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모든 감정을 책임지지 않기로 했다.

- 교실에 오래 남기 위해 내가 바꾼 한 가지

by mjbooks

나는 오랫동안 교실에서 생기는 감정들을 내가 모두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불안해지기 전에 막아야 했고,

분노가 커지기 전에 진정시켜야 했고,

침묵이 길어지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말을 끌어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교사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믿음은 전문성처럼 보였고, 헌신처럼 들렸고, ‘좋은 교사’라는 말과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집에 돌아왔을 때 몸이 먼저 무너져 있었다.

말은 끝났는데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온몸이 피로했다.

모든 감정을 책임지려는 날의 나는 늘 교실에서 조금 앞에 서 있었다.

아이보다 먼저 상황을 훑고, 다음 장면을 미리 상상하고, 무슨 일이 생길지 머릿속으로 계속 계산했다.

아이의 반응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내 몸은 긴장하고 있었다.

그 상태로 하루를 시작했고 그 상태로 하루를 마쳤다.

그러다 어느 순간, 교실은 그대로인데 나만 먼저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아주 늦게,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여러 번 되돌린 끝에 하나의 선택을 했다.

모든 감정을 내가 책임지지 않기로.


그 선택은 어떤 결심문처럼 단단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선언도 아니었다.

다만 아이의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마다 내가 속으로 이렇게 말해보는 연습에 가까웠다.

‘이건 내가 대신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끝까지 서 있지 않아도 된다.’

아이의 감정은 아이의 것이고, 나는 그 곁에 같이 서 있는 사람이라는 아주 단순한 자리를

다시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와줄 수는 있지만 대신 불안해하지는 않겠다고, 함께 있을 수는 있지만 끝까지 대신 버티지는 않겠다고.

이건 아이를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나를 먼저 소진시키지 않겠다는 쪽에 더 가까운 선택이었다.

이 선택을 하고 나서 교실이 갑자기 편안해진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 며칠은 더 불안했다.

‘이렇게 두고 있어도 되나.’

‘지금 개입해야 하는 건 아닌가.’

‘내가 너무 물러난 건 아닐까.’

말을 줄이면 불안이 커졌고, 기다리면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주 조금씩 달라진 게 있었다.

아이의 감정이 올라올 때 예전처럼 몸이 먼저 굳지 않았다.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깐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상황을 당장 정리하지 않아도 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불안을 바로 없애려 애쓰지 않아도, 그 불안이 잠시 머물 자리를 남겨두어도 교실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교실은 눈에 띄게 달라지지 않았다.

불안은 여전히 오고, 분노는 여전히 터지고, 침묵은 여전히 길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들 앞에서 전날보다 조금 덜 조급했고, 조금 덜 나를 몰아붙였다.

그 차이는 밖에서 보면 거의 보이지 않지만, 하루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내 몸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모든 감정을 책임지지 않기로 한 선택은 아이를 덜 신경 쓰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의 감정을 아이의 삶 안에 그대로 두겠다는 태도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나는 완전히 소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으려 했다.

교실은 하루 만에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선택 하나로 나는 포기하지 않은 상태로 다음 날 아침 교실 문을 열 수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덜 움츠린 몸으로, 조금 덜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선택을 지금도 매일 다시 연습 중이다.

모든 감정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은 한 번의 결심이 아니라, 교실에 들어가기 전마다 조용히 되뇌는 하나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