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AI 전쟁, 죽느냐 사느냐 즐기느냐

by 김지민

2026년 3월 14일 >>>


매번 초등학교 동기회에 가면 나는 어김없이 한소리 듣는다. 그렇게 여러 번 갔어도 단 한 번 예외가 없었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확률상 누구 하나가 꼭 입을 열고, 금방 둘셋이 가세, 뭇매를 놓는다. 그러면 나는 “정말 미안하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몰라, 평생 부끄럽게 여겨 왔다”며 용서를 빌고, 다들 한바탕 깔깔 웃는다. 까마득한 그 옛날 내가 지었던 죄는 다름 아닌 “이름 적은” 죄. 떠드는 아이, 군것질한 아이, 하하, 소위 불량자를 색출, 칠판 한구석에 적어 일러바친 죄다.


반장으로서 나름 선생님 말씀대로 충실히 한 일. 나는 그저 눈에 띄는 족족 이름을 적었다. 그러다 졸업하고 나이를 먹고...... 첫 몇 번 모임에서 그 따가운 핀잔을 받을 땐 그냥 미안하기만 했다. 얼마나들 한(恨)이 맺혔으면 이럴까 하며 군말 없이 싹싹 빌기만 했다. 그러다 찾아온 실직, 사업 실패, 7년 실업(失業), 끝내는 자식 녹 먹는 신세. 이런 극심한 시련 중에 듣는 친구들의 그 질타는 왠지 갈수록 그 여운이 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성큼 다가온 깨달음!

“아, 그렇네! 이름 적기! 나는 바로 그게 문제였네!”


친구들 입장에도 서 보면서, 선생님과의 중간에서 얼마든지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위치. 그럼에도 천지를 모르고 나는 "힘"의 편에 서서 내내 꼭두각시 놀음만 한 것이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편협함. 옆은 안 보고 앞만 보는 외골수. 거꾸로 뒤집어도 보는 여유 부재.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무지(無知). 포용력 없음. 비타협적. 흑 아니면 백. 융통성 결여. 유연하지 못함...... 이런 못난 속성들이 “이름 적기”로 시작, 속속 부끄러운 이력을 만들어 내 갈 줄은 내 어찌 꿈엔들 알았으랴?


연약한 우리 인생이 정녕 운명(運命)은 못 피하는 것일까? 아무리 뉘우쳤다 해도, “브릴리언트(https://brilliant.org)”에서 내가 결국 하는 일은 꼭 “이름 적기” 같은 것. 프루프뤼딩(proofreading) 또는 카피에디팅(copyediting)으로 불리는 교정/검수 작업으로서, 수많은 교재들의 모든 오류/보완점을 일일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서 밝히는 일이다. 과거 그 “이름 적기”보다 백 배 가혹하다. 전 직원을 상대로 한 테스트에서 당당히 선발돼, 무려 10년이나 해 왔다. 모든 게 온라인 업무라 서로 얼굴들은 잘 몰라도, 몇몇 직원들은 지극히 내가 미울 것이다. 옛날에 내 친구들이 그랬을 것처럼......


심은 대로 거둔다더니, 마침내 나도 “이름 적히는” 신세가 됐다. 에이아이(A.I.) 때문이다.

“Jimmy, if A.I. ends up being able to do your job, we’d have to let you go."

(지미, 에이아이가 네 일을 하는 날이 오면, 너도 짤리는 거야.) 딸과 동갑인 내 보스(boss)가 2년 반 전에 했던 경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숫자, 수식, 글, 이미지, 그래프, 서식, 배열......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을 100% 사람이 보듯 똑같이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판단하여 수정도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이런 꿈 같은 기계가 별 쓸모없는 불량 직원 명단에 내 “이름 적기”를 할 날이 온 것이다. 설마 했는데, 진짜 코앞에 왔다. 최근엔 아내와 노후 대책을 논하는 일이 잦아졌다.


어제는 아들이 뉴욕에서 날아와, 2년 만에 우리 부부와 딸, 아들, 총 넷이 한자리에 모였다. A.I.가 신경이 쓰이는지 아들을 공항에서 픽업하자마자 아내가 차에서 묻는 말.

“도근아, 니가 하는 디자인도 A.I.가 사람보다 더 잘하지 않나?”

사실 나도 늘 궁금하고 걱정됐는데, 의외로 고무적인 아들의 대답.

“2년 전에 디자이너로 뽑힌 건 맞아요. 근데 저도 몰랐는데요, 제가 어려운 거 쉽게 설명하고, 고객을 상대하고 설득하고, 그런 걸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케팅까지 다 맡게 됐어요. 가령 (랩 가수) '탄예(Tanye) 공연'이 있다 하면, 로봇이 어떻게 앉아서 그걸 논의하고 기획하겠어요? 사람이 해야지.”


상상을 불허하는 “A.I. 전쟁”의 시대, 감사하게도 아들놈은 저만치 그 불똥을 피해 있는 듯하다. 나는 마치 전쟁 영화의 엑스트라처럼, 어느 순간 소리 없이 "픽 죽는” 운명이다. “브릴리언트”는 A.I.를 적극 활용, 각국 언어로 1대1 튜터링(tutoring)을 도모하고 있다 하니, 딸년은 이 전쟁통에 “크게 사는”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나머지 한 명, 최고로 복 많은 내 아내는 이 전쟁을 유유히 “즐기고” 있다. 5미터 높이의 유리창도 윈봇(Winbot)을 이용, 구석구석 완벽히 닦으며 흐뭇해한다. 그 외에도 핸드폰 하나로 온갖 최신 장치들을 떡 주무르듯 하며 즐겁게 산다. 나의 적 A.I.가 아내에겐 절친, 우리 셋은 소위 삼각관계다.


앞이 안 보이는 “A.I. 전쟁”. 죽느냐, 사느냐, 즐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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