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신춘문예 단편소설 여섯 편 일별

by 노란하마

올해도 변함없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을 읽고, 당선작 여섯 편의 느낌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숙제인 셈이죠. 당선자들에 대한 시상식도 끝났고, 당선자들의 꿈같은 기쁨도 풍선 바람 빠지듯 조금은 줄어들었겠죠. 기쁨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좋은 작품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몰려오리라 봅니다. 고민하고, 숙고하는 시간만큼 언어도 야무지게 빚게 될 터이니 언어적 자위행위에 그치지 마시고, 부디 많이 괴로워하시길 빕니다.


단편소설 당선작 여섯 편

조선일보 <떨어지며 나는 소리> 김선준

동아일보 <루빅스 큐브> 김근희

서울신문 <언어의 고고학> 김세정

한국일보 <호버링> 황예솔

경향신문 <라이브> 이정원

서울신문 <언어의 고고학> 김세정



조선일보 <떨어지며 나는 소리> 김선준

몇 번 반복해서 읽을 때, ‘떨어지며 나는 소리’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떨어지며 나는 소리’는 단순히 순음(脣音)의 조음 방식이 아니라 사막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움켜쥐려는 의지이고, 세상을 향한 삶의 뜨거운 열망이기도 합니다. 화자의 그런 의지가 감정 과잉으로서가 아니라 조금은 냉정할 정도로 맹맹한 어조로 전달합니다. 무엽이 누이의 상태를 1인칭 관찰자 시점과 종결어미 ‘ㅂ니다’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여 내면의 심리를 감춘 채 정중하게 사실적으로 전달합니다. 3인칭 관찰자 시점도 병용해서 진행하지만 이것도 서술자의 감정은 극히 절제되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거기다 상징적인 행동에 화자의 심리가 함의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간파하지 않으면 <떨어지며 나는 소리>는 장애인 가족의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협화음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종이를 찢는 소리에 집착하는’ 누나와 ‘종이를 찢어 헌금함에 넣’은 나의 행위가 던지는 메시지는 날카로우며, 시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소부재한 신은 부재한 신보다 못했다.’는 부조리한 아이러니가 이해됩니다.


동아일보 <루빅스 큐브> 김근희

<루빅스 큐브>는 인물 간의 대조와 대비로 인한 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회화의 한 수법인 콘트라스트를 보는 듯합니다. 보증금 5백에 3십만 원의 월세방에 살면서 현재 어머니 수술비 문제로 곤경에 빠져 있는 주인공인 ‘나’(김현)와 도우미가 있고, ‘로마시대의 난파선에서 얻은 청자, 마르크스 손가락 같은 것’으로 채워진 호화주택에 사는 치록의 상황이 서로 대비되면서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건 단순히 빈부로 인한 계층 간의 갈등이 아닙니다. 더구나 주인공이 겪고 있는 현재의 어려움을 과거에 함께 추억을 쌓은 인물의 관계로 푸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신파가 되겠죠. 이 작품의 능청스러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문제해결의 초점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장황하게 현재 상황만을 나열합니다. 그 장황한 현재 상황은 루빅스 큐빅의 색깔일 수도 있고, 제각각 살아가는 수많은 인생으로 환원될 수도 있겠죠. 어느 순간 주인공 김현의 어려움이 독자의 경험으로 감득되기도 할 테죠. 그게 <루빅스 큐브>의 매력입니다.


한국일보 <호버링> 황예솔

아마 심사위원들이 한 페이지를 읽고 <호버링>을 당선작으로 결정해버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첫 장면부터 매우 강렬하게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인 어린 시절 ‘나(김초림)’는 공원에서 무능력한 아버지가 담배 한 갑을 필 때,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자신도 루저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거기서 헤어나지 못할 것임을 직감합니다. 그게 막연한 심정이 아니라 아코디언 소리와 사람들 소리,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이 빚어내는 느낌이 모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식에 이르게 되는데 부적응자 혹은 패배주의자로 미리 낙인을 찍어버리게 되죠. 소리와 장면과 인식이 어우러지는 묘사도 가히 압권입니다. 주인공의 패배주의는 대학생이 되어서 맺는 인간관계나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도피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죠. ‘초림’이 택배 센터에서 대학 시절 드론 동아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함지’를 만나면서 패배주의자인 도망자가 아닌 새로운 좌표를 향한 호버링, 즉 정지비행으로 자기 모색을 하게 됩니다. 호버링은 고민과 갈등, 자기 혁신과 변화로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짓의 매력적인 상징입니다.


경향신문 <라이브> 이정원

<라이브>를 읽고 심사위원들은 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더불어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이 궁금했고, 어쩌면 굵은 선만 보느라 섬세한 손금은 간과해 버린 손금쟁이의 실수처럼 은근한 개성이 있는 매력적인 작품을 애초부터 놓쳐버린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라이브> 느낌은 그랬습니다. 매력적인 문체도 아니고,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개성적인 인물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여진’이 죽고 나서, 애인이었던 ‘그’의 생활공간이 응급구조원에서 무덤지기로 바뀌며, 거기서 일상의 삶이 펼쳐지는 소설적 배경이 어떤 극적인 효과를 내거나 감칠맛 나는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일상의 모습과 사람들의 동선을 담아냈기에 거기에 ‘라이브’란 제목이 안성맞춤이란 덴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카메라로 찍듯이 맹맹하게 사소한 것까지 친절하게 보여주는 배려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면 그게 일상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오며, 사람들에게 적어도 인식의 갱신이나 철학적인 질문을 하는 계기가 제공돼야 합니다. 다시 읽어보아도 파편적으로 늘어놓은 대사나 장면 묘사는 여전히 맹맹합니다. 심사위원들 말마따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볼 수밖에 없죠.


서울신문 <언어의 고고학> 김세정

<언어의 고고학>을 읽는 내내 행복했고, 말의 은총이 후광으로 쏟아지는 작가에 대해 질투심이 일었습니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유용성과 편의성에 따른 기호일 뿐 그게 모든 세계와 사물의 실재를 나타내는 건 아닙니다. 연속적인 세계를 불연속으로 끊어서 표현한 것 자체가 이미 한계일 수밖에 없죠. 그럴진대 인간관계나 정신적 측면에 대한 기표(記表)는 자의성에 따른 것이라 기의(記意)는 천차만별로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언어의 고고학>의 매력은 ‘아오리스트’와 ‘빛’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동작인 ‘한 번 일어났음’이라는 단순·완결적 의미만을 담고 시점이나 진행성의 여부는 밝히지 않는 점에 포착해 모든 인간사가 아오리스트적인 느낌과 사고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며, 그건 인류의 정신사적 문화를 낳는 에너지가 되기도 하죠. 작가는 개별언어의 문법적 특성을 시간과 치밀하게 관계 지어 실존적 존재로서 삶의 의미를 드러냅니다. ‘빛’ 또한 명멸의 물리적 현상으로 정의하지만 그게 현재 완료형으로 마무리된 게 아니라 영혼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음으로 내일 혹은 미래로 환원될 수 있기에 상처받은 인생은 위로받고, 희망도 품게 됩니다. <언어의 고고학>은 화석이 된 과거의 기록을 고찰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의 문명까지 거기다 개인사 혹은 집단의 문화까지 포섭하는 지적인 천착으로 읽는 독자를 즐겁게 합니다.


문화일보 <가챠, 가챠> 박재연

가챠를 하는 ‘현’과 가챠하는 현을 지켜보는 화자인 ‘나’. 가챠를 하는 건 원하는 게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하는 행위이고, 있는 사실 자체만을 중시하는 사람은 가챠에 거리를 두게 됩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 이루어지며 어느 순간에는 믿는 게 삶의 희망이고, 에너지가 되기도 하죠. ‘나’와 ‘현’은 대조되는 삶의 목표를 두고 사는 캐릭터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나’ 또한 그 가챠 게임에 들어가고 말죠. 누구나 로또 당첨이 되기를 바라며, 또 믿기도 하지만 당첨의 현실은 언제나 극소수의 당선된 자만의 행운이며, 축복입니다. 로또를 사는 순간 당선의 판타지를 꿈꾸지만 현실은 낙첨을 확인하는 거로 끝나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 게임은 다시 영원히 반복 순환합니다. 그게 우리의 인생이고,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죠. 이루어지기를 꿈꾸는 걸 비난할 수 없습니다. 사는 게 어려운 시대일수록 더욱더 그렇죠. 하지만 있는 사실은 간과한 채 있다고만 믿는 건 삶을 무중력에 빠뜨리기도 하고, 신기루 속에서 헤매게 만들기도 합니다. 3천 원 벌기가 힘든 현실을 깨닫는 자만이 희망의 진정한 가치도 압니다. <가챠, 가챠>는 그 점을 일상생활에서 생생하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사족 – 해마다 응모작은 늘어나지만 당선작의 밀도는 그에 부합하지 않는 게 아쉬울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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