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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하마 Jan 14. 2022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매력

- 사랑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힐링 시네마


  주인공 팻(브레들리 쿠퍼)은 아내가 자신의 집 욕실에서 같은 학교의 역사 선생이랑 뜨겁게 몸을 섞는 걸 목격하고 뚜껑이 열려 폭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감정 기복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죠. 감정조절 장애를 겪는 조울증 환자가 된 것입니다. 8개월 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끝낸 뒤, 제때 맞춰 약을  복용하고, 정신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조건으로 퇴원하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팻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사람, 전처인 니키에 대한 생각뿐입니다. 하지만 이미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선고받은 터라 전전긍긍할 뿐이죠. 그때 친구인 로니의 집에 초대를 받았는데 거기서 4차원의 정신 구조를 가진 티파니(제니퍼 로렌스)를 만납니다.  

  티파니는 남편이 사고로 죽은 뒤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해 미친 듯이 방황하면서 회사의 모든 남자 직원들과 관계를 맺어 전부 동서지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야말로 슈퍼걸입니다. 동네에서는 이미 최고의 난잡한 여자로 공인받았고, 그녀 스스로도 한때 걸레였다고 말할 정도죠. 그런 티파니가 팻을 보고 첫눈에 반합니다. 팻이 복용하는 클로노핀과 트라조돈의 같은 신경안정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조울증 환자들만의 동지의식 같은 게 느껴졌던 거죠. 티파니가 팻을 가만두지 않습니다. 탱크처럼 저돌적으로 팻에게 들이댑니다. 첫 번째 만남에서 팻이 집까지 데려다 주자 티파니는 밑도 끝도 없이 섹스 한 번 하자고 제의합니다. 

  “부모님 집이지만 뒷마당 별채에 살기 때문에 들킬 염려는 없어요. 불 끄고 하면 되거든요.”

  “몇 살이에요?”

  “결혼할 만큼 먹었어요. 병원도 안 갔고요.”

  팻이 거부하자 티파니는 그를 포옹한 채 울음을 터뜨리다가 갑자기 따귀를 후려갈기고 돌아섭니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팻을 뒤로하고 티파니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사라지죠.  



  그 뒤 티파니는 팻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기 시작합니다. 팻의 조깅코스에 불쑥 나타나는가 하면 자신의 과거를 거침없이 쏟아내며 도발적인 행동으로 팻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죠. 팻은 그런 티파니가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조깅을 할 때마다 껌딱지처럼 달라붙는 티파니에게 팻은 일격을 가합니다. 

  “사이코네.”

  “정신병원에서 나온 사람이 누구더라.”

  “누구처럼 걸레는 아니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한 팻은 아차 싶어 뛰던 걸 멈추고)“미안해요.”

  “옛날에는 걸레였지만 이젠 아네요. 흘리고 다니는 버릇 못 고쳤지만 그게 나고, 난 내 자신을 사랑해요. 당신은 어때요?”

  정신과 의사는 팻에게 티파니와 친구로 지낼 것을 권유합니다. 타인에게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면 나중에 니키를 만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게 그 이유였죠. 오직 한 여자만 바라보는 팻과 남자를 그저 심심풀이 땅콩쯤으로 여기는 티파니의 쫓고 쫓기는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팻과 티파니는 동네 레스토랑에서 첫 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건포도 시리얼을 주문하는 팻과 녹차를 시키는 티파니. 팻이 건포도 시리얼을 시킨 건 티파니에게 지금 데이트하는 게 아니라는 사인을 주려는 거였죠. 

  티파니는 자신이 가끔 언니랑 함께 만나는 니키한테 팻의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호의를 베풉니다. 니키에게 접근할 수 없는 팻으로서는 고맙고, 혹할 수밖에요. 여전히 니키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자신의 사랑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편지뿐이었으니까요. 팻은 티파니에게 감정조절 장애가 생긴 건 바람을 폈던 니키 때문이었다고 털어놓습니다. 티파니도 남편의 죽음 이후로 극심한 혼란과 방황으로 모든 회사 직원들과 동침했고, 그때부터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말하죠. 그렇게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게 됩니다.  팻은 티파니의 과거에 관심이 생겨 즐겼던 상대 중에 여자도 있었냐고 은근히 묻죠. 티파니를 앞에 두고 말로 섹스를 즐겼던 것입니다. 그런 데이트 중에 팻은 티파니가 열 받아서 뚜껑이 열릴 만한 말을 하게 됩니다.  

  “당신과 나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 옳지 않죠. 본인이 어떤지 잘 알잖아요.”  

  자신만 미친 여자로 취급하는 팻의 태도에 화가 난 티파니는 니키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노라고 했던 약속을 뒤엎어버립니다. 거기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욕을 퍼부어대죠. 

  “너도 내 얘기 들으면서 좋아했잖아. 위선자. 비겁자. 나쁜 놈!”

  한바탕 소동이 일고 경찰까지 출동을 하게 되죠. 그 와중에 출동한 경찰은 티파니에게 은근슬쩍 작업을 걸기도 합니다. 

  “언제 술 한 잔 할까요?”    

  아, 수컷들이란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티파니는 팻에게 편지를 전해주겠다고 다시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그게 공짜는 아니었죠. 티파니가 출전하는 댄스 경연대회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게 조건이었습니다. 춤을 춰본 적이 없는 팻은 어이없었지만 니키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해줄 사람은 티파니뿐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제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팻은 티파니의 집에서 댄스를 연습하게 되고, 니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건네줍니다. 그리고 니키로부터 답장도 받게 됩니다. 니키와 다시 결합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갖게 되죠. 문제는 팻이 답장으로 받은 니키의 편지는 니키가 아니라 티파니가 썼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티파니가 댄스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팻을 속였던 거죠. 그런데 묘하게 팻은 티파니와 춤을 추면서 오랜만에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됩니다. 가끔 혼자 침대에 누워 티파니를 떠올리기도 하죠.  



  그런 와중에 미식축구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광팬이었던 팻의 아버지(로버트 드니로)는 스포츠 도박으로 레스토랑 오픈에 들어갈 돈까지 친구인 랜디에게 다 잃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 재산인 사업권까지 걸고 이중 게임을 하게 되죠. 팻은 아버지가 하려는 이중 게임에 반대하지만 팻의 아버지는 달라스 카우보이와 필라델피아 이글스 경기에서 이글스팀에 베팅을 하고, 동시에 팻과 티파니가 댄스 경연대회에서 10점 만점 가운데 평균 5점 이상을 획득해야 이긴다는 옵션으로 모든 재산을 걸게 됩니다. 거의 미친 아버지였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팻이 댄스 경연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었습니다. 곤경에 처한 티파니와 팻의 아버지는 결국 팻을 댄스 경연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게 되죠. 니키가 댄스 경연대회에 오겠다는 내용의 거짓 편지를 써서 팻에게 건네준 것이었습니다. 팻은 니키에게 댄스 경연대회가 자신이 강박장애 같은 정신질환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상적인 사람이 됐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여겨 열심히 연습을 하고, 출전까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달라스 카우보이와 필라델피아 이글스 경기가 열리고, 동시에 댄스 경연대회가 열리는 그 시간에 맞춰 티파니가 했던 거짓말이 무색하게 니키가 정말 댄스 경연대회 현장에 나타납니다. 거짓말이 사실이 돼버린 거죠. 

  댄스 경연이 시작되고, 미식축구 경기도 진행됩니다. 미식축구에서 팻의 아버지가 베팅했던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달라스 카우보이를 이겼지만 팻과 티파니의 댄스는 다른 팀들과 비교해 봤을 때 형편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여지없이 드러냈고, 점수의 결과도 형편없을 게 뻔했습니다. 하지만 가까스로 심사위원 평균 점수 5점을 받아 팻의 아버지가 베팅했던 돈을 다 따게 됩니다. 다른 팀들은 팻과 티파니의 낮은 점수에 동정의 시선을 보내지만 팻의 가족들은 거의 광분하게 되죠.  



  마지막 장면이 감동인데요, 팻이 그렇게 만나고자 했던 니키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할 때 이를 본 티파니는 상처를 받고 경연장을 뛰쳐나갑니다. 팻이 뒤늦게 티파니를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죠. 팻의 아버지는 팻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하면서 티파니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고 충고를 합니다. 밖으로 나온 팻은 도망치는 티파니를 뒤쫓아 가서 붙잡습니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 선 두 사람.

  “날 내버려 둬요!”

  “잠깐만요. 당신한테 줄 편지가 있어요.”

  “당신이 니키한테 직접 줘요.”

  “다신 안 만나줘도 되니까 일단 읽어봐요.”

  “엿 같네!”

  “읽어봐요.”

  (티파니가 편지를 읽는다.) “티파니, 그 편지 당신이 쓴 거 알아요. 미친 날 위해서.”

  (팻이 편지 내용을 말하는데) “미친 짓을 한 거죠. 고마워요.(사이를 두고) 사랑해요. 당신을 만나는 순간부터 사랑했는데 너무 늦게 깨달은 거죠. 미안해요. 내가 눈이 멀었었죠. 팻이.”  

  (팻이 자신을 쳐다보는 티파니에게) “일주일 전에 썼어요.”

  “일주일 전에?”

  “그래요.”

  “그럼 지금까지 날 속인 거잖아요.”

  “로맨틱하게 말하려 했죠.”

  “날 사랑해요?”

  “그래요.”

  “알았어요.”

  팻과 티파니의 포옹과 키스가 라스트 씬입니다. 팻의 아버지는 레스토랑을 열 수 있게 됐고, 팻과 티파니는 연인이 되는 해피엔딩인 거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만나서 부딪치면서 사랑하고, 치유하며, 행복을 찾아가는 힐링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이 재미와 감동을 주는 가장 큰 요인은 인물의 캐릭터라이즈(charaterise)가 멋지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팻은 스티브 원더의 ‘My Cherie Amour’가 들리기만 하면 발작을 합니다. 자신의 결혼식 때 웨딩 뮤직이었던 그 노래를 틀어놓고 아내인 니키와 역사 선생이 목욕탕에서 뜨거운 물놀이를 하고 있었으니까요.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서도 환자대기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왔을 때 병원을 뒤엎어버리죠. 환청으로 그 노래가 들리자 착각해서 어머니(재키 위버)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요. 조깅할 때는 후드티 위에 까만 쓰레기봉투를 덧껴입고 뛰는 것도 특이합니다. 거기다 간호사가 볼 때는 신경안정제 약을 입에 넣었지만 그걸 다시 툭 내뱉는 행동도 눈길을 끕니다. 감정조절 장애의 끝판왕이란 걸 보여준 장면은 새벽 4시에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읽고 나서 결말이 비극적으로 끝났다고 책을 창밖으로 집어던지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침실로 뛰어들어 작가에게 욕을 퍼부으며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사과하라는 아버지에게 팻은 쿨하게 정리하죠. 

  “헤밍웨이를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그 인간 잘못이니까!” 

  아버지도 한 마디 합니다. 

  “헤밍웨이한테 사과 전화하라고 해!”

  거기다 어떤 날에는 새벽 3시에 자신의 결혼식 비디오테이프가 없어졌다고 난리를 피웁니다. 온 동네가 난리가 나고, 경찰까지 출동하게 되죠. 그런 소동의 와중에 옆집의 학생은 정신병자를 취재하는 게 학교 과제라면서 팻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질문을 하기도 하죠. 

  니키에게 쓴 편지를 가지고 티파니 집에 갔을 때 티파니와 데이트를 하려고 찾아온 남자한테 건네는 말에서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저 즐기려는 여자는 많지만 티파니는 날개 꺾인 새처럼 아프고 슬퍼서 방황했던 거예요. 당신이 이러면 덧난다고요. 똑똑하고 섬세한 여자니까. 길거리 여자 취급하지 말아요.”

  티파니가 문 뒤에서 이 말을 듣게 되는데 팻한테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없게 되죠. 비록 분노조절 장애를 겪고 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팻. 물론 현실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되겠지만 영화 속에서는 최고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됩니다. 관객을 잡아끄는 캐릭터의 소구력이 워낙 강하니까요. 


  티파니의 매력도 만만치 않죠. 팻을 보고 첫눈에 반해 바로 침대로 직진하자고 제의하는 도발이나 팻이 러닝할 때 미친 듯이 껌딱지처럼 악착같이 달라붙는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합니다. 내숭 같은 거 없습니다. 그래도 자신이 좋아하는 댄스에 집중할 때는 진지하면서도 희열에 찬 눈빛을 띱니다. 팻의 아버지가 팻에게 티파니를 만나면 자신이 응원하는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패배한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과 만난 때마다 필라델피아 팀이 이겼다는 전적 기록을 디밀어 꼼짝 못 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 바람에 팻의 아버지도 티파니에게 호의를 갖게 되죠.  


  팻의 아버지도 특이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레스토랑에 투자할 돈을 사설 스포츠 도박에 모두 베팅을 하고, 경기장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출입금지자 리스트에 올라있기도 하죠. 특히 경기를 볼 때는 팻이 반드시 옆에서 함께 관전해야만 응원하는 팀이 이긴다는 그런 징크스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죠. 거기다 TV 리모컨을 나란히 정리해둬야만 하는 편집증과 수많은 경기를 녹화해둔 비디오테이프를 끔찍하게 아낍니다.  

  팻의 친구인 대니(크리스 터커)도 눈길을 끄는데 한 몫하죠. 팻이 정신병원에서 나올 때, 도망을 치는 것이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도 정식으로 퇴원하는 환자처럼 행세를 하죠.   


  모든 드라마와 영화의 스토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력은 갈등입니다. 그 갈등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건 매력적인 캐릭터죠. 결국 재미있고, 관객들에게 소구력을 띠는 건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재미와 감동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살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캐릭터를 멋지게 연기한 브레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 그리고 로버트 드 니로와 재키 위버의 공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브레들리 쿠퍼와 제니퍼 로렌스는 완벽한 캐미를 이룹니다. 제니퍼 로렌스가 이 영화로 22살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팻과 티파니가 댄스 연습을 하는 장면도 좋았고, 거기에 어울리는 OST도 좋았습니다. 밥 딜런의 ‘Girl from the north country’였죠. 댄스 경연대회에서 팻과 티파니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 픽션>에서 존 트라볼타와 우마 서먼이 췄던 댄스를 오마주한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5년 동안 시나리오를 쓰고, 단 33일만에 촬영을 끝냈다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통해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Silver Linings의 뜻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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