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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Jan 25. 2024

지난날을 후회보다 추억하는 법

후회, 미련, 인간관계에 대하여

 나는 후회가 없는 사람이다. 제목과 달라서 당황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말이다. 지난날의 그 어떤 순간도 후회하지 않는다. 이유는 확실하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사는 나는 순간들과 하루들을 허투루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심히라면 열심이었지, 괜히 재어보고 뒤로 빼어보고 그런 순간들은 없었으니까.


그때 왜 그렇게 말했지? 이렇게 말했으면 한 방이었을 텐데.

 나라고 쿨한 배포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싸움을 싫어하는 나는 누군가와 다투게 될 때면 어물쩍 넘어가며 피상적인 평화만을 좇았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밤에는 꼭 이불을 찼다. 사실 이불을 차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거리다 잠들었다. 방 천장에 붙은 야광별을 쳐다보면서.


'아까 이렇게 말했으면 걔는 아무 말도 못 했을 텐데. 아깝다.'


 뒤늦게서야 논리적인 말이 떠오르면 머릿속 무대의 주인공은 나였다. 아까의 상황으로 돌아가 재연 배우들이 무대 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멋지게 한 방 먹여주는 상황을 재연한다. 속으로. 혼자. 솔직하게 써보자니 부끄러운 속내지만 나 같은 어린 시절의 마음속 경험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난 마음속으로든, 현실에서 마주한 상황 속에서든 늘 뒤늦게 주인공이 되곤 했다. 내가 바라는 나는 뒤늦게 떠올랐으니까. 상대방을 향해 멋있게 말문을 턱 막는 논리적인 문장들은 뒤늦게 떠올랐으니까.

 지나간 상황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나가버린 내 어벙벙한 말문 막힌 모습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바라던 당시의 평화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라 형체 없이 흐릿한 추상의 평화 같은 것이었단 점이다. 뚜렷한 형체 없는 평화는 내가 할 말조차 흐리게 했다.


그 애는 그때 왜 그랬을까? 내가 조금 더 잘해볼걸.

 후회와 미련은 주로 인간관계에서 많이 쓰이는 것 같다. 시험이나 면접 같은 커리어 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책임의 주체가 '나'다. 그래서 누군가를 탓하지 못하고, 조금 더 성숙한 면모로 상황을 곱씹고 탄식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다르지. '나' 말고도 통제할 수 없는 '너'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대방을 두고 '내가 너랑 무슨 얘길 더 하겠니.' 하며 포기해버리곤 한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미련한 생각과 후회. 내가 조금 더 잘해볼걸. 너도 좋은 아이였는데.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정말 구제불능 쓰레기(표현할 길이 이것밖에 없다)가 아니고서는 '너'와 '나' 모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게 개인 대 개인이든, 개인 대 집단이든, 집단 대 집단이든.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동등한 크기가 아니었단 증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나'는 잘해볼 필요가 없다. 후회와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단 소리다.


차라리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너를 그 자리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옆자리에 너를 앉히지 않았더라면. 너와 그날 밥을 먹지 않았더라면. 술을 먹지 않았다면.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관계에서 후회와 미련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받은 상처와 고통이 잔존해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뻔하고 우스운 생각을 했다. '운명이란 게 정말 있을까?'

싸울 운명, 헤어질 운명, 만나서 웃을 운명 같은 것 말이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운명처럼 얽힌 관계가 있을까 하는 생각. 아무래도 내 마음이 지쳤을 때였던 것 같다. 나는 후회와 미련 같은 것을 갖고 싶지 않아서, 중대한 관계의 결정이 필요한 때면 친한 친구에게 구구절절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가 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결국 나는 내 멋대로 했고, 그렇게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주변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했을 때 내 마음은 방황했다. 그래서 더 이상 관계에 있어 후회나 미련은 잘 갖지 않는 것 같다. 내가 한 선택은 내게 후회나 미련보다 행복과 편안함을 주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관계에서 후회나 미련은 정말 불필요한 것이란 점이다. 불필요한만큼 더 찾게 되는 것도 그것이다. '나'와 '너' 모두 최선을 다한 관계란 것이 확실하다. 최선을 다했으니 빛바랜 종이가 되었는데, 거기에 무언가 노력을 더 쏟는다고 해서 새로운 종이가 되어 글자를 써내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의 종이는 빛이 바랬다. 거기에 다정도 사랑도 미움도 질투도 써내려 간 우리는 최선이었다.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 잠깐 쉬고 '나'랑 시간을 더 보내는 것도 방법이다. '너'는 통제하기 힘든 것이고, '나'는 당장 함께 있으니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내 험담을 하고 다니던 친구를 용서한 것도 이제 겨우 1년이 되었다. 사람을 용서하고 흘려보내는 일은 그만큼 천천히 해도 된다. 부담 갖지 말고, 우선 매일 함께 하는 당신 먼저 챙기자. 나는 당신을 늘 응원한다. 당신이 꼭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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