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연 Apr 26. 2023

파주살이

왜 글을 쓰냐 하면요.

저를 소개하라고 하면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말합니다. 취미가 뭐냐 하면요,  전에는 음악이었는데 요즘은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그림 그리기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제가 좋아하거나 의도한게 아니라 오직 거주지를 옮기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저에게는 내몸이나  마찬가지인 아내와 과년한 두 딸래미가 내가 가진 전부입니다.

저는 서울 감남구 대치동과 삼성동에서 거의 20년을 살았습니다. 내가 강남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면 대동소이하게 하는 말이 "와..부자시네요"라고 합니다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치동과 삼성동 거주자들의 60퍼센트가 세입자인걸 아시는지요? 이렇게 설명하면  그 다음 반응이 웃깁니다. "세를 살아도 전세값이 얼만데 그러세요"

이 대목에서 할 말이 없어집니다.


6개월전에 경기도 파주로 이사를 했습니다. 두 부부가 살기 적당한 조그마한 신축 아파트로요. 좋게 말하면 이것도 노후대비가 되겠다 싶었어요. 맑은 공기와 조용한 동네, 외지지 않아서 사람냄새가 그립지 않은 곳이니까요. 그리고 GTX라는게 생기는데 파주에서 삼성역까지 25분이면 간다니, 아직은 실감이 나지않지만 좋아지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에 재직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한 저에게 같은 조건으로 계속 나와줄 수 없냐고 해요. 저야 한마디로 땡큐였지요.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서울 삼성동까지 출퇴근을 해야 한다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더군요.

그러나 쉽게 생각했습니다. 까짓거 못다닐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아직은 젊은데.....

편도 두시간. 왕복 네시간을 출퇴근에 투자를 하며 다닙니다.  사실 쉬운건 아니지요. 환갑이 훨씬 지난 나이로는 무리가 되는 건 사실일겁니다.

두주일쯤은 좀 피곤도 합디다마는 그 다음 부터는 별 생각없이 일상이 되더군요. 지금은 피곤한지도 잘 모르겠어요. 인간이란 다 처한 환경에 순응만 잘한다면 적응해가기 마련입니다.

재미난 건 제가 경의중앙선을 아침에 같이 탄 젊은이를 삼성역에 내릴때 거기서도 본다는 거예요. 젊은이들이 참 열심히 살아요. 우리 젊었을때보다 훨씬 더 박터지게들 산다싶어 괜히 대견해 보이고 한편으로는 동정하는 마음도 생깁디다.


이런 긴시간의 통근은 태어나서 처음 해봅니다. 그러다 보니 편도 두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가는지 앉아서 가도 엉덩이에 짓물이 날 것 같았어요. 저는 지금까지 전철을 서서 타 본 적이 거의 없어요. 안면몰수하고 노약자석에 앉습니다. 머리도 희끗하고 주름도 적당히 잡혔는데 아무리봐도 노약자석감은 아닌데 일어서라고 하기에는 아주 애매한거지요. 남들에 비하면 아주 편하게 앉아서 가는데 마냥 생으로 시간을 떼우는 것은 아닌것 같더군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뭐라도 이 시간에 유용한 것 하나쯤은 해야 하는거 아닌가 생각이 되더군요. 외국어 공부를 해볼까, 책을 읽어 볼까, 아니면 앉자마자 골아떨어져 버릴까...,.

가만히 생각하니 무엇보다 책을 읽는 것이 좋겠더라구요. 해외여행가서 큰 불편없이 다닐 수는 있으니 외국어는 그정도면 됐지요. 제가 외국인들과 정치.경제, 사회, 문화논할 일은 없을 것 아닙니까. 잠을 자려니 그것도 고역입디다. 몸의 중심이 옆으로 쏠리면 젊은이들이 팔꿈치로 슬쩍 밀어버리더라고요. 처음에는 화가 납디다마는 제가 잘못한 일이니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요즘 젊은이들에게 함부로 말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잖아요.  그래서 생각한게 책이라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봤는데 여간 재미나질 않아요. 5개월정도 되었는데 지금 열여섯권째 읽고 있습니다. 한달에 평균 세권을 읽은겁니다. 지적충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집이 회사와 리 떨어진 것에 감사를 했습니다. 그간 읽은 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열두권을 완독했고요. 같은 저자의 '안목', 유시민씨의 '유럽 도시기행' 두권을 읽었고 지금은 신영복씨 글을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외여행차 방문한 나라가 이십개국 정도 되는데 유시민씨 책을 읽고는 헛다녔다는 후회가 몰려옵니다. 이제서야 해외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진작 이런 책들을 봤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겁니다만 아쉽습니다.


그러던 차에, 휴대폰에서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는데 공감이 되더군요. 아내에게도 읽으라고 전달을 해줬습니다. 알고보니 그게 브런치 스토리에 어느 작가님께서 올리신 글이었습니다. 그리곤 생각을 했지요. 남의 글만 따라 다니며 읽을 것이 아니라 나도 글이란 걸 한번 써보면 어떨까.  그래서 브런치 스토리에 가입을 하고 습작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로 전철안에서 글을 글쩍입니다. 누가 내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는 이 시간이 생산한 어떤 사물이나 사건들에 대한 나의 주관과 그리고 추상적인 사유에 대한 나열들을 나의 공간에 간직해 보고는 것이 주목적이예요.  그러다 다른분들이 한번 읽어 보시고 이런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여겨주시면 그 또한 재미있을 것 같고요.

저는 경의중앙선 전철 왕복시간중에서 편도 하나는 책을 읽고, 다른 하나는 글을 씁니다. 글을 쓴다는 것 보다는 그냥 습작을 한다가 더 어울립니다.


휴일에는 그림을 그립니다. 주로 드로잉입니다. 둘다 미술을 전공한 딸래미들의 목을 졸라서 좋은 만년필 하나를 얻었어요. 그걸로 어반스케치를 합니다. 다니다가 좋은 소재거리를 찾으면 사진을 찍고 그걸 집에 와서 그리지요. 때로는 카페에 앉아서 끄적거리기도 합니다.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세가지의 취미를 파주시가 나에게 선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취미들을 오래 지속하고 싶습니다. 은퇴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답을 이미 정한 것 같아 기쁩니다. 내가 만약 서울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면 이런 즐거움을 만나지 못했을겁니다. 단 하나의 껍데기를 벗으니 비로소 삶의 여유와 즐거움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파주에 감사하는  겁니다. 물론 서울에 있어도 무엇인가 하기 위해서 시도는 했겠지요. 어디든 다 마찬가지일 겁니다만 파주란 도시는 매순간 나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진정한 고급문화 현장들이 많이 흩어져 있어서 이들을 향유하기가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나의 파주생활에 대해서 글을 쓸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튼간에 지금은 한마디로 말해서 파주에 오기를 잘했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아내는 어떤 생각일까요?

아직 물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작가의 이전글 보암직 스럽고 먹음직 스러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