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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un 14. 2024

<인사이드 아웃 2> : 감정들의 경이로운 쇼타임

    <인사이드 아웃 2>를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정작 티켓을 예매하고 나서는 기대치가 조금 낮아졌습니다. 왜냐하면 <인사이드 아웃 2>의 연출은 전작의 감독인 피트 닥터가 아니라 켈시 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구팀의 감독이 교체되면 경기 스타일이 바뀌고, 교향악단의 지휘자가 바뀌면 악보의 해석이 달라지니까요. 더구나 피트 닥터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죠. <토이 스토리>, <토이 스토리 2>의 시나리오를 썼고, <토이 스토리 4>, <소울>, <몬스터 주식회사>, 그리고 <업>을 연출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켈시 만의 필모그래피는 초라할 정도죠.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런 경력들이 현재의 능력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이 될 수 없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관객들이 어떤 기대지평을 정하는데 작용을 하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송강호 배우의 필모그래피가 현재의 송강호 배우에 대한 가치를 보여주며,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봉준호 감독의 위상을 나타내는 거니까요.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게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면서 이내 스토리에 몰입되었습니다. 켈시 만 감독한테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인사이드 아웃 2>는 사춘기를 맞은 라일리의 머릿속에 전작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감정 외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의 낯선 감정들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갈등과 모험을 다이내믹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의 매력은 추상적인 감정을 의인화해서 서사를 만들고, 그 서사를 통해서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며, 또 주변과의 관계를 어떻게 확장시켜 나가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죠. 영화를 보고 나서 여운이 남는 건 주인공 라일리의 머릿속에 박제된 이야기로 머무는 게 아니라 현재의 내 아이와 조카, 혹은 이웃집 아이, 그리고 까마득히 지나가버리긴 했지만 오래 전의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소환되어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픽사의 놀라운 마케팅은 바로 잊어버리고 있었던 동심을 자극해서 황폐하고 삭막해진 어른들의 삶에 잠시나마 꿈을 현실처럼 보여주는 감정상품을 파는 거죠. 문제는 그게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고, 또 오래 기억 속에 저장돼 있다가 불쑥불쑥 나타난다는 겁니다. 기가 막힌 상술인 거죠.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인사이드 아웃>에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된 감정은 ‘슬픔’이죠. 오래 살았던 미네소타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왔지만 낡은 집과 아버지 사업의 부진으로 가족 간 불화가 발생하고, 라일리는 ‘슬픔’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죠. 혼자서라도 미네소타로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가출을 한 라일리는 미네소타로 돌아가기만 하면 자신을 괴롭히는 현재의 ‘슬픔’은 다 사라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죠. 거기다 ‘슬픔’은 참으로 집요합니다. 아이스하키 경기 중에 결승 샷을 놓친 결정적인 실수는 트라우마로 남고, 그걸 떠올리면 ‘슬픔’은 여지없이 고통으로 다가오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라일리가 그런 ‘슬픔’ 때문에 아파할 때, 엄마와 아빠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평범한 사실을 보석처럼 깨닫게 됩니다. 기쁨은 혼자 누리지만 슬픔은 언제나 함께 나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대로 슬픔을 함께 나누는 가족이 있기에 슬픔은 성장통이 되고, 에너지가 됩니다. 겯고 튼 감정들이 새로운 자아를 만들고,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거죠.

  그런 주된 캐릭터인 ‘슬픔’이 <인사이드 아웃 2>에서는 ‘불안’으로 바뀝니다. 불안은 철학적인 테제가 되기도 하죠.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이다.’거나 ‘불안은 삶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는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방식이다.’라고 말한 걸 보면 인간의 존재는 불안과 떼놓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합니다. 결국 불안은 없애기보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관건입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정경화 씨가 어릴 때, 주위에서 모두 자신보고 천재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왜 그렇게 불리는지 몰라 그 불안감을 떨쳐내려고 화장실에서까지 연습했다고 하죠. 연습으로 불안감을 잠재운 거겠죠.     

  라일리가 ‘불안’에 포로가 되어 일상의 평정심과 균형이 일시에 무너진 건 어떡하든지 아이스하키 코치한테 잘 보여 팀의 일원으로 선택받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스스로 강박하는 욕망에서 벗어나 아름답고 선한 자아를 회복했을 때,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성장하게 되죠. 그런 마음을 회복했기에 라일리가 아이스하키 팀원으로 선택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의 결과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안을 떨쳐낸 자유로운 존재는 성과주의를 초월하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게 하니까요. 라일리가 아이스하키 코치로부터 온 이메일을 확인하고, 환희의 눈빛을 띠는 건 이니세이션 스토리로서 방점을 찍은 기표라고 할 수 있죠.     



  둘째, <인사이드 아웃 2>의 스토리는 라일리의 내면적인 감정의 상태보다 그녀가 사춘기를 맞아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들과 맺는 관계로부터 야기되는 심리와 정서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액션과 동선이 전편보다는 훨씬  넓어졌지만 밀도는 조금 헐거운 느낌이 듭니다. 전편에 감동했던 저도 그 점이 아쉬웠지만 사춘기 소녀인 라일리가 겪는 시간과 공간은 필연이었기에 그 부분을 사상해 버리면 오히려 그게 더 부자연스럽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비교적 그 균형을 잘 맞춘 듯한 느낌.     



  셋째, ‘따분’과 ‘당황’의 캐릭터는 몇 씬 밖에 없지만 강렬한 극적인 페이소스를 주기에 충분합니다. ‘따분’이는 눈빛부터 모든 걸 귀찮아하고, 지루해합니다. 그저 소파에 누워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다가 느릿느릿하게 한마디 하는 게 전부죠. 그것도 시니컬하게. ‘당황’도 생김새부터 관객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코가 너무 커 입을 가렸고, 당황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후드 끈을 당겨 얼굴을 가리기 일쑤죠. 끈을 꼭 조여도 얼굴을 가리지 못하고 커다란 코만 툭 튀어나오는 모습이죠. 지루한 생활에 익숙한 이들이나 툭하면 당황해하는 습관성이 있는 사람들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거기다 꺼내고 또 꺼내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파우치’와 아주 작은 사소한 과거의 잘못을 마치 신비주의로 위장해 전력을 뻥튀기를 한 ‘바닥깔개(Rug)를 두른 괴물’도 극적인 재미를 더해줍니다. 살다 보면 사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깨닫게 하고, 즐거움도 주죠.           



  넷째, 엔딩 크레딧까지 감동이고, 전율이었습니다. 음악에 문외한이 저도 OST의 울림이 컸습니다. 처음에는 마치 <조스>에서 상어가 다가오는 공포와 불안감을 표현한 사운드처럼 공포와 불안감을 극대화한 사운드가 울려 퍼지더니 점차 가볍고 상쾌한 선율로 온몸을 휘감는가 싶었는데 금세 그것들이 뒤섞여 화산이 폭발하듯 웅장하게 이어지다가 차분해지는 사운드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음악적 소양도 없이 제멋대로 느낀, 그러나 영화의 스토리와 조응이 되는 그런 사운드였습니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들은 상큼한 보상을 받습니다. 쿠키영상이 있거든요. ‘바닥깔개(Rug)를 두른 괴물’의 고백이 있습니다. 거기다 켈시 만 감독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문장을 보게 됩니다.     

  “이 영화를 우리 아이들에게 바칩니다. 우린 너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동심을 잃어버린 관객에게 <인사이드 아웃 2>는 영화가 아니라 소음일 뿐입니다.       

  


  다섯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스토리 아티스트 명단의 이름이 열서너 명이나 되는 게 여전히 부러웠습니다. 거기다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의 이름도 제작진으로 올라가 있더군요. 감독이 바뀌었어도 전편의 유전자가 후편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겠죠. 그 또한 부러웠습니다.        

   

  사족 – 내 안에 중2병이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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