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돋다!

[오징어 게임]을 보고

by 노정희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1학년 때의 이야기다.

엄마는 내 공부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 6살 많은 언니를 두들겨 패면서 공부를 시켜봤다는 데 그게 영 신통치 않았는지 둘째인 나에게는 굳이 공부를 시키지 않으셨다. 덕분에 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놀았다. 아침부터 옆집 언니와 인형놀이부터 시작해서 바닥에 분필로 찍찍 그려가며 사방치기, 땅따먹기를 했고 동네 전봇대에 고무줄을 묵어 고무줄놀이도 하고 놀았다. 고무줄놀이를 할 때에는 동네 남자아이들이 어김없이 쫓아와서는 아이스케키를 하고 도망갔다. 도대체 남의 빤스를 보는 게 뭐 그리 좋다고 그런 장난을 하는지 지긋지긋했다. 그런 남자아이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달려가다가 넘어져서 나의 무릎은 항상 피고름 딱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아이들은 조금만 상처가 나도 큰일이 날 것처럼 소독약에 밴드를 붙이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돌보지만 라테는 그렇게 대충 딱지를 떼고 또 넘어지는 걸 반복하며 살았다.


딱지하니까 또 생각이 나는 데 우리 동네에는 종이 딱지가 유행이었다. 동그란 종이 딱지 위에 그려진 별의 개수로 서로의 딱지를 따먹을 수 있었고 파파 먹기라고 하여 입으로 "파!"하고 입김을 불어 상대의 딱지를 넘기면 그 딱지를 내가 따 먹을 수 있었다. 최근에 유행하는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게임들보다 훨씬 다양한 놀이들이 있었고 그 놀이를 하다 보면 금세 날이 저물었다.


여름이 되면 마당에다가 빨간 다라이를 놓고 옆집 언니랑 물놀이를 했다. 나랑 한 살 터울인 옆집 언니는 나의 단짝 친구였는데 그 동네를 이사한 후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언니랑 나는 종이인형들을 오려 인형극 놀이를 하며 놀았다. 그 당시 테레비에선 새로미라는 만화영화를 했는데 머리가 보라색으로 그렇게 이쁠 수가 없었다. 나도 새로미처럼 예뻐지고 싶었다. 요술 공주 밍키 이후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나는 한국말로 말하는 새로미가 일본 출신이라는 걸 한 참 뒤에나 알게 되어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마흔 중반이 넘으니, 왠지 꼬맹이 시절 추억이 많이 떠오른다. 글을 써도 그때 이야기가 자주 소환되니 이상하다.

낮부터 놀다가, 저녁노을이 질 때쯤 집집마다 엄마가 "ㅇㅇ야! 밥 먹어라!"라고 부르면 하나둘씩 집으로 가곤 했다. 그때 바라보았던 피처럼 붉은 하늘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붉은 하늘을 보면, 집에 엄마가 빤히 있어도 집 잃은 아이마냥 엄마가 그리웠다.

성인이 된 지금도 붉은 하늘을 보면 그 꼬맹이때 시절이 떠오르고 코끝이 시큰하다.


이제는 좀 시들하지만,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었다. 19세 이상 관람가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아이들까지도 열광했다. 나의 어린 시절 유행했던 게임들이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 만점인 걸 보면 느낌이 이상하다.


우리 아이도 오징어 게임 가면을 쓰고 동네를 활보하고 달고나 사탕을 사 먹는다. 그때는 50원밖에 하지 않았던 달고나가 지금은 편의점에서 3000원이나 한다. 돈이 너무 아까워 집에서 해주는 데, 그때 그 맛이 아니다.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를 떠나 극 중 캐릭터 오일남 할아버지가 그 시절 게임을 하면서 아이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추억 속으로의 여행. 그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었을 테다.

다른 사람들은 목숨을 건 게임이었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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