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헤어진 사람들을 위한 위로

by 노란하마

※ 사랑에 78퍼센트 빠진 사람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나는 지금 78퍼센트 사랑에 빠져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를 보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한때, 사랑에 눈먼 적이 있습니다. 여고 시절, 본드를 흡입하다가 정학을 맞고, 내 친구랑 약혼식을 끝내고는 옛 남자를 만나 모텔을 간 여자인데도 그녀를 위해서는 간도 콩팥도 떼줄 수 있으니 그녀가 내 애인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성적 욕구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땐 정말 사랑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맹목입니다. 더구나 아직도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내가 사랑한 모든 여자 가운데 95%나 차지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성적 욕구에 지나지 않은 거라고 할 수 있습니까?

나는 사랑 때문에 사망한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는 걸 여전히 믿습니다. 사랑으로 영혼을 다친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거든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내가 착시를 가지고 산 게 아닌가 하는.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혹은 비극적인 파탄의 사랑을 신격화하거나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을 과장하는 허영심이거나 과거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이겠죠. 나한테도 그런 현타가 온 겁니다.


common.jpg


<만약에 우리>는 미완성에 대한 추억의 로맨스가 아닙니다. 참고, 견뎌내는 게 사랑인데 그걸 하지 않았다는 후회의 고백도 아닙니다. <만약에 우리>의 스토리가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얻는 건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의 이야기가 자신의 과거로 환치되기 때문입니다. 설령 그런 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쓰지 않은 자신의 자서전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만약에 우리>는 한때 사랑했지만 지금 각각 다른 현실을 만약이란 전제로 가정해서 불가능한 회복 가능의 경우의 수를 떠올려보는 자기 위안의 상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진 건 함께했음에도 사랑이 모든 걸 다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랑이 낙원인가 싶었는데 지옥문에 들어섰다는 걸 깨달았기에 출구는 그것밖에 없었던 거죠. 뜨거운 사랑이 있으면 고통도 달콤하다고 했지만 그건 시인의 넋두리였을 뿐 현실은 너무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을 전제로 과거로 돌아가 되새겨 보는 건 적어도 사랑을 사랑으로 기억해 내겠다는 의지이고, 그건 상처받은 과거에 대한 최고의 예의를 갖춰 찬사를 한 거라고 할 수 있죠. 전력투구하지 않은 사랑은 추억이 아니라 불쾌한 경험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선 순간부터 내내 머릿속에서 득시글거리는 건 ‘혹독한 어려운 현실을 견뎌내고 사랑을 끝끝내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력적이지 않다.’고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어쩌면 헤어진 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마인드가 작용한 묵시적인 결정이 아니었을까?


common (2).jpg


<만약에 우리>를 보고 인상적으로 느낀 점

첫째, 현재는 이야기는 흑백이고, 과거 회상은 컬러로 진행된다는 점입니다. 2008년 과거 20대의 청춘은 들뜨고, 화려한 만큼 그 궤적을 컬러로 재현하는 건 당연합니다. 시간이 흘러 2024년도의 현재에서의 캐릭터는 적어도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고, 달라졌기에 흑백을 통해 냉정하게 메시지를 깊이 있게 담아내서 감정을 사실적으로 전달합니다. 흑백이야말로 명암과 질감을 통해 인물의 과잉된 감정을 절제해서 현실을 명료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common (1).jpg


둘째, 은호와 정원이 집을 이사할 때, 정원이 아끼던 1인용 소파가 너무 커서 문 크기와 맞지 않아 안으로 들여놓지 못해 결국 버리고 마는 장면에 담긴 의미는 생각게 하는 바가 참 많습니다. 현실이 감당하지 못하는 장밋빛 꿈, 소중하지만 그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비참한 현실, 작은 즐거움과 위안조차 사치가 되는 현실, 그 현실은 지옥이나 다름없습니다.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요.


셋째, 반지하 단칸방에서 서로 다툰 뒤 정원이 집을 나가 지하철을 타고나서 막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 은호는 정원에게 다가서지도 못하고, 안으로 타지도 않고, 말 한마디조차 하지 못하고 뒤로 한 발 뒤로 물러난 건 앞으로 함께한다고 해도 더 망가지고 서로에게 상처만 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죠. 은호가 정원을 붙잡는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이기적인 집착이고, 함께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갈 뿐이라는 걸 알았던 거죠. 사랑은 강요하지 않고, 배려한다는 걸 끝내 보여줬습니다.


common (3).jpg


넷째, 추억이 상처가 아니라 에너지가 되면 이런 대사도 가능합니다.

“내가 너를 놓친 거야.”

“내가 너를 놓아준 거지. 우리는 서로 놓아준 거야.”

추억은 위로이며, 때로는 삶을 지탱해 주는 받침대가 되기도 합니다. 끝까지 함께하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죠. 다른 현실, 다른 사람과 있더라도 마음에 남아있는 한 사랑도 여전히 존재하는 겁니다. 그게 불완전한 거라도 살아가면서 되새겨 볼 수 있는 의미가 충분히 있죠. 그래서 추억이 많은 사람은 외롭지 않고, 영혼이 늘 가을처럼 풍성합니다.



사족 – 사랑은 뭐래도 시작보다 끝까지 지켜주는 겁니다. 시작은 개나 소나 다 하거든요.

작가의 이전글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혁명인가 가족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