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듯이 말야.
"어쩜 그렇게 엄마 마음을 잘 아노?"
"당연히 다 알죠~ 어떤 마음에서 그런 얘길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밖에 없고, 이해가 되는걸."
가벼운 갈등을 겪고 난 이후 다음날 함께 은행 가던 길목의 대화에서, 엄만 내 말을 듣고 다정하게 웃으며 한 마딜 했다.
"엄마 마음을 알아주듯이, 네 자신의 마음도 그렇게 알아주면 안 되나?"
나는 그 말을 듣고선 그게 잘 안 된다고 하며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나도 몰랐던,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이자 내가 가장 하지 못하고 있던 일을 나를 사랑하는 엄만 이미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질문이 아니었을까? 나를 진정으로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내가 알아주지 못하는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알아준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또 다시 '나는 왜 내 마음 하나 스스로 먼저 알아주지 못하는 걸까.'하고서 자책을 했다.
나는 가만히 놔두면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인지 너무 잘 안다. 세상 모든 관계는 이해관계로 얽혀있고, 나는 이기적이기에 타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면 타인을 쉽게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더 무거운 죄책이 나를 누르기 전에 누군가와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마다 나는 모든 걸 내 부족함 탓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고 나면, 어떻게든 내 입장의 스위치를 끄고 그 사람의 입장 속으로 어떻게든 발버둥치며 들어가 결국 이해하고야 만다. 단순히 네가 있고, 내가 있고. 충돌하는 건 어쩔 수 없고. 란 생각을 하는 것이 내겐 잘 되지 않는다. 나는 어떻게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욕심에 결국 충돌의 중앙에 있던 나의 책임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것이 미미하다 할지라도, 타인의 입장 속으로 100의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면 내 자신에게 줄 이해심은 더 이상 없기에 100의 자책만 남게 된다. 내가 이런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 했을 때, 우리 언니는 "너는 메타인지 위에다가 메타인지를 또 하는구나."하고 얘길하며, 보통은 그런 상황에서는 '나는 왜 이럴까, 죽고싶다.'보다는 '쟤는 왜 저럴까, 죽이고 싶다.'가 일반적인 거라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힘들어서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이기적인 내가 무섭다고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만, 나는 유독 더 이기적인 사람이라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없이 이기적일까봐 무섭다고.
횡단보도를 초록불에 건너다, 차에 골반뼈가 살짝 치여 가볍게 튕겨서 넘어진 적이 있다. 처음겪는 상황에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가다, 이대로 가는 게 맞나 싶어 뒤를 돌아봤다. 몸도 아프지도 않고, 가만히 서서 뒤돌아 바라보다가 창문도 내리지 않고 썬팅된 창문 안에 가만히 있는 모습에 기분이 조금 안 좋았다. '내가 가서 창문을 두드려야 하나?'하는 생각에 가려다가, 근데 심하게 치인 것도 아닌데 너무 유난 떠는 것 같고 저 사람도 운전 해볼만큼 해봤을텐데 창문도 안 내리고 목례만 하는 걸 보니 별 큰 문제가 아닌가보다 싶어서 재빨리 기분을 환기시키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횡단보도를 마저 건넜다.
독서모임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기도 했고, 내일 몸이 아파질 수도 있다는 말에 걱정이 되었다.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데, 아까 부딪혔던 골반뼈와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고 내일 되면 더 아파질까봐 두려워서 경찰에 신고를 해서 누군지만이라도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아무리 가볍게 부딪혔어도 그런 일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넘어가면 안 되는거라고, 그 사람도 그냥 갔으면 안 되는거라며 나의 대처는 아쉽지만 내 잘못은 없으니 자책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나는 그 순간에도 나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다며 실컷 자책을 했다. 나는 멍청이인가? 혹시 내 지능에 문제가 있는걸까? 그냥 걸어가서 창문 두드릴걸 하면서.
나중에 차주 분을 만나고 나서 내가 당황했듯, 그 사람도 당황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로 당황해서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하고 뒤늦게 사고(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현장을 각각 다른 시간에 찾아갔던 것이다. 그분은 눈물을 흘렸다. 상대방이 나쁜 사람이거나 내가 바보가 아니라, 상대방도 나도 처음 겪는 상황에 서로 당황해서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겨우 자책을 벗어던진 줄 알았다.
이야기가 잘 끝나고, 경찰서에서 마지막으로 사건 정리(신고 취소)를 해야 해서 갔는데 8시에 만나기로 한 경찰분이 8시 40분쯤에서야 자리에 나타났고 성인인데 제대로 된 의사표시(아프다)도 안 하고 간 거면 내가 잘못한거라고 하며 바쁜 경찰들이 시간 낭비를 하게 피해를 줬다는 식으로 나를 혼냈다. 결국 마지막에 피해를 줘서 미안하다는 내용을 적고 마무리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의 성장을 이룬 상태라 약간 화가 났고, 내 감정을 조금은 믿어주기로 했다. 기분이 나빠서 대충 대답하고 글씨도 못알아보게 엄청 날려 적었다. 그러고서 몇 번이나 내가 처음에 했던 얘기를 자기 해석으로 인용하며 내 탓을 하길래 '참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제가 처음 여기 왔을 때, 그렇게 말 했던가요?"하고 조금은 세게 말하니, 그제야 내가 아닌 그 날 함께왔던 아버지의 얘길 넣으며 해명 느낌으로 말씀하시더라. 다 끝나고 마지막 예의로 대충이라도 인사를 하고서 계단을 내려오며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몸에 문제가 나중에라도 크게 생겼으면 몰라도, 아무 문제도 없으니." 내가 잘못한거라는 그 말이 너무나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렇다면, 내 몸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신고한 일이 잘 한게 되고, 큰 문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내가 신고한 일이 경찰에게 피해를 준 일이 되는건가? 사고의 결과에 따라, 내가 결과를 알기도 전에 먼저 취했어야 할 태도가 달랐어야 한다는 말은 그저 불평하고 싶은 화풀이 궤변이 아닌가? 이번 일과 더불어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자책을 하던 모든 일들은 자책할 필요조차 없는 일들이었음이 선명해졌다. 순간적으로 명석한 내 두뇌가 누군가의 말에 담긴 모순을 감지했을 때, 애써 외면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내가 느꼈던 모순점에 대해 충분히 내가 그들을 지적했어야 할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그 날은 그 말에 내가 이 세상의 방해꾼이 된 것처럼 자책하며 펑펑 울며 집으로 돌아갔다. 마침 친구와 통화하기로 해서 통화를 하는데,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건 아는데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나는 내가 너무 바보같고 멍청이 같고 이 세상의 가해자가 된 것 같다고, 나는 나잇값도 못하고 제대로 살아가지도 못할 것 같다며 불건강한 이야길 쏟아내버렸다. 친구는 이야기를 듣고 그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절대 내 탓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했다. 나는 친구에게 너의 소중한 시간을 이런 이야기로 뺏은 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고, 친구는 "내가 원해서 쓰는 시간에 대해 네가 책임 질 필요는 없어. 이런 시간을 나는 원했던 거야. 절대 피해 주었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대답했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을 보며 나를 정말로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내게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았다. 세상에 아군과 적군이란 건 없다고, 좋은 게 좋은거라고, 상처로 어두워지는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나는 그래도 사랑하면서 살거라고. 하던 그런 생각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귀한 사랑을 주고있는 대상인 나를 스스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상처받기 싫어서 방어적으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나를 정말 위하고 사랑해주는 신뢰의 대상들이 아닌 타인의 입장은 너무나 숱한 연습으로 자동적으로 그들이 이해가 될지언정 이제는 나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고 내 감정을 먼저 생각하자는 다짐을 한다.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있었구나. 민영아, 그래서 네가 알아주지 않는 네 마음을 너 대신 알아줄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네 주변에 붙여두신 건지도 몰라. 나는 네 마음 이해해."
악바리처럼 살겠다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을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마음을 매번 맑게 비우고 비울거다, 투명한 물처럼. 다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나 자신을 위해서 화가 날 때는 화가난다고, 누군가 내게 잘못된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 느껴진다고, 누군가의 말에서 모순을 발견한다면 내게는 그 말이 그렇게 들린다고, 당신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내 입장은 이렇고, 나는 그런 부분들이 힘들게 느껴진다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이제는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연습을 하자.
쓰면서 너무나 화가 나는 일들이 생각 났다.
나는 왜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누군가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던가.
나의 이해심은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구마구 펑펑 써야겠다. 그리 생각하니 기분이 꽤나 괜찮아졌다.
나는 바보치고는 인복이 꽤나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날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기에 아직 바보같은 모습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지금 내 곁에 남아있는 가까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가만 살펴보면, 날 떠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일 리가 없다. 나는 지금까지 내 인생에 후회되는 일들이 없었는데, 올해들어서 최초의 후회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다. 아예 내 인생에서 없었던 걸로 만들고 싶은 일과 만남이 있다. 결과론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성장한 꽤나 멋진 삶을 살고있는데도, 그런데도 후회가 될 정도면 이건 아마도 엄청난 후회인 것 같다. 에라이~~~~~~가 나오지만, 이것 또한 성장의 과정이겠지?
후 오늘은 너무 솔직한 내 민낯을 가감없이 썼다. 그래 나 이런 막 나가는 사람이다. 어쩔래 흥.
내일 되면 수치스러울 것 같은데 이 또한 성장의 과정이겠지! 원래 밑바닥을 보여야 더 자라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