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할머니, 고맙습니다!

by 김지민

2026년 3월 4일 >>>


우리 딸은 서른에 결혼했다. 2년 연하의 사일러스(Silas)와 “브릴리언트(https://brilliant.org)”를 창업, 6년을 함께 일하다 인연을 맺은 것이었다. 결혼식은 위스칸슨(Wisconsin)의 시댁 농장에서 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애기 소식이 없었다. 회사일이 바쁘겠지 짐작만 하며 살던 어느 날 아내가 문득 하는 소리.

“여보, 수연이가 체력도 단련할 겸 철인3종 경긴가 하는 그거 준비한대요.”

나이는 자꾸 먹는데 애기 가질 생각은 안 하고, 뭐? 철인3종? 기가 막혔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평생 “자식은 방목(放牧)” 원칙을 고수, 일체 아무 간섭도 안 했던 나. 게다가 내 인생이 꼬여 지금은 저희들 회사의 녹까지 먹고 있는 처지가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묵과할 수 없다 싶어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사위도 알아듣게끔 간략히 영어로 표현했다.

“여보, 애들한테 전해라. 노 베이비, 노 지미! (No baby, no Jimmy!)”


발리(Bali), 하와이, 요세미티, 라스베가스, 이태리 등지로 매년 우리를 효도여행 모시고 다녔던 고마운 사위와 딸. 하지만 이제부턴 “아기 없이는(no baby)” 어떤 초청에도 “불응(no Jimmy)”한다 하는 전갈이었다. “간섭”은 결코 아니고, 하하, 일종의 협박이었다. 그게 먹혔는지 마침 몰아친 코로나 때문이었는지, 수연이는 1년 뒤 무쇠 철녀(鐵女) 대신 젖먹이 “엄마”가 됐다. 그렇게 태어난 “하솜”. 미국 이름 시몬(Simone). 아내와 나는 손뼉을 치며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 우리의 첫 손녀를 맞았다. 하솜이는 지 엄마 아빠 품에 안길 틈이 없었다. 그들의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에 방해가 될까 봐, 틈만 나면 내가 유모차에 태워 나갔다. 그리고 돌아오면 또 할머니(+할아버지)가 기저귀 갈고, 놀아 주고, 우유 먹이고, 목욕시키고, 재우고…… 가끔 젖 물리기, 밤에 자장가 불러 주기 외엔 부모라는 자들이 하는 게 없었다. “벤쳐”란 그처럼 핏덩이조차 볼 겨를이 없는, 아주 “가혹한” 종류의 사업인가 싶었다.


첫돌이 지나도록 그렇게 자란 우리 하솜이. 한 살 반부터는 몬테소리(Montessori)에서 하는 데이케어(daycare)를 다녔다. 마치 나이에 맞춰 “홀로서기” 훈련을 받는 아이처럼. 아침 8시, 하솜이가 벨을 누르면 선생님이 문을 열고 “Good morning, Simone! Come in.” 하며 반갑게 맞으신다. 내 손을 꼭 잡은 채 목을 있는 대로 젖혀 올려다보며 머뭇거리는 아이. 가끔은 홱 돌아서 내 허벅지를 와락 껴안는 아이. 매일 아침 그런 조막손을 풀어 선생님 손에 쥐어 주고 돌아서는 그 짠함이란…… 그리고는 하루 해가 기울고 오후 5시. 장장 아홉 시간을 떨어져 지낸 아이들이 부모와 재상봉하는 시각. 벨을 누르기가 무섭게 “꺄~악!” 함성이 문 저편에서 폭발한다. 저마다 지 엄마/아빠를 기대하는 아이들. 시선은 일제히 문에 집중되고, 내 얼굴이 보이는 순간 온 방은 “시몬! 시몬!” 하며 웅성거린다. 누구도 실망하는 기색은 없다. 얼굴 가득 희망, 마냥 떠들썩하기만 하다. 다음은 분명 우리 엄마/아빠 차례일 테니까.


2023년 봄엔 하솜이와 2년 반 터울로 손자 “주안”이가 태어났다. 미국 이름 케이시(Casey). 어김없이 또 달려갔고, 이젠 하나가 아닌 둘을 봐 줘야 했다. 우리가 너무 힘들까 봐,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한국 돌아갔을 때를 대비, 딸/사위는 이 둘째도 생후 9개월부터 그 데이케어에 보냈다. 애가 워낙 순해 돌보기가 쉽다며, 원장 선생님이 “1년 반” 규정도 무시, 기꺼이 받아 주셨던 것. 그렇게 첫돌도 안 되어 학교를 시작한 우리 주안이. 여기 시카고 이사 와서 한 살 반부터 간 학교는 차로 무려 3~40분 걸렸다. 바로 집 앞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낫다며 지 엄마가 거리 불문하고 선택한 “명문” 몬테소리. 지금은 통학용 밴을 타고 다니는데, 처음엔 내가 차로 등하교시켰다. 아침 8시, 교실문에 달린 세로로 긴 쪽창으로 아이가 보이면 산(山) 만한 선생님이 문을 열어 주신다. 쓱 올려다보며 백팩(backpack)을 벗어 드리고는 마지못해 발을 떼는 애처로운 뒷모습. 그걸 보고 돌아서는 할아버지는 늘 콧등이 시렸다.


주안이는 오후에 데려올 때가 몇 배 더 가슴 아팠다. 아무 해 주는 것 없이 그냥 엄마 아빠와 살갗만 닿아도 좋은 것이 “아이들”. 그런데 주안이는 그 어릴 때부터 종일 집밖으로 내몰려 버릇했으니 얼마나 학교가 싫었을까? 천성이 좋아 땡깡, 게으름 한 번 안 부렸던 아이. 쌓인 것이 있다면 다 마음 깊숙이 쌓였으리. 오후 5시, 복도를 들어서면 내 얼굴 높이 창문에서 아이가 내려다보인다. 쪽창 있는 교실문에서 디귿(ㄷ)자로 20미터 떨어진 공간. 대개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그림책을 보거나, 둘러앉아 선생님 책 읽는 소릴 듣고 있다. 톡톡, 창문 소리에, 번쩍, 눈이 마주치고. 순간 주안이는 “헐크(Hulk)”가 된다.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모든 걸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총알 같이 그 20미터를 달린다. 선생님도 규율도 눈치도 아무 필요 없는, 완전 무아(無我)! 젖 먹던 힘을 다해 뛴다. 그러면 선생님 한 분이 뒤따라와 옷 입히고 백팩을 매어 내보내 주신다. 아이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내 팔을 당겨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도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는 듯……


최근에도 가슴 찡한 순간들이 있었다. 지난 주 금요일, 수연이가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갔고, 어제는 사일러스도 가서 합류했다. 그런데 그저께 월요일 밤, 멋도 모르고 내가 사일러스에게 내일 출발이 몇 시냐고 물었다. 아직 애들에게 말을 안 할 줄 몰랐던 것. 그러자 하솜이가 옆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아빠를 다그쳤다.

“Dad? Mom is away. Then why do you have to go away, too? Why? For how many days?"

(엄마도 없는데 왜 아빠까지 가야 돼요? 도대체 왜? 며칠이나?)

베이비시터, 내니(nanny), 할머니/할아버지 손에 맡겨지는 것에 평생 --- 5년 반 --- 이력이 나 있는 하솜이. 하지만 전혀 무방비 상태로 접한 뉴스라 무너지고 말았던 것. 아내가 뛰어와 매일 TV 시청 1시간, 밥 잘 먹으면 캔디 등 보상을 약속, 상황이 종료됐다. 나중에 주안이가 울자, 이번엔 하솜이가 일주일치 달력을 그려 엄마 아빠 오시는 날짜들을 짚어 주며 동생을 달랬다.


벤쳐들이 저마다 구구절절 사연이 있으리. 우리는 이처럼 “아이들 눈물”이 그 뒤에 감춰져 있다. 수연이가 셋째를 가졌다 하니 더 많은 눈물이 아직 남았다. 작년에 하솜이 네 살 반 때, 지 엄마한테 하루는 타이핑을 가르쳐 달라고 했단다. 배워서 뭐 할 거냐 물었더니, 엄마를 도와줄 거라 했단다. 아직 엄마는 못 도와주고 있어도, 이제 다섯 살짜리가 타자를 곧잘 친다. 어른 눈에 아이들이 측은하듯, 같은 인간인 아이 눈에도 종일 앉아 일하는 어른들이 측은하리. 어제는 마침 주안이 병원 체크업이 있어 평소보다 두 시간 이른 3시에 픽업을 갔다. 내가 운전대에 있고 아내가 주안이를 태우며 하는 말.

“여보, 주안이가 손잡고 나오면서 뭐라 하는 줄 알아요?”

한국말은 아직 “엄마, 아빠, 밥 먹자, 물 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 사랑해요” 정도 할 줄 아는 주안이. 세 살도 안 된 어린 것이 얼마나 기뻤으면 지가 가진 어휘를 총동원, 다 늙은 할머니를 울컥하게 만들었을까?


“할머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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