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이 시큰거리는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숱하게 많이 보아온 알콩달콩한 로맨스 코미디와 블록버스터의 영웅 서사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감각은 웬만한 스토리에는 자극이 오지 않죠. 감정을 느끼게 하고, 거기다 격한 감동까지 받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서너 명의 메인 작가와 수십 명의 서브 작가가 달려들어 작업을 해도 눈물샘을 터뜨리는 건 흔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놀라운 영화입니다. 아니 참 영리하게 만든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의 감동과 론 하워드 감독의 <아폴로13>의 경이로움,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에서 느꼈던 무한 우주에서의 공포감이 한 묶음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주 천체에서 루저에 가까운 인간과 괴짜 외계인의 찐한 우정과 팀플레이를 통해 절체절명의 문제를 해결하는 묵직한 감동과 함께 잔잔한 유쾌함까지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우주 천체에 대한 개관이나 과학적 이론을 몰라도 그들이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휴머니즘의 서사에 마음이 짠해지는 건 영화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죠.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고 느낀 점
첫째, 지구가 처한 최악의 절망적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목표와 그를 수행하기 위한 캐릭터의 언밸런스한 조합이 눈길을 끕니다. 자살 미션이나 마찬가지인 지구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도박으로 우주선에 탑승한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 박사는 고도의 훈련과정을 마친 우주비행사도 아니고, 사명감이 뛰어난 영웅적인 인물도 아닙니다. 루저에 가까운 과학 선생님에 지나지 않았죠. 거기다 12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타우 세티 탐사선의 탑승도 자의가 아니라 강제로 태워진 거였습니다. 우주선에서 깨어났을 때는 동료 우주비행사들은 이미 모두 사망한 상태였고, 그도 자신의 정체성은 말할 것도 없고, 목표가 뭔지 모를 정도였죠. 관객들도 이 같은 황당한 무개체적인 극적 전개에 잠시 혼란스럽습니다. 그레이스는 생존 본능과 함께 점차 그의 과학적 고지능의 능력이 깨어나고, 외계 생물체인 로키를 만나면서 극적인 흥미와 긴장이 고조됩니다. 그레이스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처음에는 방관자적이고, 현실 도피적이었지만 자기희생의 의지적인 인물로 변한다는데 있습니다. 발전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캐릭터는 죽은 인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레이스는 입체적이고, 살아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죠.
둘째, 이 영화의 매력은 지구의 과학자인 그레이스와 외계인 로키의 만남입니다. 점점 멸망해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타우 세티 행성으로 떠난 그레이스처럼 외계인 로키도 같은 목표가 있었기에 언어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이 둘의 조합은 극적 타당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과학이라는 공통의 메신저를 통해 상대의 상처를 알고, 그것을 보듬어주고 치유해 주는 과정과 연대감을 유머스럽고, 아름답게 형상화했습니다. 지극히 관습적인 인간의 시선에서 로키의 외관을 보면 그야말로 돌멩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또한 로키의 시선에서 인간을 보면 마찬가지겠죠. 서로 다른 이물체가 만나 경계의 벽을 허물고, 서로 지켜주겠다는 우정으로까지 다다른 건 공동의 목표와 유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던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에 윌슨이라고 이름을 붙여 친구처럼 지내다가 나중에 헤어질 때, 그 아쉬움과 안타까움보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는 훨씬 더 섬세하고 감동을 주는 깊이가 다릅니다. 그레이스와 로키의 관계는 과학을 생생한 장면으로 구현해서 우주의 호기심과 경이로움을 관객들에게 시전합니다. 그런 에너지는 당연히 그레이스와 로키의 인간적 유대와 우정에서 비롯된 거겠죠.
셋째, 스토리에 따라 변하는 화면의 색채와 인간적인 우주선에 대한 디테일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에바 스트라트(산드라 휠러)를 통해서 그레이스가 우주선에 타게 되는 과정을 플레시 백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어딘가 삭막한 느낌을 줍니다. 인류의 위기와 멸망의 칙칙한 기운이 생명력이 쑥 빠져나간 화면으로 펼쳐지고, 오히려 우주의 이미지는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수없이 많은 빛과 점들이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 안에서 인간과 외계인의 만남은 우주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혼자서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만 하는 아름다운 현실로 다가옵니다. 그레이스가 우주선 밖으로 나가 우주 유영을 하면서 자료를 채집할 때도, 빛의 아름다움이 시선을 즐겁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주선의 안의 구도도 조금은 산만스럽지만 오히려 그게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빛과 색채에 대한 대비는 캐릭터한테서도 나타납니다. 극한 상황에 놓인 지구의 현실과 조금은 맹맹하고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그레이스도 그렇고 이미 <추락의 해부>에서 에바 스트라트가 보여준 차가운 표정과 인간적 고뇌를 담아낸 이중적 표정 또한 시선을 끕니다.
넷째, 귀를 즐겁게 하는 사운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Sunday Morning Coming Down’, 산드라 휠러가 마이크를 잡고 직접 부르는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 스콜피언스의 ‘Wind of Change’, 그리고 비틀즈의 ‘Two of Us’도 화면과 딱 맞아떨어집니다. 사운드도 스토리를 엮는 요소라는 걸 다시 깨닫게 됩니다.
사족 – 라이언 고슬링의 연기는 거의 팔색조 수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