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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희 Feb 19. 2024

청소의 즐거움

2월 중순이다.

겨우내 숨죽여 자고 있던 동네 공원 나무 가지 사이사이로 새초롬히 새싹 봉오리들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나의 예리한 눈으로 포착했다.

아~ 봄이 오려나보다.

봄이라... 뭐부터 해야 하나?


다이소에 가서 구연산 한 통을 사 왔다. 구연산은 싱크대나 욕실 물때를 제거하기 좋단다.

스프레이에다가 물과 구연산을 8대 2 비율로 넣고 쉐끼쉐끼한다. 싱크대에 칙! 욕실 세면대에 칙!

수세미로 살짝쿵 닦아 주고 물을 시원하게 뿌려주는 끝!


그동안 왜 이 신통한 걸 모르고 살았을까? 물때로 꼬질꼬질했던 수전들이 반짝반짝 광이 난다. 광이 나~

청소하는 즐거움을 아주 아주 오래간만에 느껴본다.


싱크대의 변신이 신기해서 주방 후드의 기름때에도 칙! 뿌려본다. 힝. 별 신통함이 없다. 기름때에는 구연산이 별로 잘 듣지 않는다.

두꺼운 봉다리에 레인지후드망을 넣고 과탄산소다를 한 움큼 뿌리고 팔팔 끓은 물을 넣어준다. 10분 정도 방치해 놓고 다시 끓은 물을 부어 후드망을 헹궈준다.

청소 전보다는 깨끗해졌지만 광이 반짝반짝 날 정도의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다.


어느 블로그에서 손소독제가 기름때 제거에 탁월하다는 글을 본 기억이 있다.

신발장에 가서 뜯지도 않는 손소독제를 뜯어 후드망에 찍찍 뿌리고 솔로 마구 문질러 본다.

알코올의 찐한 냄새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기름때 제거 전용 세제를 연이어 사용하고는 또다시 솔로 박박 문지른다.

전기포트에 물을 몇 번이나 끓여서 레인지후드망에 뿌린다. 녹아라! 녹아라! 이 놈의 기름때야!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함 해보자!!


레인지후드망 촘촘한 구석구석에 박힌 기름때는 완벽히 제거되지 않았다.

기름때 승!

쳇!


평소에 관리 좀 해둘걸 후회를 하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자.

조금은 깨끗해진 모습에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나의 마음도 가끔씩 청소를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 시기, 미움으로 잔뜩 때가 낀 나의 마음을 구연산물로 칙칙 뿌려 반짝반짝 광이 났으면...


마흔 중반부터 내 몸에 붙어 지내던 "불안",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옹졸함"이라는 때는 레인지후드망의 기름때처럼 마음속 구석구석 박혀 잘 닦아내지지 않는다.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 아무리 뜨거운 물과 과탄산소다를 들이부어도 잘 벗겨지지 않는다. 미리미리 관리 좀 해두었으면 좋을걸 후회가 드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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