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을 먹으려면 밥을 굶어야 해.

예민한 엄마, 예민한 아이 키우기

by 복작북작

"엄마, 나 이제부터 아침 안 먹을래."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안 그래도 키도 또래보다 작으면서 아침을 안 먹겠다니.

생각은 이렇게 했지만 꼬시고 협박한다 한들 (오랜 경험 상) 먹지 않을 아이라서 "아, 그래. 알았어."대답하고 우선 등교를 시켰다.


아이의 학교는 급식이 맛있기로 유명했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싫어할 때가 많았지만, 급식의 힘으로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올해 영양사 선생님이 바뀌었다. 그리고 급식의 맛이 많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아이는 하교를 하고 나면 속이 불편한 것 같다며 밥을 조금 먹기 시작했다. 아침은 아예 굶었다.


얼마 뒤 같은 반이 된 친구 엄마와 통화를 하던 중에 급식 때문에 아이가 담임 선생님께 혼나서 울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하교 후에 아이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급식에 샌드위치가 있었는데 빵 먹으면 속이 안 좋을 것 같아서 안 가지고 왔다가 혼났다고 했다.

급식은 맛이 없고 반찬이나 음식을 받아오지 않으면, 그리고 다 먹지 않으면 담임선생님께 혼나서 너무 괴롭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는 어릴 때 먹는 것에 너무 예민했다. 완전히 익힌 달걀 프라이는 딱딱해서 못 먹었다. 덜 익은 달걀 프라이는 비려서 못 먹었다. 삶은 달걀은 황 같은 냄새가 싫어서, 흰자의 식감이 싫어서 못 먹었고, 달걀말이는 안에 뭔가 이물질이 들어가서 불쾌해서 못 먹었다. 간장 계란밥은 간장 냄새가 싫어서 못 먹고... 계란만 해도 못 먹을 이유가 천지였는데 다른 음식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먹기 힘들었다. 김치는 매워서 못 먹고 멸치는 딱딱해서 못 먹고 소고기 돼지고기는 질겨서 못 먹고 나물도 질겨서 못 먹고... 그래서 그나마 잘 먹는 조기 구이와 흰쌀밥으로 연명하며 살았다. 이 마저도 많이 먹지 않아서 나는 늘 작았고 늘 약했다. (추측이지만 내가 소음인이라 위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나와 똑 닮은 아이가 태어났다. 고작 한 숟가락 양의 이유식을 두 시간씩 먹는 아이. 무슨 음식 하나 도전하기를 너무 힘들어하는 아이.

밥 먹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가 이미 겪어봐서 잘 아는 터라, 아이에게 먹는 걸 강요하지 않고 아이가 잘 먹는 음식 위주로 챙겨 먹였다. 그리고 새로운 음식은 딱 한 입만 권하고 더 먹고 싶으면 더 먹으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예전의 나보다는 잘 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잘 안 먹는 것을 기본값으로 여기고 사니 아이가 안타깝긴 해도 내 마음이 힘들지는 않았다.


아이가 유치원 때는 입이 짧은 아이 중 하나로 지냈지만, 초등학교에 가서 영양사 선생님을 잘 만나니 아이는 점점 밥을 잘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는 감히 시도도 해보지 못하던 다양한 음식을 학교에서 맛있게 먹고 나니 먹는 것을 점점 즐기기 시작했다.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줄어들어서 영양사 선생님께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올해 영양사 선생님이 바뀌자 아이가 또다시 예민해졌다. 아침은 굶고 저녁은 정말 조금 먹었다.

도움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되었다.


우선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아이가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소음인이라서 위가 약해서 잘 체하기 때문에 아이가 식판을 다 비우지 못해도 이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선생님도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급식 모니터링을 한 친구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급식 상태를 물어봤다. 아이들 평가로 작년 급십에 비해 맛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친구 어머니 생각으로는 못 먹을 정도로 나쁜 급식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아이는 작년에 비해 짜고 달고 뭔가 간이 안 맞는다고 했다. 작년이 너무 맛있어서 좀 비교가 될 수는 있지만 친구 어머니 의견으로는 나쁜 급식이 아니라고 했다고, 혹시 친구들과 급식이 맛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괜히 더 맛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고도 이야기했다.


아무리 맛집에 가도 맛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사람과 가면 밥맛이 뚝 떨어지게 마련인데, 친구들이 작년과 다른 걸 맛이 없는 거라고 투덜거려서 맛이 없어진 것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아이는 알겠다고 하고 학교를 다녔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가끔 먹을만한 반찬도 있다고 말했고, 담임 선생님이 출장 간 날에는 선생님이 안 지켜봐서 그런지 식판을 거의 다 비웠다고도 이야기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아이는 장조림이랑 밥을 한 숟가락 먹고 갔다.

감격이었다.


하교 한 아이에게 아침밥 먹고 가서 감동받았다고 말했더니, 이제 급식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고, 급식이 아주 맛있진 않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해졌다고 했다.


아.

다행이다,

이렇게 아이가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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