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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Oct 26. 2023

내 하루 일당, 9만원이 없다고 내가 말라죽을까

아르바이트와 경제력, 걱정에 대하여

 어리숙한 나의 고등학교 3학년, 

일이 힘들지만 시급이 세다는 점과 집과 가까워 퇴근 차량 운행을 한다는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멋모르고 면접을 보러 들어가니 남자아이인 줄 알았던 나를 두고 깜짝 놀라셨던 사장님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알바 경험 하나 없던 여자 아이가 들어와 어떻게든 일해보겠다고 하니 2주 정도 일해보고 결정해 보라고 하셨다. 가스레인지 불 켜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나는 한 달 동안 고기 불판은 갈지도 못해 같이 일하던 오빠에게 의지했다.

 몇 년이 흘러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점,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누군가는 나의 정적을 무어라 하고, 누군가는 자신만의 잣대로 나를 두고 혀를 차기도 했다. 대학교 4학년인데 알바해서 되겠냐며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 두 마디 얹는다.

 입시가 끝나자마자 시작했던 알바의 의미는 내게 '독립'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용돈을 많이 받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기저가 되어 '내가 나를 먹여 살려야겠다'는 다짐이 마음 깊숙이 뿌리가 박혀 살아왔다. 부모님께서는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할 수 있게끔 장을 만들어주시는 분들이었지만 왜인지 부탁하면 내가 불효녀가 된 것 같았다. 아마 이 말을 들으시면 속상할 텐데. 나 스스로 해내야만 효녀가 되는 기분이었다.

 일하는 가게에서는 나를 두고 굉장히 칭찬하셨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돈을 버는 모습이 너무 예쁘다며 몇만 원 더 얹어주시기도 했다. 나는 그런 세상의 시선과 잣대가 나 스스로의 평가와 효심의 기준이 되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거의 긍정적인 반응들이라 뿌듯했다.


대학교 3학년, 무언가 이상했다.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모습을 대단하다며 박수치거나 또래와 달리 성숙하다며 우월감을 주던 동기들은 하나 둘 경제활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취업 준비를 시작하며 대외활동이나 공모전들을 준비했다. 나 또한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항상 걱정하는 마음은 여전했다.

'옷은 뭘로 사 입지?', '밥은 먹어야 하니까 신발은 나중에 사야겠다.', '커피 한 잔에 5천 원이 넘어? 이거 저쪽으로 가면 밥 한 끼인데.'

 자질구레한 마음들이 모여 나는 1년에 옷을 한 두 번 살까 말까 하는 구두쇠가 되었다. 목이 다 늘어나도 입고 다녔던 맨투맨을 생각해 보면... 아마 나는 옷이 찢어지지 않는 이상 괜찮게 입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지나다니는 동네 강아지도 내 옷장에 무슨 옷이 있는지 알 만큼 옷을 사지 않았다. 친구 생일선물에는 턱턱 잘 내면서도 내게는 쓰는 돈이 그렇게 아까웠다. 교통비가 아까워 활동을 나가지 않거나, 알바시간과 겹친다는 이유로 유익한 교육을 포기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합리화를 했다.

'알바 시간이랑 겹치네. 못하겠다.'


더 클 미래보다, 더 작을 현재를 걱정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은행 어플 중에, 비슷한 조건을 가진 또래 중 내 자산은 상위 몇 퍼센트에 속하는지 따지는 기능이 있다. 정확한 수치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그곳에서 약 상위 10%에 속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 수치가 믿기지는 않는다. 당장 SNS나 온갖 뉴스만 보아도 나보다 훨씬 잘난 집안이나 건물을 가진 또래가 많고, 주식이 대박 난 젊은 청년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도배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죽어라 모았다. 그 수치를 보고도 계속 모았다.

 그런 나를 보고 내 주변의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지금 얼마를 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돈 아마 네가 직장 생활하면 1년 만에 모을걸? 그러니까 지금에 집중해서 더 나은 자리를 노려봐.'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취준을 시작하라는 의미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바보처럼 생각했다.

'그럼 달마다 저축하던 돈은 내 생활비여야 할 텐데, 돈을 못 모으면 어떡하지?'

 하루 일당 9만 원을 모으지 못한다는 사실에 초조해졌다. 얼마나 바보 같은지.

지금은 일당 9만 원보다 더 값진 하루를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할 날을 최소화했고, 최대 며칠만 하자고 다짐했다. 그 이상으로는 대타도 안 나가고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 경험하러 집 밖으로 나가곤 한다.




 어딘가에는 나처럼 돈에 대한 강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직 직장 생활을 해보지 않았고, 본격적인 경제 활동 전선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직장인 분들과 공감하고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게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그들의 출근과 퇴근에 모두 박수를 보내는 입장이다.

 아직 경제 전선에 들어서기도 전에, 하루 일당에 집착하고 오늘의 벌이와 내일의 저축에 목매다는 삶을 사는 어딘가의 불특정 개인에게 걱정을 버리라고 하고 싶다. 아르바이트를 줄이고 산지 두어 달 즈음되어가는데, 아무 일도 없더라. 나는 그대로 잘 살더라. 오히려 더 나은 경험과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

 다들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잠은 잘수록 늘기만 하고, 꿈도 꿀수록 커지기만 한다. 걱정도 할수록 늘기만 하니까, 오늘 일단 눈부터 감고 자자. 다들 오늘도 고생 많았다며 4학년을 보내는 한 대학생이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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