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뭐든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고 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살피고 의중을 짐작하고 그랬다. 이제는 웬만하면 그냥 예쁘게 웃고 넘겨버릴래~가 가능해지는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나는 거 말고 진심으로. 갈수록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불편하고 슬퍼지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생각 많음과 예민함을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그게 나의 코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서 무지와 둔감함은 폭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은 사사로운 실망감은 그냥 넘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 같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아픔을 건드리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보듬어주는 것보다 그냥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그 시간 속에서 함께하는 게 우리의 더 나은 생존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주변 사람들을 보며 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면서 나는 실제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믿고 있다. 이건 분명히 나에게 긍정적인 방향일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무섭고 감옥처럼 답답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나의 울타리가 나를 보호하는 것인지 가두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나는 결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실망스러운 말과 행동과 선택을 저질러버렸고 그것들을 반성하면서도 똑같은 실수들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내가 부끄럽다. 그렇지만 남들도 나와 똑같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사람들- 좋은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배려심 깊은 사람들- 이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똑같은 보통의 사람이라서 좋은 것이다. 그들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적 친절이 본성이 아닌 지극한 노력으로 보여서 좋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글로써 버려버리고 눈을 마주 볼 때는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함께 있기 때문에 다 괜찮은 것이다.
언제나 과거에 어땠느니보다는 현재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고 싶다. 계속 더 나은 선택을 하면 된다.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 당장부터 하면 된다. 지금은 반드시 과거가 된다. 그러니 항상 현재에서 눈앞에 있는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다정하면 된다. 가끔 실패해도 그 시간은 반드시 과거가 된다.
원칙은 큰 일에만 적용하면 된다는 말을 떠올린다. 큰 일이라는 건 무슨 일일까?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 정치적이고 종교적이고 교육적이고 환경적인 문제? 가끔은 모든 큰 일들이 다 무엇에서 비롯된 건지 생각해 본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아도 어떤 일들은 발생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정말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을까...
오늘따라 더 의식의 흐름대로 쓰였군. 최초의 생각은 ‘웃어넘기는 일’에 대한 생각이었다. 내가 웃어넘긴다고 해서 그 일을 가볍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나 보다. 내 웃음에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런 욕심이 자꾸 든다.
얼마 전 민음사 일력 문구였던 ‘인간은 사랑받기보다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 같다’는 글이 생각난다. 나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당연하다. 나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나조차도)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웃을 수는 있어 그런 생각으로 웃어넘긴다는..... 그런 밍밍한 생각. 결코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그럴 수도 있지 말버릇처럼 굳이 붙이는 마음에 대한 변명. 모두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보는 믿음..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자리 잡을수록 혼자의 시간에서는 더 많이 궁금해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사회생활하라는 말이면 되는데 그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