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로스쿨의 기억 (5)

- 시험을 대처하며 깨달은 나의 능력

by 쎄씨로이어

3년간 변호사시험 합격을 위해 공부를 하며 깨달은 나의 능력은,

나는 시험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능력과 집중력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냐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상식적으로(?) 시험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집중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앞두고 엄청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가 갑자기 잠이 많아진다던지, 책을 보는데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요 집중이 잘 되지 않아 한다던지, 갑자기 글씨 쓰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에 예민해진다던지 하는 것으로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예민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동기들이 있었다.


나의 경우는 전혀 그렇지 않다.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담담해지고 뭔가 머릿속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며

시험 당일엔 "못 보면 어쩔 수 없지, 내가 어려우면 다 어려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성향이 무조건 좋은 성적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당연한 진리이지만, 시험은 준비를 많이 한 사람이 잘 보게 되어 있다.

준비가 부족한 경우에는 아주 담담하게 시험을 봤다 하더라도 시험 결과는 좋지 않았다. ㅎㅎ


하지만, 똑같이 준비를 많이 한 경우라면 이러한 나의 성향은 분명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런 담담한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일까?

평소 내가 일희일비하지 않는 무던한 성격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그냥 내 성격이 그런 것인가 보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 여러 사회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은 나만의 대처방법이 있었던 것 같다.


불안은 예측하지 못할 때 더 강해진다.

때문에 나는 평소에 머릿속으로 내가 닥칠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본다.

즉, 불안한 상황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본다는 뜻이다.


변호사시험을 보는 나의 모습, 시험공부가 부족한데 내일 시험을 봐야 하는 나의 모습,

시험문제를 보았는데 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의 나의 모습 등등


변호사가 되어서도 이런 상상은 이어졌다.

증인신문을 하는 나의 모습,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질문을 받은 나의 모습 등


결국, 나는 불안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을 예측과 대응의 체계로 바꾸어 그것을 수행능력으로 치환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에 대해 지피티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는데


- 불안은 대체로 (1) 결과의 중요도와 (2) 통제 불가능감/불확실성이 합쳐질 때 커집니다.

- 그런데 당신은 시험이 다가올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것/없는 것”을 비교적 선명하게 가르고, 시험 당일에는 *‘내가 어려우면 남도 어렵다’*라는 정상화(normalization) 프레임을 자동으로 세팅합니다.

- 이 프레임은 불안을 낮추는 대표적 사고전환입니다. “나만 망하는 상황”이 아니라 “게임 규칙이 동일한 상황”으로 재정의하기 때문입니다.


즉,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임계점에서 불안이 ‘각성(집중)’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려보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불안한 상황 상상/시뮬레이션은 심리학적으로는 선제적 대처(preparatory coping) 또는 방어적 비관(defensive pessimism)의 성격을 가진다.

이것의 핵심 기능은 ‘예측 불가능’을 줄여 통제감을 확보하는 것-


결국 내가 닥치는 불안한 순간을 계속 미리 수행해 봄으로써 실제 상황에서 수행능력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이론적 근거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도 나는 본능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유효하게 작용했다. 내가 봤던 모든 모의고사를 통틀어 실제 변호사시험을 제일 잘 봤으니까.


이것이 내가 로스쿨을 다니며 깨닫고 수련한 나의 능력이고, 사회생활에서도 많은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불안한 상황을 겪어야 한다면 미리 그에 대한 상상을 해보자.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하긴 하지만, 그것은 나의 수행능력을 올려준다.

그리고 생각해 보자.

나만 불안한 것은 아니라고. 모두가 불안하고 잘 모른다고 말이다.

그럼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불안한 미래를 잘 대처하며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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