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넝쿨 Sep 12. 2023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재택근무자의 공간

재석은 시시때때로 무미건조한 농담을 내던지며 씨익 웃습니다. 자신의 농담에 자신이 웃는 것이지요.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 한마디 없을 것 같이 조용하다가 시답잖은 말만 툭툭 내던지니까요. 그렇게 처음 만났을 때는 하는 말의 대부분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되는 공허한 농이었는데, 이제는 농이 절반으로 줄었더군요. 나이를 먹은 걸까요?


여기까지만 말하면 그냥 썰렁한 농담만 던지는 사람 정도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진가는 그 썰렁함을 견딘 자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주워 담을 만한 말이 몇 가지 있거든요.


재석은 이성적인 사고로 본인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 달려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그리고 더 깊게 어떻게 해야 잘 살 수 있는가 생각하고 공부합니다. 삶에 대해, 사는 방식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습니다. 발이 시리도록 온도가 낮은 그의 일터이자 휴식공간에서 나눈 대화를 공유합니다.



 


집에 큐브가 있네요. 역시 수학 선생님 같다. 맞출 줄 알아요?


(큐브를 능숙하고 현란하게 맞추며) 천재들만 하는 거예요. 아이큐 130 넘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사실 그건 아니고 그냥 공식으로 하는 거예요. 순서가 다 있고. 옛날에 인터넷에서 공식 찾아보고 맞추고 그랬어요.



이 집에 산 지는 얼마나 됐어요?


8개월 정도 됐어요.



이 지역에 정착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부천은 어릴 적부터 지내온 곳이라 자연스럽게 이 지역으로 왔어요. 가족들도 가까이에 있고요.



이  집은 마음에 들어요?


평수가 크지 않아서 조금 불편한데 신축 건물이라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아요. 그래서 편리해요. 근데 아무래도 이곳이 상권 중심지라서 밤에 보이는 휘황찬란한 불빛이랑 가끔씩 들리는 소음이 거슬릴 때가 있어요.



어떤 일을 하고 있어요?


온라인으로 국제 학교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관리도 해주는, 조금은 특이한 형태의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요.



수학선생님이시죠. 엄청 두꺼운 미분적분학 책도 있네요. 진짜 수학선생님 집 같다. 학생들 가르치려고 공부하는 거예요, 재미로 하는 거예요? 아님 둘 다?


공부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 수업 준비할 때 참고하려는 것도 있어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울트라 러닝> 책을 가리키며) 이 책 읽고 공부 시작한 건데요. 사실 다 읽은 건 아니고 초반 부분 읽고 영감을 받았어요. 이 사람이 인터넷에 있는 MIT 강의만 보고 4년짜리 과정을 3개월 만에 수료했대요.



그렇구나. 그래서 미분적분학을 일주일 안에 끝내 버리려고?


(웃음) 꿀 먹을래요, 꿀?



꿀을 갑자기 왜 먹죠?


자기 전에 꿀 먹으면 꿀잠 자는 거 알죠?



아… 자기 전에 한 스푼씩 떠먹나요?


네, 한 스푼씩 자기 전에 떠먹어요.



진짜 매일 자기 전에 먹는다고요?


네.



진짜로 매일? 언제부터?


아, 사실 매일 먹진 않고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그럼 꿀잠 자나요?


네. (웃음) 그런 것 같아요.



그럼 꿀 안 먹으면 꿀잠 못 자나요?


꼭 그런 건 아닌데 확실히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전에 뭐 안 먹는 거.



말이 계속 바뀌네요? 잘 자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많은가 봐요.


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두 갠데,  첫 번째는 자기 전에 배불리 먹지 않는 것. 가능하면 공복이 좋고요.



두 번째는요?


그리고 블루 라이트 차단하기. 그래서 저는 누워서 핸드폰 안 봐요. 그건 무조건 지켜요.



그리고 또 있나요?


낮에 햇볕 쬐기요.



그럼 낮에 산책 한 번씩 하나요?


아니요.



(둘 다 어이없는 웃음)


아 그래서 요즘 잘 못 자요. 잘 안 지켜가지고. 머리로는 아는데 실천을 안 하고 있어요. 요즘 너무 덥잖아요.



집 온도를 되게 낮게 해놓고 있네요. 발가락이 시려요 저 지금.


사람은 기본적으로 추위에 노출이 되어 있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 건강을 위해서 이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건가요?


네, 저 잘 때도 항상 에어컨 켜놓고 이 온도를 유지해요. 집 나갈 때도 보통 에어컨 켜 놓고 나가고요.



그렇군요. 집에 있을 때 언제 가장 행복해요?


날씨 좋은 날 하늘 보면서 멍 때리거나 잔잔한 음악 틀어놓고 책 읽을 때, 그날 할 일 다 끝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좋아하는 술 마실 때, 집 청소하고 소파에 누웠을 때. 이런 순간들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집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어디예요?


책상 앞에 하루 종일 앉아있죠. 거의 열 시간 이상? 제가 일을 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쉬는 공간이기도 해요. 좌식을 피해야 하는데… 좌식이 몸에 되게 안 좋대요.



몸 생각을 정말 많이 하시네요.


건강은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건강하기 위해선 항상 열린 자세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수업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해요?


수업 있는 날은 저녁 일곱 시부터 시작해서 두 개 있으면 열한 시 전에 끝나고, 세 개 있으면 열두 시에 끝나요.



일주일에 며칠 일해요?


주 4일 일해요.



수업 시간이 길지 않네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은요?


사실 특별한 준비가 필요한 건 아닌데, 저는 성격상 안 하지는 못하고, 그날 수업하는 학생들  과제를 다 체크해요. 과제를 보는 이유는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수업을 준비하는 목적도 있어요. 아침 9시에 일어나면 바로 집 앞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사 와요. 그때부터 한두 시간 정도 업무처리를 해요.



학생 관리 도와주는 조수 선생님들도 계시죠?


네. 지금 저랑 일을 같이 하는 조교 선생님 세 명이 있어요. 세 명 다 제 제자들이에요. 각자 하는 일이 조금씩 다른데 기본적으로 아이들 과제 관리하는 게 주 업무예요. 줌서실 아세요?



줌서실이요?


저희 학원에서 줌서실을 운영하거든요. 집에서 독서실 느낌을 내려고 줌을 켜놓고 공부를 하는 거예요. 학생들이 많으니까, 너희 줌서실 들어와서 공부해라 하고 만들었어요.



줌서실에 학생들은 많이 들어와요?


5명에서 10명 정도 인원이 꾸준히 들어와요. 들어온 학생들을 집계해서 매달 말에 무작위로 기프티콘을 쏴주기도 하고요, 실시간으로 줌서실에서 공부한 시간 알아볼 수 있게 줌서실 랭킹도 만들었어요. 재미로. 사람들이 원래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랭킹 매기고 그런.



이런저런 기획을 많이 하네요.


온라인으로 옮긴 지 2년 됐는데, 그 후로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면서 많이 발전했죠.



일하는 건 재밌어요?


네, 나름 재미있어요. 자유시간도 많은 편이고요. 근데 지금 삶이 제가 원하는 삶이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아요.



왜요?


음… 저는 더 큰 목표가 있기 때문에 제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거든요. 지금은 너무 점진적인 발전만 있어요. 저는 급진적인 변화가 필요해요. 제가 원래 중국에서 학원을 하다가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한국에 왔어요.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일이 있고 나서 더 발전했어요. 그래서 다시 한번 저를 성장시킬 외부적인 상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근데 그걸 제가 직접 할 수는 없어요.



재석 씨가 변하거나 도전하도록 할 수밖에 없는 외부 환경이 조성이 되어야 하는 거네요.


맞아요.



더 큰 목표라는 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건가요?


네. 흔히들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는 것이죠. 그러고 나서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고 싶어요. 학생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어쨌든 지금 일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요.



그럼 진짜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음… 자유롭게 사는 거. 학원을 하면서 깨달은 건데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저에게는 굉장히 큰 보람을 주는 일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돈을 안 벌어도 되는 상황이면 교육 봉사 같은 것을 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단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해보고 싶어요. 좋은 데 가고 좋은 거 먹고.



그렇군요. 가르치는 일은 정말 잘 맞나 봐요. 전 힘들던데.


저도 힘들어요. 저는 모든 아이들에 대한 기대치가 다 높거든요. 제가 학생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요. 예를 들어 같이 일을 하면 이 사람이 이 정도는 해주겠지? 생각하는데 그 기준이 너무 높아서 보통은 사람한테 실망해요. 이게 가르칠 때도 똑같아서 이 정도는 따라와 주겠지? 생각하는데 안 따라와 주면 애들을 몰아붙이고, 뭐라고 하고. 그러고 나서 또 그 말은 왜 했나 뒤돌아서 후회하고 그래요.



학생들도 애정에서 나온 타박이라는 걸 느끼지 않나요?


처음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위해주는구나.’ 이렇게 느끼는 학생도 꽤 되더라고요. 학생들 만나서 얘기 들어보면 저는 다른 선생님하고 다른 게, 다른 선생님들은 그냥 포기한데요. 말을 안 하고. 근데 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가려고 해요.



학생들이랑 꽤 친하게 지내죠?


네. 최근에는 입시가 끝나서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을 만나고 있어요



그렇게 학생들이랑 계속 교류하면 젊음이 부럽다거나 그 시절이 그립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드나요?


딱히 그런 생각은 안 들어요.



오, 지금 너무 만족하시나 봐요.


그런 건 아니고, 그 정도 나이차는 아닌 것 같은데….



맞는 것 같은데…(웃음) 요즘 읽고 있는 책 있나요?


<멋진 신세계>. 처음 부분이 많이 어려워서 아직 많이 읽진 않았어요. 제 친구와 제자가 동시에 추천해 준 책이에요.



<나는 네 시간만 일한다> 이 책은 재석 씨의 삶이네요.


이게 제 인생 책 중에 하나예요. 최소 다섯 번은 봤을걸요. 가장 많이 읽은 책이에요. 이 책의 저자가 저의 완벽한 롤 모델이에요.



뒤돌아보면 책들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많이 주었나요?

느끼는 게 많은 책들이 있죠. 나를 실제로 변화시킨 책들.




재석 씨를 실제로 변화시킨 책 세 가지만 꼽아주세요.


엠제이 드마코의 <부의 추월차선>, 팀 패리스의 <나는 4시간만 일한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성격 중에 한 가지 바꿀 수 있다면 뭘 바꾸고 싶어요?


행동력. 저도 행동력이 없진 않은데 시작하기 전에 엄청 재거든요. 겁도 많고요. 막상 시작하면 행동력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데 시작을 잘 못해요. 근데 일단 시작하고 보는 사람들 있잖아요. 생각하지 않고, 재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 그런 걸 엄청 부러워해요. 전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결과로 안 좋은 일이 발생하진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거든요. 뒤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까지 엄청 걱정을 하는데 그런 걱정 안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그럼 재석 씨가 생각의 생각을 다 끝마치고 실행에 옮기는 것들은 리스크가 0에 가깝다고 여기고 시작하는 거예요?


리스크가 0이라기보단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결정 내리고 후회하는 걸 가장 두려워해서 이것저것 다 고려해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어서요.



그럼 재지 않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 되기는 힘들겠네요. 신중한 사람이니까. 그게 재석 씨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충분한 고민이 필요한 일들이 있고, 고민을 하는 것보단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나은 일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 이러한 일들을 잘 구분해 내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학생들 가르치면서 가장 뿌듯한 때는 언제예요?


수업 중에 어려운 개념을 설명했는데 학생이 제 의도를 알아차려서 서로 눈빛으로 교감하는 느낌이 들 때랑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학생이 결국 무엇인가를 이루어낼 때요. 이때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보람을 느껴요. 저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존경해요. 자극도 많이 받고요. 이런 걸 느끼니까 이 일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잘 가르치는 방법이 있나요?


뭔가를 가르치려면 일단 그것을 완벽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살고 싶은 로망의 집이 있나요?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펜트하우스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네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어요?


누군가가 말하더라고요.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고, 반박의 여지없이 지루함이다. 저는 항상 가슴 뛰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2023년 8월의 재석.

매거진의 이전글 세 자매가 함께 사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