순간들 속에서
엄마는 나에게
루바토라는 시간을 보여주고 계셨다는 것을.
어떤 선택 앞에 설 때면
‘엄마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그 물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내 인생의 메선생이자,
도슨트였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