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송(目送)

떠나는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보냄

by 신지후

어떤 날짜는 살면서 각인되듯이 마음속에 새겨진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 된다. 나에게는 2013년 3월 12일이 그렇다. 그날 새벽에 첫사랑 ‘아이’가 자다가 호흡곤란을 일으켜 돌연 사망했다.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의 부고를 듣고 몇 달 동안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석 달 이상 몇 시간 동안 우는 일은 다반사였고 희망도 의욕도 없었다. 몸도 마음도 땅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거리로 나가면 사람들이 다 ‘아이’로 보였다. 아닌 줄 알면서 ‘아이’와 뒷모습이 닮은 사람을 보면 하릴없이 뒤쫓기도 했다. 나쁘고 아픈 꿈도 매일 꿨다. 잠들지 않으려고 일부러 잘 마시지도 못하는 커피를 자꾸 마셨다. 꿈속에서도 ‘아이’는 죽었다. ‘아이’가 죽는 꿈보다 죽을 뻔한 ‘아이’를 살리는 꿈이 깨고 나면 훨씬 더 가슴이 아팠다. 평생 마음이 아플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 봄꽃이 피었을 때 화사한 풍경에 화가 나서 나무막대기 하나 주워 들고 애꿎은 시멘트바닥을 마구 후려치면서 걸었다. 나의 분노는 불안과 닮아있었다.

‘아이’가 그리워 목 놓아 울고 싶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많을 줄 알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서른두 살의 우리는 꿈속에서만 사랑을 말해왔는데 허망하게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현실에서 우리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도 겁이 났다. 간절한 척 ‘아이’와 같이 있는 꿈만 꿨다. 한없이 비겁했다. 오래매달리기 같은 사이가 될 거라고, 처음부터 힘들고 끝날 때까지 고통스러운 관계가 될 거라고 지레 겁먹고서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나만 손을 놓으면 끝날 거라고도 생각했다.

우리는 같은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중3, 고2에 같은 반이 되었다. 1999년 세기말 가을에는 짝꿍이었는데 1분단 세 번째 줄 창가자리에 앉은 ‘아이’의 머릿결이 바람에 예쁘게 날리는 것을 보다 그대로 깜빡 졸았을 때, 가을햇살에 눈부실까 봐 ‘아이’는 곧바로 커튼을 쳐줬다. ‘아이’의 소소한 배려가 가을햇살처럼 가슴에 내려앉았다.

‘아이’는 하굣길에 매일 자신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우리 집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아이’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아파트 2층 현관에 올라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그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목송(目送)했다. 목송은 떠나는 사람을 말없이 바라보면서 보낸다는 뜻이다.

열여덟 가을날, 장대비가 세차게 오던 날 30여분동안 비를 맞아서 둘 다 비에 흠뻑 젖었을 때 자신의 집에서 우산과 커다란 타월을 들고 나와 이미 다 젖었음에도 큰 타월로 꼼꼼히 닦아주고 우산을 씌워주고 우리 집 앞까지 바래다준 너에 대한 고마움이 잊히지 않는다.

스물두 살, 괜히 속상한 마음에 객기 부리듯이 소주 한 병을 마셔서 시린 겨울밤 만취해 비틀대다가 너에게 업힌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따뜻한 너의 체온 덕분에 마음이 놓였고 슬픈 나는 ‘아이’의 목을 끌어안고서 눈을 감았다. “미안해. 잘못했어. 미안해. 다 미안해.” 계속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단 몇 발자국이라도 너를 업고 걸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평생에 한 번도 너를 업을 수 없게 됐다.

애써 기억하지 못하면 그대로 흐려져서 영영 사라질까 봐 두려워 기억을 주억거린다. 너보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사랑을 우정으로 착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동성 친구라는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