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본 낯선 사람이 낯설지 않은 이유

근무 7주 차 공군 보급병의 일기

by 옆집 군대생

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다. 안타깝게도 숫자나 글자는 잘 외우지 못해서 역사, 도덕 등의 시험은 말아먹기 일쑤였지만 사람 얼굴 하나는 피곤할 정도로 잘 기억한다. 훈련소 화장실에서 스쳐 지나간 초등학교 친구를 알아본 것으로 나의 무의식 속 기억력은 충분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심지어 학교 친구도 아니고 학원 친구였다! ㅎㅎ..)


그래서 때로는 나 혼자만의 지인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상대방을 아는데 상대방은 나를 모르는 그런 사이 말이다. 어쩌면 상대방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로 먼저 다가갈 용기까지는 없는 딱 그 정도의 관계들이 생각보다 많다.



부대에 전입 온 지 2달 남짓 된 나에게 그런 관계가 하나 더 생겼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을 자꾸 샤워실에서 마주치는 것이다. 처음 나서는 자리에서 ‘내 친구 누구 닮았다~’는 소리를 꼭 듣곤 하는 그런 흔한 페이스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평소 샤워실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라곤 나의 선임 혹은 후임뿐이었기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는 다른 층의 샤워실이 공사를 하고 있을 때라 모르는 얼굴이 자주 보이곤 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꾸 샤워 시간이 겹치고 얼굴이 낯익은 그 사람. 아쉽게도 마주치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인사조차 걸지 못했고 샤워실 공사는 끝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나 보내나 했는데 그것보다는 조금 더 질긴 인연이었나 보더라. 그 사람을 다른 곳에서 만나는 날이 찾아왔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전역을 앞두고 있는 병사들의 전투복을 반납받는 업무를 하고 있다. 이 비행단에서 복무하는 모든 이들은 우리 사무실을 한 번쯤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21개월의 고된 복무를 마친 청년들은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우리 사무실을 찾아온다.


그날의 그 사람은 무더운 날씨 때문인지 사무실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인지 남들보다 조급한 눈빛을 띈 채 사무실로 들어왔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만난 것이 이유 없이 반가웠고 나는 고민 끝에 옅은 웃음을 띈 채 말을 걸어보았다.


“혹시.. 어디 고등학교 나오셨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만약 다른 고등학교 출신이었다면 중학교, 초등학교까지 물어볼 참이었다. 기왕 용기 낸 거 어떻게든 아는 척을 해야지. 다행히도 나의 질문은 거기에서 끝났다. 한 학년이 100명도 되지 않는 고등학교를 다녔던 지라 나의 희미한 기억이 더 빛을 발했다. 그분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내가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 오히려 선배가 먼저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고 그 말은 왜인지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적응력이 느린 나에게 이곳은 아직도 낯설기만 하다. 새롭게 찾아가는 건물이 낯설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 낯설다. 항상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사람들조차 가끔 낯설고 알 수 없는 벽을 느끼곤 한다. 끝이 정해져 있는 만남이다 보니 어느 순간 끝만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또 그러다 보니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있지 않음을 느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굴러 다니던 내가 먼저 다가간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다.


그렇게 낯설기만 한 곳에서 만난, 마냥 낯설지는 않았던 사람과의 인연은 그토록 기다렸던 정해진 끝 때문에 3일로 끝이 났다.


정말 웃긴 것은 그 3일 사이에 3번이나 만났다는 것이다. 전투복 반납 후에 우리 사무실로 전화해서 정신이 없었다며 다시 인사해주었고 다음 날에는 출장나간 곳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박스도 옮겼다. 생활관에 돌아와서는 나에게 박카스 1박스를 안겨주며 먼저 인사해주어 정말 고맙다고 다시 한번 얘기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사람의 따뜻함을 상기시켜주었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정말 짧았지만 군대에 들어오고 내가 여태껏 쌓았던 마음의 벽을 조금은 허물어주었다. 혹시나 이후에 다시 만난다면 너무 고마웠다고 덕분에 잠시나마 웃음 지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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