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혁명인가 가족애인가

by 노란하마

이 땅에는 태초부터 폭력과 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혁명과 계급의 싸움에 대한 기록이죠. 그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단지 자본주의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안전하게 사는 게 낫다는 사람들은 혁명의 그림자 뒤에서 늙어가고 있을 뿐이죠. 21세기에 혁명이라니. 포르셰에 쭉쭉빵빵한 여자를 태우고 풀악셀을 밝고, 뷰가 멋진 펜트하우스에서 살아보는 게 꿈인데 혁명은 무슨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를. 먹고사는 게 최고의 목표이다 보니 피자와 맥주는 생명수이고, 유튜브 조회 수는 메시아로 둔갑합니다. 혁명은 화석이 된 지 이미 오래고, 잘 먹고 잘 싸는 게 시대정신이 된 건 당연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사유를 잃어버린 시대에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는데 그가 불쑥 벽창호처럼 혁명과 가족의 메시지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벽을 낮춰 대중에게 다가가려 했고, 여타의 블록버스터처럼 제작비도 엄청나게 쏟아부었다는 뉴스로 인해 거기에 따른 기대 지평이 있었는데 아니었습니다. PTA적인 색깔은 여전했습니다. 그의 필모그래프 영화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습니다. 배우들의 광기에 가까운 연기로 자본주의와 종교의 타락을 동시에 보여준 <데어 윌 비 블러드>, 물질이 범람하는 시대에 인간의 파괴적 욕망과 악마적인 심리를 몽환적으로 보여준 <인히어런트 바이스>와 굳이 다른 게 있다면 격렬하게 뜨거운 부성애를 보여줬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동양적 신파를 찍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아니었습니다. 부성애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일어났던 착시였던 거죠. 흔한 말로 칼국수를 잘하는 식당은 수제비도 잘한다는 말이 있는데 <원 배틀 애프터 어나터>에서도 폴 토마스 앤더슨의 체취가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그것도 격하게.




영화를 보고 느낀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캐릭터의 대립 구도가 명확하고, 뚜렷해서 헷갈릴 여지가 없습니다. 스토리를 이끌고 나가는 두 인물은 16년 전 반정부 혁명 단체 ‘프렌치 75’의 폭탄 전문가로 활동한 밥 퍼거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백인 우월주의자로서 불법 이민자 수용소를 관리하는 스티븐 J. 록조 대령(숀 펜)입니다. 밥 퍼거슨은 현역에서 은퇴하고 마약과 술에 찌든 삶을 살고 있지만 고등학생인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에게 쏟는 부성애는 아주 강한 인물입니다. 거기에 반해 록조 대령은 독특한 성적 취향과 극우적인 성향을 띤 인물이죠. 록조 대령이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프랜치 75’ 투사였던 퍼피디아와 성적 관계를 맺었던 과거를 세탁하는 과정에서 윌라(퍼피디아와 록조 대령의 관계에서 탄생)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로부터 밥과 록조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주인공들의 행동에 대한 동기와 갈등이 여기에 있는 겁니다. 목숨을 걸고 윌라를 보호하려는 밥과 윌라를 죽이려는 록조의 결투가 시작되고, 이 과정에서 윌라의 사부이면서 ‘닌자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불법 체류자를 은신시키고 탈출을 돕는 활동가인 세르지오 세인트 카를로스(베니치오 델 토로)가 등장하죠. 이 인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법 이민자를 돕는 활동과 함께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거의 아메바처럼 둔해져 퇴물이 된 밥을 혁명의 투사로 부활시키는 매개자의 역할을 합니다. 밥이 그를 ‘사부’라고 부르는 건 그런 이유에서죠.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자신의 과거에 에너지를 불어넣고, 밥은 서서히 ‘사부’의 동지가 되어갑니다. 이 과정이 매우 동적이고,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둘째,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의 성격은 괴팍하고, 행동은 도발적이므로 극적인 긴장감보다 기괴한 페이소스와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합니다. 불법이민자 구금소인 군 기지를 습격해 록조 대령을 성적으로 농락하는 퍼피디아와 흑인 여성이 성적 취향인 록조 대령은 마치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가 결합한 것 같았습니다. 특히 퍼피디아의 캐릭터는 모순투성이고, 거기다 이기적입니다. 혁명은 악과 싸우는 거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난 내가 중요해.” “난 모유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혁명을 할 거야.”라며 어린 딸을 두고 집을 나가버리기도 하죠. 고압전선 철탑에 폭파 장치를 작동시키고, 피신하는 게 우선이지만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밥한테 섹스하자고 조릅니다. 이 장면은 은행을 털고 나서 경찰에 쫓기면서 자신들의 기사가 난 신문을 보고 공원에서 섹스하는 <보이 앤 클라이드>를 오마주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섹스는 쾌감을 넘어서 아타락시아의 상태에까지 도달하는 것이겠죠. 어쨌든 밥이나 록조, 퍼피디아 모두 인성 결함을 지닌 문제적 인물입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구성은 헐렁하고 성깁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동력은 서사보다 인물들의 강렬한 액션입니다. 결함투성이의 문제적 인물들이 종잡을 수 없는 액션으로 스토리마저 출렁거리게 합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런 인물을 옹호하지도 동정하지도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보여줄 뿐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와 함께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겠죠.




셋째, 20년 전부터 준비했다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현재의 미국 현실을 뜨겁고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법이민자 축출 문제와 팩스 아메리카나의 부활, 거기다 보수를 넘어서 극우적인 세계관이 주류처럼 자리하고 있는 걸 보면 어떤 관객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예술성보다 고발성에 초점을 맞춰 받아들이게 됩니다. 카메라의 거친 움직임과 다큐멘터리적인 배경이 더욱 그런 느낌을 들게 하죠. 하지만 얼음 위에 올려놓은 불덩어리 같은 무모한 상황과 모순을 지닌 인물들, 거기다 광기를 내뿜는 눈빛과 표정은 극적인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극적 장치로 작동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무력감에 빠지든 적개심을 갖든 그건 카타르시스가 됐다는 반응입니다. 감독은 연출로 보여줬고, 관객은 이야기에 몰입된 거죠.




넷째,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뇌리에 강하게 남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퍼피디아가 임산부의 배를 드러내고 기관총을 난사하는 장면과 그의 딸인 윌라도 똑같은 총으로 쏘는 장면은 단 한 컷이지만 강렬합니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추격 장면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듀얼>이 주는 심리적 공포감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의 어지러운 감각의 전이가 느껴지면서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긴장감에 온몸이 쭈뼛할 정도였습니다.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멤버인 스미스가 달리는 도로에서 산탄총으로 차에 탄 록조를 향해 난사하고, 록조의 차는 도로를 벗어나 공중으로 날아가 전복되는 장면은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에서 알렉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가 자신에게 총을 겨누며 달려오는 마약 조직원 차 안에 수류탄을 던져 전복시키는 장면과 오버랩 됐습니다. 얼굴이 이지러진 채 전복된 차에서 생존한 록조가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천정에서 뿜어나오는 가스에 최후를 맞는 장면은 아우슈비치의 유태인 학살과 유사합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국가권력이라도 살인입니다.


사족 : 혁명은 가정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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