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취업하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며

by 유원선

나이 오십이 되면서 마치 스무 살 때처럼 진로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다시 들었다. 사회복지사인 나는 이쪽 분야에서 일한 지 20년이 넘었다. 경력은 늘어가고 책임은 무거워졌다. 이직을 하기에도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인생은 100세 시대로 나의 노년이 지금까지 일해온 시간보다 더 길 수도 있다고 한다. 경력은 늘었지만 실무는 느려지고 멀어졌고 책임을 지는 관리직을 낯선 조직에서 다시 한다는 것 역시 기회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일하던 조직에서 계속 버티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지만 동일한 조직에서 오래 있다 보면 이제는 고만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오십때즈음이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온 내 또래 동료들이 오십이 되어 오래 일한 조직을 떠나는 일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조직과 개인의 상황은 다 다르지만 우리 나이가 그런 사이클을 맞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만 많은 상태로 12년 일한 직장을 그만두었다. 퇴사와 동시에 앞의 글에서 얘기한 것처럼 제주로 이주를 하였다. 퇴사만 한 것이 아니라 제주로 이주까지 하면서 나에겐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제주에서 나의 경력을 살려서 경력직으로 취업하는 것. 또 하나는, 경력과 상관없이 어디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1호봉이든, 새로운 일이든, 복지 관련 일이든 조건 따지지 않고 취업하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관련 자격도 따고 조건도 갖추어 새롭게 시작하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1안보다는 2안이 오히려 현실 가능해 보였다. 1안은 자리도 별로 없고 자리가 있다 해도 낯선 지역에서 온 나를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았고 자신도 없었다.

지역에서 사회복지사는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많이 필요로 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실제로 그런 직종은 자리가 많았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이긴 하지만 아동 청소년 관련 재단에서만 주로 일하던 나에게는 거의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었고, 나의 자격증만 살리는 일이지 경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게 구직사이트를 드나들며 제주 구인시장의 분위기를 보던 중에, 사회복지 7년 이상 경력 과장직. 4년짜리 프로젝트 담당자를 뽑는 종합사회복지관의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다.

사회복지관.

사회복지관이라고 하면 사회복지 쪽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일터이고, 서울에서 사회복지관은 복지사들이 나름 선호하는 일터이다. 자연히 들어가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사회복지관으로 경력을 쌓은 사람만 뽑고 나처럼 비복지관에서의 경력은 쳐주지도 않거니와 취업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마디로 복지 쪽에서 문턱이 높은 기관인 것.

주변에 복지관에서 일하는 후배들에게 여기 넣으면 어떨 것 같으냐. 고 물으니,

- 나이가 너무 많다: 복지관 과장 자리면 까마득한 후배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다. 관장직에 가까운 경력과 나이를 가진 나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 완전 실무직일 텐데 괜찮겠냐: 프로젝트 담당 과장이라면 새로운 사업을 한창 만들어야 하는 실무직일 텐데 괜찮겠냐. 내가 괜찮아도 조직에서 괜찮다고 생각하겠냐.

이러저러 딱히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른 대안도 없고 이곳의 분위기를 좀 더 익힌다는 마음으로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는 합격을 하였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얼떨떨했다. 됐다고?? 그렇게 구직에 오랜 시간을 들이거나 마음 졸이지 않고 덜컥 취업이 되었다.(운이 좋았다.)

복지관에 입사하고 보니 이곳은 서울의 복지관 현장과는 구인의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일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서귀포시는 일자리가 없는 곳이겠지만, 사람을 구하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이곳은 사회복지사가 아주 적은 곳이다. 그래서 서울처럼 복지관 경력을 가진 사람만 추려서 뽑아도 많은 사람 중에 골라야 하는 상황과 다르게 이곳은 평생교육원에서 딴 자격이라도 무조건 사회복지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면 다 뽑아준다. 우리 복지관 동료 중 우리 팀에서 일하는 나 외의 2명은 뒤늦게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사를 취득하여 복지현장에서는 처음일하는 1호봉이고. 프로젝트 계약직뿐 아니라 정규직 복지사들 중에도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를 나와서 사회복지 현장으로 취업한 코스를 밟은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에서 내가 아동청소년기관 사무국장으로 직원 채용을 할 때를 생각하면 구인을 올리면 보통 수백 개의 이력서가 들어온다. 그중 일단 대학 사회복지학과가 아닌 평생교육원에서 자격증만 취득한 사람은 다 걸러냈다. 그래도 백통이 넘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여기는 구인을 올리면 2명~4명 정도가 이력서를 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모두 면접을 보고 그중 한 명을 고르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대학에서 공부를 했든 아니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채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나 같은 경우가 나이가 많은 건 사실이나, (관장이 내 또래, 부장은 나보다 10년 젊음.) 자격을 갖추고 서울서 일도 했던 사람이 원서를 넣었으니 뽑아준 것. 나는 요양원 사회복지사로 일할 마음도 먹고 있었으니, 거기에 비하면 이곳은 나의 경력을 반은 살릴 수 있는 곳이니 1호봉이라도 하리라. 생각했던 마음에 비해 반은 살린 셈이다.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직장에 취업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대부분 자영업 쪽의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펜션이나 식당, 카페 등 여행객을 상대하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인구도 적고 그만큼 일자리도 적으니 월급을 받는 일자리가 당연히 적다. 같은 일자리라도 육지에 비해 급여가 적다. 그러다 보니 이주해서 몇 년 지내다가 자리잡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떠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취업을 했다가도 자주 떠나니 육지 사람을 잘 뽑지 않으려는 경향도 당연히 생기게 된다. 취업해서 일하면서도 저 사람은 육지사람, 육지 센터장. 이런 식으로 육지에서 온 사람과 여기 사람을 구분한다. 그 구분이 차별로 느껴지기보다는 그만큼의 차이로 느껴진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 문화, 태도 등이 그만큼 다른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 저 사람은 육지사람이라 그렇구나.라는 것이 어떤 이해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생경하게 느끼는 만큼 이들도 내가 낯설 것이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조심한다. 이곳에 대한, 이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평가가 기분 나쁘거나 잘난척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섣부르게 의견을 말하지도 나서지도 평가하지 않고. 섣부르게 친한척하거나 스며들려고 하지도 않고 말이다.

육지에서 섬으로 온 것만큼의 거리와 그 시간만큼 이 차이에 멀미 나지 않도록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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