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느낌
김포공항에서 제주공항까지 1시간. 공항 수속, 대기 시간 포함해도 3시간.
서울서 제주는 거리는 멀어도 걸리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멀지 않다. 오히려 전라, 경상도보다 더 가깝지!라고 여기에서 살기 전까지는 생각했었다. 그렇게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지 않음에도 제주공항 앞에서 바로 눈에 띄는 야자수가 주는 이국적인 느낌이란! 그래서 제주는 여행지로 더 적절한 것이 아닐까, 뭔가 떠나온 느낌. 멀리 온 느낌.
그런데 막상 이곳에 살아보니 걸리는 시간과 다르게 육지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섬에 산다는 것은 굉장한 단절의 느낌을 준다. 아, 그래서 여기가 유배지였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 원거리에 있어도 무슨 일이 있으면 여차하면 차로 언제든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연결의 느낌을 준다는 것을, 섬에 사니 알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 배우가 회식자리에서 한창 열애 중인 이영애와 전화하다가 보고싶다.. 면서 늦은 시간 택시로 강릉까지 달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 연결 말이다.
물론 지금 이 나이에 그런 연결보다는 대부분은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가볼 수 없다는 것,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데 바로 달려갈 수 없다는 것 등의 문제지만 말이다.
내가 한창 향수병으로 힘들어할 때 친구들은 "야, 당장 나와. 술 한잔 하자"며 되지도 않은 말을 해보지만 사실 그런 연결이 가능하지 않아 이곳은 더 단절의 느낌을 준다. 물론 이곳 제주로 여행 오는 친구들도 많았고, 의외로 이전보다 지인들을 이곳에서 더 자주, 더 진하게 만날 수 있었지만 그런 약속된 만남 외의 인생의 변수에 대응할 수 있게 연결되어 있다는 안정감이 없달까.
우리가 서울-부산 간이라면 주말에 대전쯤에서 만날텐데... 라는 친구의 말이 이곳 섬에 사는 내가 갖는 아쉬움이다. (막상 부산-서울 친구가 대전에서 만나는 일이 얼마나 되랴마는)
처음에 제주에 와서는 이곳이 너무 좋아서, 도대체 이곳에 살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육지로 다시 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일까가 궁금했다. 그중 한 사람이 '바다로 막혀있는 것이 답답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니 사방이 바다면 탁 트이고 좋지 왜 답답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단절감을 얘기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날씨어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도시의 날씨를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큰 아들이 있는 군부대인 인제군. 엄마 아빠가 있는 용인시. 나의 대부분의 지인들이 있는 서울시. 그리고 내가 있는 서귀포시. 가깝지만 날씨가 아주 다른 제주시.
섬이라는 단절감이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육지와 너무 다른 날씨이다. 한 시간 남짓 비행기를 타고 왔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나듯, 여긴 그렇게 날씨가 다르다. 육지에 눈이 펑펑 올 때 여긴 해가 쨍하고 여기는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서울은 날이 좋다고 한다. 서울이 35도의 무더위를 보일 때 여긴 29도 정도의 기온. 서울이 영하 15도를 가리킬 때 여긴 영하 3도 정도를 보인다. 그만큼 사람들과 같은 체감이 아니라 다른 체감을 한다는 건 뭔가 동떨어진 느낌이다. 친구들과 카톡을 하려고 카톡을 켰는데 카톡 배경화면에 갑자기 눈이 내리고 있다.?? 뭐지? 눈이 오나? 생각하면 서울은 눈이 펑펑. 엄청 많이 와. 하는데 완전 낯설다. 친구들의 인스타에 동시에 비슷하게 올라오는 어떤 풍경들에 나만 다르다. 아. 서울은 눈이 오는구나. 서울은 아직 춥구나. 서울은 미세먼지가 심하구나. 체감이 아닌 정보로 알게 되는 여기와 다른 날씨가 그만큼 나는 다른 곳에 와있다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달까. "날씨가 너무 좋아, 굿모닝!!"이라고 인사했는데 알고 보면 서울은 미세먼지 가득.
나의 일상이 온통 잊고 싶은 일 투성이고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잠시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면, 그래서 나는 섬을 추천한다. 비행기를, 혹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순간, 모든 것이 다른 이곳의 공기에서 일상의 힘듦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하여 나 또한 남편이 이곳에 살고 서울에서 이곳을 오갈 때 제주에만 내려오면 근심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을 했었다. 그것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더 평화와 치유의 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을 생활터전으로 살다 보니 일상의 걱정도 근심도 모두 이곳에 있고 위로받고 싶은 친구들과 지인들은 육지에 있는데 이곳은 그곳과 단절된 섬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리하여 가끔씩(자주?) 나는 비행기를 탄다. 내가 필요한 딱 그 타이밍,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는 딱 그 시간에 맞출 수는 없어도 제주는 서울과 1시간 밖에 걸리지 않으니 말이다. 나는 고립되고 유배된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도시에서 생활하고 제주로 여행을 온다면, 우리는 제주에서 생활하고 도시로 충전을 간다. 남편은 이 생활을 이렇게 말한다. 심심한 천국에서 살면서 흥미진진한 도시를 그리워하며 살건지, 재밌는 지옥에서 살면서 평화로운 제주를 그리워할 건지. 사람이란 늘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기 마련이므로, 천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도시의 친구들이 그립고 도시의 친구들은 천국서 사는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