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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연 Apr 11. 2023

호롱불

추억이란 시절의 되돌림이다

동묘에 있는 골동품 시장에 가서 호롱을 하나 사고 싶다.

호롱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접한 수가 오래된 사람일 것이다.

동묘에 가면 새하얗고 깨끗한 호롱보다는 땟물이 꼬질꼬질하고 석유 때가 적당히 묻은 세월의 쩐내로 코팅된 걸 고를 것이다. 그래야 진한 추억의 골로 빠질 수 있을 테니...


호롱은 사기로 만들어졌다. 주먹만 한 크기에 심지를 끼울 수 있는 아기 고추 같은 뚜껑이 있고 몸통에는 앙증맞은 손잡이도 달렸다. 몸통 안에 석유를 붓고 한지 한 겹을 손으로 비벼 꼰 심지를 뚜껑에 끼우고 심지촉이 살짝 꼭지 위로 나오게 한 다음 심지의 아랫부분을 몸통의 석유에 담그면 심지 끝으로 석유가 빨려 올라간다. 그리고 피식하고 화약냄새가 나는 성냥을 그어 심지에 불을 붙이면 처음에는 석유가 타는 냄새를 풍기다가 얼마만큼 지나면 그 냄새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보다 옛날에는 돼지기름을 접시에 담고 심지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는데 그 냄새가 무척 고약했다는걸 아버지로 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자고나면 콧구멍에 까만 코딱지가 생겼다고 하니 심지를 타고 오르는 시커먼 그을음 오죽했을까. 호롱불은 분명 촛불보다도 어둡다.  옛날에 불은 제사를 지낼때 젯상에서만 켰는데 어린 나는 촛불이 참 밝다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호롱불은 지금과 비교해보면 어둠이 아니라 또 다른 암흑에 가깝다. 그러니 그 밝기가 어땠는지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학교 삼 학년 때까지 나는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약 십오 리, 그러니까 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시골에서 살았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셋과 동생 하나, 이렇게 일곱 식구는 방 둘과 대청마루가 있는 본채와 방하나에 마루와 뒤주가 있는 사랑채로 이루어진 여칸 초가지붕집에서 살았다. 여칸이란 여섯 칸 집을 쉽게 불러서 여칸집이라고 했고 시골집 치고는 꽤 큰집에 속하는 가정집이었다.  수십년 전의 기억인데도 그 집의 외형과 내부구조, 부엌의 집기들과 안방의 장롱. 그리고 누나들이 지내던 건너방에 있던 땅콩과 감자 소쿠리와,  안에 자리잡고 있었 외양간과 소여물죽을 끓이던 가마솥, 쉼 없이 되새김질하며 거품 침을 흘리던 암소와 젓을 빨기 위해 머리를 어미소 뱃살에 들이박던 송아지.  어린 마음에 소똥은 사람의 똥같이 냄새가 나지않는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더불어 안방의 벽지무늬와 장롱위에 자리잡고 있던 박바가지로 만든 성줏단지, 거기에 아침마다 물을 떠놓으시고 두손을 싹싹 비비며 절을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까지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밤이면 방마다 구석으로 밀쳐 두었던 호롱 등잔대는 어엿한 모습으로 방의 한가군데를  차지했다.

나무로 만든 등잔대 위에 올려진 호롱은 방마다 하나씩 있었다. 해만 지면 귀하게 대접받는 호롱은 시골집에서 칠흙같은 어둠 가운데 빛을 선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이었는데도 기억이 이처럼 또렷한 걸 보면 우리집이 나에게 준 의미는 무척 특별했나 보다.


아파트 거실에서 전기를 아낀답시고 거실등을 하나만 켰더니 어두워서 불편하다. 그래서 전등을 둘 다 켜고 스탠드까지 켜니 이제서야 좀 살 것 같다. 요즘은 모든 전등이 LED등이라 전에 쓰던 형광등보다 더 밝다, 이보다 더 오래전에 사용되던 30촉, 60촉, 100촉 알전구보다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밝다. 그런데도 밤이면 늘 어둡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책이라도 보려면 탁상스탠드를 켜서 페이지에 바짝 붙여야 되니 말이다. 대낮같이 환하게 거실과 방을 밝힐 수는 없을까?


우리 일곱 식구는 안방에서 호롱불 하나만 밝혀놓고 둥근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 흐린 불빛 아래서 반찬의 종류가 구별이 되는게 신기한 일이었고, 국 안에 감추어진 고기를 골라 다른 식구들보다 먼저 먹을 수 있었던 재주는 또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렇게 낮은 조도 아래서 음식들을 보고 식욕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음식을 먹는 식구들의 표정을 그 음침한 불빛 아래서 읽으시고 만족도를 파악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런 어둠 속에서 현란한 젓가락질로 생선가시를 귀신처럼 발라 내셔서 아들 밥숟가락 위에 올려주셨고, 누나들은 그걸 놓치지 않고 알아채고 딸차별에 대한 불만을 누르고 눌렀을 것이다.

상을 무르고 나는 방 벽에 붙여놓은 구구단을 소리 높여 외웠다.  숙제를 하고 동화책도 읽었다. 한쪽에서는 아버지께서 신문을 읽으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것도 안경도 없이 그 깨알같은 활자를 구별하실 수 있으셨다. 그러시면서 반사적으로 신문을 호롱불 쪽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이 하려고 몸을 비트셨고 어머니는 한켠에서 반짓고리를 펼치시고 바느질을 하셨다. 아~ 도대체 바늘귀에 실은 어떻게 끼우셨을까?

우리 식구들은 그렇게 어두운 방 안에서 많은 걸 하면서 살았다.


지금 우리 방안에 호롱불 하나만 켰다면 과연 어떨까? 내가 제정신으로 살 수 있을까? 나의 삶의 질은 과연 얼마나 떨어질 것인가?

사람은 신기하게도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견디고 버틴다. 아니 버티려고 버틴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버텨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로 인한 불편을 불편이라 생각하지않고 지냈던 것 같다. 사람은 보지않고 듣지 못한 것은 생각도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당시 우리식구들이 전깃불 아래서 하루만 살아보았더라도 호롱불을 집어 던지고 말았을것이다. 전깃불이 뭔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니 호롱불이 불편한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인간은 그렇게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 살아왔고 지금껏 생존해 오고 있다. 사람은 상황이 바뀌면 과거를 잊어버리는 기가 막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은 과거의 불편함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나아진 현재를 불편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불편을 해소하고자 편리한 미래를 창조해 나간다.  현재는 늘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편하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나 더 편해져야 편하다고 말할까.


국민학교 삼 학년 때 아버지는 자식들을 큰 물에서 키우겠다는 강한 의지력을 발휘하셔서 시내로 이사를 하셨다. 직접 기와집을 지으셨고 마침내 이사를 하던 날.  나는 처음으로 전깃불을 켤 수 있는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다.  30촉 백열전구의 스위치를 돌리는 순간 나는 천상을 경험 했었다. 그 순간은 기쁨을 넘어 환희였고 충격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의 눈부심이 조금 전처럼 또렷하다.  밝다는 상황을, 그리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감사했다. 그게 뭐라고 그리도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을까?


이제는 추억이라는 포장지에 고이 감 쌓여있는 그 시절들. 꺼질 듯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들과 동생이 사무치도록 보고 싶다.

과거라는 시절시절들을 우리는 잘도 잊어버리고 산다. 마치 그런 시절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때는 불편하다는 생각조차 하지못했던  불편함들은 내 기억 속에 꼭꼭 숨어 있다가 내 기억의 한켠에 불쑥 나타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채색 되어진다.  그렇다. 그 당시에는 불편하지도 싫지도 않았다. 모두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의 편함과 비교를 하니 그때가 불편했던 것으로 평가될 뿐이다.


나는 동묘에 가서 호롱을 하나 살 것이다. 그리고 어느 깜깜한 밤에 호롱불을 켜 볼 것이다.  나는 호롱불앞에 조용히 앉아 지난 기억들의 단편들을 하나 둘 찾아내어 구슬처럼 어 볼 것이다. 그 순간만은 어둡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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