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역사는 애사(哀史)입니다. 권력욕에 쓰러진 그의 역사적 여정 자체가 극적인 페이소스를 지니죠. 조선의 역사에서 왕위 찬탈에 대한 음모, 세자의 복위와 좌절, 혈투, 사육신의 죽음, 정치적 승자와 패자로 점철되는 수양대군의 권력 암투만큼 명징한 사건도 드뭅니다. 수양대군은 권력을 탐하는 화신으로, 쫓겨난 단종은 언제나 측은지심으로 시선을 받기 마련이죠.
<왕과 사는 남자>의 카메라 앵글은 정치적 사건의 연대기적 서사보다 유배지에서 단종을 대하는 서민들의 표정에 맞춰집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엄흥도(유해진)죠.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하는 건 궁중의 정치적 세력에 대한 풍향계를 암시하며, 동시에 민초로서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는 생존 의지를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되어 눈물샘이 터지는 건 극적인 사건의 폭발력 때문도 아니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신파적 스토리 때문도 아닙니다. 그 힘은 엄흥도의 표정에서 비롯합니다. 그 표정이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관객을 몰입하게 만들죠. 표정 하나에 스토리의 긴밀한 통일성과 감동의 확장성이 이루어지는 매력적인 서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난 표정에 대한 느낌
첫째, 마을 사람들과 고라니 사냥을 나선 촌장의 표정과 한양의 유배객을 유치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태도는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날 것의 냄새를 생생하게 풍깁니다. 역사의 원동력은 이데올로기보다 먹고사는 거죠.
둘째, 호구지책의 구세주이고, 동아줄이라고 여겼던 게 화근덩어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의 촌장 표정과 행동의 표변은 인지상정이고, 보통 사람의 일상이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실제적인 욕망입니다. 그 욕망을 표정에 고스란히 담아내 관객에게 전달합니다.
셋째, 단종에 대해 기대가 무너지면서 원망으로 바라보던 촌장의 표정이 신분과 계급의 경계를 서로 넘나들며 소통과 공감을 이루게 되면서 휴머니즘을 자아내는 표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넷째, 촌장의 아들 태산이 단종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감영에서 곤장을 맞을 때, 권력자인 한명회에게 매달려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엄흥도의 표정은 핏줄에 대한 무한한 애착이고, 힘없는 자의 장엄한 슬픔입니다. 아비의 표정은 플롯이나 논리로 감득되는 게 아니라 표정으로 설득이 됩니다.
다섯째, 촌장이 가족과 마을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단종을 매몰차게 몰아붙이는 표정은 역동적이고, 다의적인 감정을 담아내 관객의 공감과 서글픔을 동시에 끌어냅니다. 사실 극 중에서 연기자들이 눈물범벅으로 연기를 하는 거야말로 아마추어적인 발상이죠. 눈물은 연기자가 흘리는 게 아니라 관객의 몫이니까요.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에서 눈물의 연기가 넘치는데 그게 과장이라기보다 과잉된 슬픔으로 교묘하게 당대 현실에 대한 동정과 분노로 치환하는 효과를 낸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기자들이 이렇게 떼로 엉엉 우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지 싶었을 정도인데도 신파란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묘하죠.
여섯째, 촌장이 단종의 목에 건 삼줄을 문밖에서 끌어당겨 사약 대신에 죽음으로 이끄는 표정은 관객들과 감정선을 연결해서 이끌어온 자기 연민의 절정이고, 더 나아가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는 양극단이 아니라 그냥 연속체일 뿐이라는 사유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큰 거겠죠.
사족 – 오래 기억될 것 같은 대사
단종 : 더 이상 나로 인해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촌장 :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