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엄마. 예민한 아이
오전 8시 30분.
아. 힘들다.
방금 도토리와 밤톨이를 등교시키고 소파에 널브러진다.
초등학교 3학년 5학년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이 이렇게 지칠 일인가, 이제 알아서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지 않았나... 억울한 마음이 든다.
오늘 아침, 왜 힘들었는지 복기해본다.
어젯밤 밤톨이는 아침 7시 15분에 깨워달라고 했다. 방송부에 8시 10분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7시 15분에 깨웠다. 그런데 밤톨이가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피곤한가 싶어서 7시 30분에 다시 깨웠다. 그랬더니 왜 7시 15분에 안 깨웠냐고 울었다. 7시 15분에 깨웠지만 네가 안 일어났고 지금 준비해도 하나도 늦지 않는다고 이야기해도 아이는 준비를 하지 않고 울기만 했다. 머리를 빗어주는데 피하고 옷을 갖다주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 7시 45분.
"너 계속 이러면 진짜 지각이야."
"알았어. 알았다고!"
소리를 지르며 느릿느릿 옷을 입었다.
이럴 때 고양이 레오가 필요하다. 레오는 밤톨이 기분을 아주 잘 풀어준다.
레오를 안아서 밤톨이에게 안겨주니 밤톨이 기분이 조금 풀렸다.
밤톨이에게 따뜻한 물과 깎은 사과를 주지만 손도 대지 않고 7시 55분 대문을 나섰다.
"잘 다녀와!"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밤톨이는 말없이 손을 흔들었다.
식은 물과 색이 변한 사과를 보니 속이 상했다.
이제 둘째 도토리를 학교에 직접 등교를 시킬 차례다.
밤톨이는 길을 갈 때 주위를 잘 살피고 다녀서 불안하지 않은데, 3학년인 도토리는 아직 불안해서 아직까지 학교에 직접 데려다주고 있다.
사실, 지난 3월 도토리가 혼자 학교에 가는 연습을 시도했다. 우선 학교 앞 횡단보도를 혼자 건너는 것부터. 노란 횡단보도에 신호도 있어서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도토리가 보행자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횡단보도 바로 옆에 정차한 트럭이 횡단보도 쪽으로 후진을 하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도토리가 트럭에 치일 뻔해서 너무 놀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날 저녁 도토리에게 트럭 때문에 놀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도토리는 중력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어서 잘 몰랐다고 했다.
아...! 애를 혼자 학교에 보내다간 큰일 날 수 있겠구나... 아이 키가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는 내가 직접 등교를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오늘도 도토리와 학교로 나섰다.
도토리는 휴대폰을 안 갖고 왔다며, 오늘 피아노 학원에 안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나에게 마쳤다는 문자 한 통을 보내고 전화도 한 통 하고 피아노 학원 차를 타는 것이 도토리의 루틴인데 그 루틴이 깨지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친구들 전화 빌려서 엄마한테 전화해 보는 건 어떨까?"
라고 얘기했더니 표정이 어두워진다. 남에게 부탁하는 걸 불편해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도토리는 대답을 안 하고 학교에 들어갔다.
과연 오늘 피아노 학원을 잘 다녀올 수 있을까. 도토리의 어두운 표정에 내 마음도 무겁다.
하... 우리 애들은 왜... 이럴까...
생각해 보니 나를 꼭 닮았구나! 그런 거였어!
초중고 시절 대부분 엄마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줬다.
학교에 갈 때 아침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는 주로 밥 먹기 싫어서 아침에 기분이 안 좋았고, 중고생 때는 피곤해서, 공부를 덜 해서 기분이 안 좋았다. 그래서 엄마 아빠는 나를 학교로 실어 날랐다.
학교에 가는 문제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은 나를 꼭 닮았다. 예민한 게 꼭 닮았다.
손에 뭔가 묻는 걸 싫어하는 것도, 별 것 아닌 소리가 거슬리는 것도, 음식의 맛과 향과 식감이 불편한 것도 나를 꼭 닮았다. 그리고 괜히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드는 것도, 루틴이 깨지면 하루가 망쳐질 것 같은 것도, 왠지 건강에 큰일이 생기면 어쩌나, 엄마 아빠가 우리를 두고 외출하다 사고 나면 어쩌나 걱정하는 상상도 나를 꼭 닮았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가 없다. 내가 그런 예민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어떡해.
뭘 어떡해. 애들이 좀 더 자기 예민한 기질을 잘 다룰 수 있게 도와줘야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잘 생각해서 도와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