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하는 교사보다 오래 가는 교사
나는 한때 잘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수업이 매끄럽게 흘러가고, 아이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
그렇게 하루를 마치면 ‘오늘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다음 날의 나를 다시 교실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다.
수업이 잘 흘러가도 집에 돌아오면 몸이 먼저 무너졌고, 문제를 해결한 날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이 오히려 더 지쳤다.
그제야 나는 ‘잘하는 교사’라는 기준이 얼마나 빠르게 사람을 소진시키는지 조금씩 체감하게 되었다.
교실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거나 언제나 완벽했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체로 자기 한계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문제에 반응하지 않았고, 모든 감정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자기 몫이 아닌 책임을 조용히 내려놓을 줄 알았다.
그들은 조금 덜 말했고, 조금 늦게 움직였으며, 조금 더 오래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한 차이를 만들었다.
나는 이제 하루를 돌아볼 때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다.
오늘 나는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오늘 나는 얼마나 무너지지 않았는가.
오늘의 교실에서 내가 끝까지 사람으로 남아 있었는지,
그 기준이 조금씩 더 중요해졌다.
잘하려는 마음이 앞설 때의 나는 늘 몸이 급했다.
아이의 반응보다 내 판단이 먼저였고, 상황이 정리되지 않으면 내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남아 있으려는 태도를 선택한 이후로는 하루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모든 걸 오늘 안에 끝내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 당장 정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여지를 나 자신에게 허락했다.
그 여지는 교실을 바꾸기보다는 나를 조금 덜 다치게 했다.
교실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아이들의 감정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꾼다.
그런데도 교실에 남아 있는 사람은 늘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날의 자기 상태를 알고 있고, 무리하지 않는 선을 지킬 줄 안다.
나는 이제 잘하는 교사보다 오래 가는 교사가 되기를 선택한다.
눈에 띄는 성과 대신 다음 날도 같은 얼굴로 교실에 설 수 있는 상태를 우선에 둔다.
교실에 남는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너무 빨리 소모하지 않는 작은 선택들의 결과다.
오늘도 나는 그 선택을 조용히 반복하고 있다.
잘하지 못한 날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날에도, 그래도 다시 교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