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로의 이주와 이직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러나 너무 노쇠하기 전에
도시를 떠나 아름답고 한가로운 지방도시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것은 오래되었다.
서울의 복잡한 지옥철에 시달릴때마다, 퇴근시간 지하철2호선의 인산인해 속에 파묻힐 때마다 '아,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 무언가에 쫒기고 바쁘고 지친 저녁이면 모든 짐을 훌훌 털고 귀촌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바램을 하나씩 실행으로 옮기며 우리 가족은 정말 귀촌을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자리 잡은 곳은 제주도 서귀포시. 남편이 먼저 취업을 해서 1년 일했고, 1년 후 둘째가 서귀포로 이주, 전학을 했다. 나는 그 사이 서울서 하던 일을 지속하며 제주도를 오갔다. 남편이 내려간지 5년차에, 우리 가족은 수도권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제주도 서귀포로 완전히 거주지를 옮겼다. 내 나이 오십에.
서귀포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너무 아름답고 자연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빌딩사이에서 하늘을 보려고 굳이 고개를 올리지 않아도 여기선 모든 시야에 하늘이 펼쳐져있다. 처음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감탄한건 하늘이었다. 하늘이 어찌나 존재감이 있는지. 그리고도 존재감이 있는 자연현상은 많았다. 바람. 비. 습도. 바다. 꽃. 나무 등
남편이 먼저 내려와서 둘째와 생활하고 나는 한번씩 오갈 때 제주도로 내려오면 모든 근심 걱정이 잊혀졌다. 내가 얼마나 도시에서 기계음, 알수 없는 수많은 도시 소음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서귀포에 오면 알게되었다. 아, 이런게 진짜 고요함이구나. 하는 경험. 사계절 모두 꽃이 피고 푸르른 곳. 낮은 돌담길. 그 옆으로 흔하게 보이는 귤밭. 조금만 가면 어디든 만날 수 있는 바다. 어떤 날은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곳. 그렇게 자연과 발맞추며 생활해야 하는 곳. 그 사이에서도 어디서든 만날수 있는 꽃잔치. 밤이면 쏟아지는 별들. 거실 쇼파에서 어떤것에도(예를 들면 아파트 앞동) 걸리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보름달. 아, 여기서 살아야겠다. 내가 여기서 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서울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작년 초에 내려오게 되었다. 수도권에서의 일과 집을 정리하느라고 아직 분주하던 때에 나는 덜컥 서귀포에서 취직이 되었다. 이곳은 일자리가 많지 않을테니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매주 들어가던 구직사이트에서 적당한 일자리를 찾았고 합격이 된 것이다. 정말 일자리까지 갖추며 본격적인 지방도시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내려왔을때 나의 경력이 이미 23년차였다. 그 경력을 살려서 취업을 할수는 없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경력을 모두 살린다는 것은, 높은 임금의 자리일 것이고, 높은 임금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일이 힘들고 책임이 높고 골치 아프다는 것을 말한다. 그럴 자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새로운 도시로 내려와 살게되는 제2의 인생은 제대로 다운그레이드 하여 심플한 일, 심플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이제 일에서 좀 헤어나와 자연을 즐기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를 좀 더 위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새로 일하게 된 곳에서 23호봉인 나는 10호봉을 책정 받았다. 내가 하던 일과 같은 분야였지만 다른 시스템의 일이라 이전 경력을 반밖에 인정받지 못했다. 일도 내가 이전에 했던 것과 좀 달라서 난 딱 10호봉 정도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 급여도 물론 그만큼 깎였다.
첫 3개월은 얼떨떨했다.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말이 딱 맞았다.
아침 출근길에 펼쳐지는 이 관광지 뷰라니. 우측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한라산이 자리잡고 있다. 고개를 돌리면 아름다운 꽃밭이고 직장 점심시간엔 관광으로 다니던 천지연 폭포니, 자구리 바다니, 정방폭포니 하는 곳으로 산책할 수 있었다. 나의 사업 지역이 여행지였고, 여행때 다니던 그곳이 나의 삶터이자 일터였다. 직장도 마찬가지. 너무 낯선 지역의 낯선 사람들과 낯선 조직에 앉아있는 나의 모습에 헛웃음이 날지경. 여긴어디? 나는 누구?의 시간들이었다. 내가 선택했지만 내가 놓여있는 이 삶의 모습이 믿기지 않았다.
4개월에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히 컨디션이 안좋아졌다. 의욕이 없었고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아름답던 주변에 대한 감탄도 사라졌다. 너무 무료하고 심심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은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직장에 나의 몸을 가져다놓았다. 몸에 뭔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도 가보고 여러가지 원인을 찾아본 결과, "향수병"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곳은 너무 아름답지만 너무 외로웠다. 너무 평화롭지만 너무 심심했다. 직장에서 책임은 덜했지만 재미는 없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낯선 일이라 나는 어설펐다.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사람들의 공동체 안에 뭘하지 않아도 그저 "있는"것이 얼마나 나에게 큰 충족을 주는 알게 되었다. 가족 외에는 어느 누구와도 교감하거나 편하게 "있을" 수 없는 낯선 곳에서 나는 외로웠다. 남편이 출장을 가면 더 외로웠다. 희안하게 그 시간을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낄낄댈수도 없었다. 나는 혼자 술마시고 혼자 책읽고 혼자 영화보며 잘 놀던 사람이었는데,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혼자놀기"는 그렇지 않은 시간의 엄청난 "함께 놀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에 달했다고 생각하면 없는 휴가를 쪼개서 서울에 다녀왔다. 친구들을 만나고 내가 속했던 공동체에 "있다"가 엄마아빠 집에서 쉬고 나면 좀 나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언제까지 살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곳에서 살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그냥 뭔가를 결정하고 판단하지 말고 이 시간을 지나보내자 생각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7개월에 들어서니 외로움이라는 안개가 조금씩 걷혀지는 것 같았다. 여행지에 눌러앉은 것 같아 집에 가야할 거 같은 기분이 드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내가 일하는 직장도, 지역도, 시간도, 삶도 조금씩 현실감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얼떨떨함도 향수병도 걷히고 나의 삶을 바라보니, 이곳에서의 삶은 정말 많은 것이 다운그레이드 되었구나 싶다. 일은 단순해지고 연락하는 사람들도 급격히 줄었다. 늘 카톡과 확인해야할 메세지가 넘쳐나던 핸드폰은 한참 그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어도 될만큼 조용해졌다. 꼭 챙기던 보조배터리가 여기 온 이후로는 거의 쓸모없게 된 것이 그걸 증명한다. 머리가 복잡하여 터질것 같던 밤에 술을 마시며 이완시키던 버릇은 퇴근과 동시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심플한 머리로 바뀌었고 당연히 술도 줄었다. 해야할 일도 가야할 곳도 만나야할 사람도 없다. 평일은 출퇴근과 저녁 후 요가, 가족과의 저녁, 휴식으로 지나갔고 주말은 남편과 온전히 둘이 보냈다. 주말에는 주말대로 할일이 가득하던 것에 비하면 이곳에서의 주말은 심플하고 조용하고 길다. 하루에 세잔씩 마시던 커피는 이제 한잔만 마셔도 잠이 오지 않아 거의 안마시게 되었다.
삶을 다운그레이드 해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뭐든 생각하던 것과 실제 일상의 체감은 다른 법. 다운그레이드 된 삶은 심심하고 공허하다. 흥미진진함이 없다. 하지만 너무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렇다.
이제 10개월이 되었다. 제주로의 이주 10개월차에 큰 변화가 있다. 친한 친구가 제주, 우리 집 가까운 곳으로 이주했고 심지어 나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녀 역시 20년 경력이 훌쩍 넘는 커리어를 버리고 새롭게 1호봉으로 나의 일터에 취업했다. (이 곳은 이런 것이 가능하다. 자격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여 뒤늦게 자격을 갖춘 나이 있는 사람들이 취업할 기회가 있는것!) 가족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던 나의 인간관계 세포가 이제 직장에서도 의지할 곳을 찾게 된 것. 다시금 꽃이 눈에 들어오고 아름다운 자연 광경에 감탄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 그래. 여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지. 일도 이정도면 재미있고 의미도 있어. 하면서...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것은 채워지는 것보다 비워져서 가능한 것 같다.
그러나 그렇게 비워져있어 또 외롭고 허전하기도 한 것 아닐까.
꽉차고 넘치고 꾹꾹 눌러담아 힘들었던 도시생활에서 나는 아직도 비우고 비우는 중. 내가 이곳에 결국 적응하여 눌러앉게 될지, 다시 도시로 올라갈지는 한참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하여튼, 지금은 제주의 꽃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