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 서른하고 둘

말머리

by 글멍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이 세상 모든 책과 잡지, 신문, 문제집의 집합으로 인해 종이 꼬신내가 나는데 특히 이 꼬신내가 나를 유독 긴장하게 만들어 아랫배를 살살 아프게 할 정도이다.


좋아함의 크기가 상당하나 내가 좋아하는 건 단지'책'이라는 사물일 뿐, 평소 잡념이 가득하고 천성이 산만함 탓인지 알게 모르게 난독증이 있는 건지 책장이 5장 넘어가면 딱 마지노선이다.


그럼에도 서점 나들이는 여전히 나의 힐링 리스트 중에서도 베스트 순위 안으로 꼽히며, 그곳에 가면 코너 주변을 어슬렁 서성이 다가 괜히 책 끄트머리 한번 살짝 만져보고, 책이 뿜어내는 그들만의 고유의 향기를 느끼다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내가 유일하게 하루 동안 정독, 완독 한 책이 한 권 있는데 바로 미국의 한 청소년이 마약 하는 과정을 일기로 기록한 책이다.


소녀의 느낌을 간결하게 표현한 터라 문장의 구조가 단조롭고, 꼭 마약과 관련되지 않은 에피소드 또한 매우 흥미로웠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책 장을 넘길 때마다 심장이 이따금씩 아린 게 남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도 들었던 것 같다.


유년기 시절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터라 책의 제목과 저자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의 집중하여 독서를 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 순간 독서 성취감이 들었고, 나름 감명 깊었다고 스스로 자만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소녀가 남긴 발자취처럼 나 또한 언젠가는 나만의 추억 에세이를 그려내 보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읽기 쉬운 글을 써 보고 싶었다. 단지 그뿐 이다.


요즘 참으로 다양하기도 한 신조어의 홍수 속에서 '불멍'과 '물멍'이란 단어가 심심치 않게 들리곤 하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불 또는 물 그것들을 바라보고 멍하게 있는 상태를 뜻한다. 내 처지에 어울리는 알맞춤 신조어가 아닌가.


나에게만 애틋하고 소중한 추억이기에 큰 감동과 교훈은 없지만, 현대사회의 고질병인 잡념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기를, 글을 멍하게 바라볼 순 없겠지만 '글멍' 하듯이, 마치 오랜 시간이 흘러 케케묵은 박스의 먼지를 살살 털어내고 속박되어 있던 일기장을 펼쳐 옛 추억을 회상하듯이, 그렇게 맘 편히 읽어 내려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난 오늘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추억을 끄적여 본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